며칠 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더니 온 몸에 좀이 쑤신다. 어제저녁 늦게 TV를 보고 있자니,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회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오랜만에 바람도 쐬고 회 맛에 소주 한잔의 유혹이 생긴다.
이곳 세종시에서 가기 편한 서해안으로 가기로 했다. 세종시에서 가장 가까운 서해 포구는 남당항이다. 남당항은 홍성군에 속해있는 어항으로서, 최근에는 어항보다는 낚싯배로서 더 유명하다. 남당항의 특산물이라면 단연 <새조개>와 <주꾸미>이다. 새조개는 아주 비싼 고급 조개로서, 서해안 다른 포구에서는 흔치 않은데, 남당항에서는 가장 중심 되는 해산물이다.
아침을 느지막이 먹고 11시경에 집을 출발하였다. 남당항 가는 길에 <황금보리소주>라는 증류소주를 제조하는 공장이 있는데, 거기를 거쳐 소주 몇 병을 사려고 했으나, 다른 길을 선택하는 바람에 소주는 포기하였다. 작년 초 남당항에 가면서 우연히 발견한 공장으로서, 당시 18도짜리 6병 세트를 구입하였는데, 꽤 괜찮았다. 할 수 없이 황금보리소주는 택배로 주문해야겠다.
남당항까지의 거리는 가깝지만 시간은 꽤 걸린다. 고속도로를 내려와 홍성읍 시가지를 통과하여야 하고, 그 외에도 몇 개 마을을 통과하여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서해바다가 보인다. 바다를 오른쪽으로 끼고 남쪽 남당항 쪽으로 내려가다 보니까 남당항 좀 못 미쳐 <어사항>이라는 조그만 어항이 나온다. 서해안의 웬만한 항구는 다 가보았는데, 처음 보는 항구이다. 들어가 보았다. 지금은 썰물 때라 수평선 저 멀리까지 물이 모두 빠져 바다는 개펄만 보인다. 조그만 항구 개펄 위에 몇 척의 배가 올라앉아 있다. 어항 앞은 수산시장으로서 횟집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있다.
별로 볼 것은 없어 보이는데, 이왕 왔으니 차에서 내렸다. 횟집들이 들어서 있는 수산시장 건물이 마치 폐허와 같다. 문을 열고 있는 집은 보이지 않은데, 평일이라 문을 닫았다기보다는 폐업한 것 같아 보인다. 문을 닫은 지가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데, 원래 장사가 안되어 그랬는지 아니면 최근의 코로나 19 사태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상인들로서는 상당한 비용을 들여 장사를 시작했을 텐데 이렇게 폐업들을 해버렸으니 어쩌나... 마음이 아프다.
남당항으로 갔다. 잠시 내려서 바다 구경을 하였다. 남당항은 물이 들어오면 그림같이 아름다운 조그만 항구인데, 지금은 썰물로 물이 모두 빠져버려 개펄이 드러나 그다지 볼품이 없다. 바닷가에는 2층으로 된 큰 회센터가 있고, 수십 개의 횟집들이 입점해있다. 대부분 문은 열었지만 손님은 전혀 없다. 평일이라 그런가... 손님이 없다 보니 무엇을 먹는 게 좋을까 구경하려고 하여도 이쪽저쪽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바람에 구경하기도 좀 그렇다. 새조개와 주꾸미는 철은 좀 지났지만 지금도 괜찮다고 한다.
항구 한쪽 옆으로 긴 방파제가 있고, 그 위로 차가 달린다. 무얼까 해서 가 보았다. 방파제 끝에는 남동항 등대가 있고, 등대 바로 가기 전에 근처 섬에 운행하는 작은 선사의 사무실이 보인다. 주차장은 아주 넓고, 차들이 빽빽이 주차해있다. 그런데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마 낚싯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주차를 해 둔 것 같다. 남당항은 서해안 바다낚시의 메카 가운데 하나이다.
점심은 다른 곳에서 먹기로 했다. 남당항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보령항>이 나온다. 보령항은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다. 남당항보다는 보령항이 좀 더 클 것이고, 좀 더 큰 항구에 가면 먹을 것도 많지 않을까 해서 보령항으로 가기로 했다.
보령항 근처에 왔는데, 항구 같은 곳이 보이지 않는다. 내비는 큰 공장 같은 건물의 담 옆으로 차를 인도하였다. 이건 공장이 아니고 LNG 저장소이다 우리나라는 인천을 비롯하여 바닷가 몇 곳에 LNG 저장소가 있는데, 이곳이 그 가운데 하나인 모양이다. 인천 저장소에는 15년 전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인천 저장소는 인공섬을 만들어 저장소를 건설하였다. 여긴 바다 바로 옆에다 건설한 것 같고, 보령항은 아마 LNG 운반선이 이용하는 항구가 아닌가 싶다.
LNG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잠깐 옆길로 빠진다. LNG 온도는 영하 160도 정도가 된다. 그래서 무얼 넣으면 순식간에 냉동이 되어버린다. 금붕어를 LNG에 넣으면 바로 냉동이 된다. 그리고 냉동시킨 후 한참 뒤에 보통 온도의 물에 냉동된 금붕어를 넣으면 금붕어는 바로 되살아나 헤엄을 치고 다닌다. 이걸 보면 영화나 만화에서 나오는 냉동인간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금붕어의 경우 냉동/해빙을 5번 정도 하면 죽는다고 한다. 즉, 순간적으로 냉동시키더라도 몸에선 상당한 대미지가 간다는 말이다. 금붕어보다 조금 더 큰 고기, 그리고 개나 돼지 같은 큰 포유동물도 순간 냉동이 가능한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얼마나 충격이 수반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보령항에는 별 것이 없으니, 대천항으로 가기로 했다.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니까 <충청수영성>이란 곳이 나온다. 차를 내렸다. 이곳은 조선시대 충청지방 해군사령부라 할 수 이는 충청도 지역의 수군 본부이다. 이와 함께 수영 옆으로 <기독교 순교자 순례길>이 있다. 조선 말기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있을 때 체포된 기독교인들을 이곳으로 끌고 와 처형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기독교로서는 성지라 할 만한 곳이다.
기독교의 순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야기하자면 실제로 서양에는 순교자가 그리 많지 않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기독교 관련 서적이나 신자들의 말을 듣자면 기독교가 로마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은 것으로 이야기하지만 사실 로마는 기독교에 대해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았다. 네로 황제의 기독교인 탄압 정도가 두드러지며, 그 외에는 기독교인을 종교상의 이유로 박해한다거나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오히려 기독교가 크게 박해받고 순교자를 많이 낸 곳은 동양이다. 중국에서는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적지 않은 순교자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순교자수는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아마 기독교 순교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는 일본이 아니었던가 한다. 도쿠가와막부 초기 수만 명의 기독교인을 살해하였으며, 막부 말기에도 대대적인 기독교인 박해가 있었다. 규슈의 <시마바라의 난>에서는 막부에 저항한 약 4만에 가까운 기독교인들이 3년에 걸친 농성 끝에 남녀노소 전원이 몰살하기도 하였다. 일본의 기독교 순교자 수는 대략 20-3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충청수영성>은 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큰 회의장처럼 보이는 주 건물만 남아있는데, 계속 유적을 발굴 중이고, 다시 복원할 계획이라 한다. 만약 모두 복원이 된다면 서해안 지역의 좋은 역사 건축물이 될 것 같다.
충청수영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는 아늑하다. 좁은 해역으로 배들이 떠 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왼쪽으로는 <오천항>이 보인다. <오천항>은 조그만 어항으로서 지금은 어로보다는 낚싯배 영업을 하는 배들이 많아 보인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여유가 있어 그런지 낚시 인구가 엄청 많아진 것 같다. 개인 낚싯배를 소유한 사람도 적지 않다. 몇 년 전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 낚시 인구가 등산 인구를 추월하여 이제 낚시가 가장 대중적인 취미가 되었다고 한다. 충청도 일대 항구 중에서 아름다움으로 따지면 단연 <오천항>을 꼽을 것 같다.
대천항에 도착하였다. 넓은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장 옆 도로로 차들이 빽빽이 주차해 있다. 웬 사람이 이렇게 많은가 생각했는데, 막상 주차장에 들어가 보니 주차장은 텅텅 비었다. 텅텅 빈 주차장을 두고 도로 옆에다 주차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르겠다. 주차비를 받은 것도 아닌데...
대천항은 충청도 일대에서는 가장 큰 항구이다. 수산시장도 두 곳이 있는데, 신시장과 구시장이다. 대천항에는 이미 열 번 이상 온 적이 있는데, 나는 대부분 신시장보다는 구시장 쪽으로 간다. 먼저 방파제 쪽으로 가서 등대까지 운동삼아 걸었다 온후 시장으로 갔다. 5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이곳 대천 쪽은 자연산 광어의 계절이다. 이 때는 양식 광어를 찾아볼 수 없으며, 거의가 자연산 광어이다.
왜 양식 광어가 없을까? 이 때는 자연산 광어가 많이 잡히기 때문에 가격이 하락하여 양식 광어는 도저히 가격경쟁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광어 1킬로에 15,000원이란다. 대전 농수산물 도매시장의 양식광어 값의 절반 조금 넘는 수준이다. 2킬로짜리 자연산 광어를 3만 원에 사고, 또 <삐뚤이 소라>, 말린 서대 등을 샀다. 모두 7만 원어치 정도를 산 것 같은데 푸짐하다.
오늘 저녁은 광어회에 삶은 소라에 푸짐할 것 같다. <황금보리소주>을 샀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