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대설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유리와 나나의 파란만장한 사랑 이야기
영화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는 소련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서, 1965년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는 1967년 무렵에 수입된 것 같은데, 당시 정부 차원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도록 적극 추천하였다. 나는 당시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당시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극장에 가지 말도록 강하게 단속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해서만은 학교에서도 적극 관람하도록 권장하였다. 당시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반공영화”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 이 영화를 감상한 후 최근 다시 감상하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반공 영화가 아니라 로맨스 영화이다. 이 영화는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미국 아카데미상 5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얼마 뒤, 소련군 장군 예브그라프 지바고는 이복동생의 딸을 찾고 있다. 그러던 중 전쟁고아들 사이에 그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몽골과의 국경 근처에 있는 댐의 사무소에서 토냐라는 소녀와 만난다. 토냐는 부모의 이름은 물론 얼굴과 출신도 모르는데, 예브그라프가 부모에 대한 것을 알려 주어도 당황할 뿐이었다. 예브그라프는 소녀에게 유리 지바고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때는 19세기말, 어려서 양친을 잃은 유리는 모스크바에 사는 친척 알렉산더 그로미코 부부에 거두어진다. 양친의 유품은 바라라이커라는 악기 한 점뿐,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부부로부터 애정을 듬뿍 받으며 유리는 성장한다.
1913년 의대생이 된 유리는 교수로부터도 인정받아 연구자의 길을 가라는 권고를 받지만, 본인은 의사 면허를 취득하여 개업의가 되려고 한다. 그는 본업인 의사 외에도 시인으로서도 재능을 보여, 프랑스 신문기사에도 그의 시가 실리기도 하였다. 또 유리는 그로미코 부부의 외동딸 토냐와 약혼하여 아주 밝고 희망찬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한편 모스크바에 사는 17세의 소녀 라라는 양품점을 하는 엄마 아멜리아와 살고 있다. 라라에게는 볼셰비키를 열혈이 지지하는 청년 파샤라는 연인이 있었지만, 엄마가 사귀고 있는 변호사 코마로프스키가 호시탐탐 그녀를 노리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귀족들의 파티가 열렸는데, 아멜리아가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그녀가 몸이 아파 대신 딸 라라를 코마로프스키와 함께 참석하도록 한다. 이곳에서 유리는 라라를 처음으로 보게 된다.
크고 넓은 연회장에서 파티가 한창 무르익어 가고 있을 무렵, 밖에서는 볼셰비키주의자들에 의한 데모가 벌어지고 있었다. 데모대 속에는 라라의 연인 파샤도 있었다. 헌병대가 출동하여 데모대를 향하여 총탄을 발사하기 시작하자 데모대는 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후퇴하였다. 집의 발코니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보는 유리는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내려가지만, 헌병들이 쫓아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온다. 다음날 유리의 약혼녀인 토냐가 프랑스로부터 귀국하여 유리와 반갑게 재회한다. 한편 파샤는 얼굴에 화상을 입은 채 라라의 집으로 찾아온다. 그는 헌병들로부터 쫓기고 있다면서 권총을 라라에게 맡긴다. 그날 밤 라라는 코마로프스키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런 가운데 코로모프스키와 라라의 관계를 눈치챈 아멜리아가 자살을 기도하여 독약을 먹는다. 코마스프스키로부터 부탁을 받은 의사 카트 교수는 제자인 유리를 데리고 가 아멜리아를 치료 해준다. 그곳에서 유리는 코마로프스키와 라라의 부정한 관계를 알아차리고 만다. 라라는 엄마의 일도 있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파샤와 결혼할 것이라고 코마로프스키에 말한다. 그러자 코마로프스키는 다시 라라를 강간하며, 라라는 분노하여 파샤가 보관한 총으로 코마로프스키를 죽이려고 결심한다.
라라가 향한 코마로프스키가 참석한 파티장으로 향하였는데, 그곳에서는 유리와 토냐의 약혼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때 그곳에 나타난 라라는 코마로프스키를 향해 총을 쏜다. 주위 사람들이 라라를 제지하였는데, 코마로프스키가 이 사실을 경찰에 통보하지 말라고 한다. 그때 라라의 약혼자인 파샤가 나타나 그녀를 데리고 파티장을 떠난다. 그 후 라라는 곧 파샤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파샤는 군에 지원하여 전선으로 갔지만 돌아오지 ㅇ낳고, 라라는 간호원으로서 전선으로 가 남편을 찾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군의관으로서 파견되어 온 유리와 다시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함께 병사들을 치려하며 지내는데, 부상자가 모두 퇴원하면서 유리의 마음 한 구석에는 라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싹튼다. 그러나 라라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두 사람은 헤어진다.
유리는 모스크바의 집으로 돌아오지만,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사태는 심각하게 전개되었다. 저택이었던 그의 집은 공동주택으로 되어 버렸고, 땔 장작조차 배급제로서 추운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집의 모든 재산과 개인 사유물까지 모두 몰수될 형편이다. 그러한 때에 이복형 예브크라프가 찾아온다. 그는 공산당원이었는데, 유리는 형을 처음으로 만나고 기뻐한다. 유리는 러시아 공산당을 어느 정도 평가는 하면서도 입당은 거부하였다. 예브그라프는 유리의 시가 비판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어 유리는 낙담한다. 예브그라프는 일가의 별장이 있는 베리키노로 피신하도록 권유한다.
가족들은 베리키노로 가기 위해 밤차를 탄다. 그 기차 안에서 스트렐리니코프라는 적군(赤軍)의 장군이 민중을 괴롭히고 있다는 말을 듣는데, 그의 정체는 바로 파샤였다. 기차가 정차하였을 때 유리는 스트렐리니코프 장군, 즉 파샤에게 불려 간다. 그곳에서 파샤는 이제 라라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라라가 베리키노에서 멀지 않은 유리아틴이라는 마을에 살고 있다는 말도 듣는다.
베르키노에 도착한 일가는 원래 소유하고 있던 대저택을 몰수되어, 관리인의 소개로 근처의 작은 낡은 오두막에서 살며 자급자족의 생활을 시작한다. 그런 속에서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유리를 걱정하여 가족들은 그에게 마을을 한번 둘러보고 오라고 권한다. 유리아틴 도서관을 찾아간 유리는 그곳에서 라라와 운명적인 재회를 한다. 두 사람은 라라의 집으로 가 서로 한 몸이 된다. 그러나 유리는 토냐에 대한 죄악감으로 라라와 헤어질 것을 결심하고, 라라도 유리의 뜻을 따른다.
토냐가 임신을 하였다. 유리는 토냐에게 줄 약을 사라 마을로 가는 도중 빨치산들에게 납치되어 협력을 강요받는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돕게 되는 유리였지만, 빨치산의 활동이란 것이 학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유리는 그곳을 탈출한다. 겨우 그곳을 빠져나와 동사 일보직전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무도 없다. 유리는 라라의 집을 찾아가 그녀의 간호를 받고 힘을 되찾는다. 토냐와 그 가족들은 유리가 납치된 사이에 모스크바로 갔고, 다시 그들은 프랑스로 국외추방 당한다.
유리와 라라가 함께 지내고 있는 어느 날, 코마로프스키가 두 사람 앞에 나타난다. 지금은 사법장관이 된 코마로프스키는 유리의 언동이나 사상이 반혁명적이며, 라라도 스트렐리니코프의 아내라는 이유로 주목을 받고 있다면서 국외탈출을 권하지만 두 사람은 이를 거절한다. 그리고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베르키노에서 함께 지내기로 결심한다. 유리는 라라를 데리고 가족들이 떠난 집으로 돌아온다. 그곳은 이미 얼음 궁전으로 변해버렸지만, 두 사람은 그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유리는 여기서 라라를 위한 사랑의 시들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코마로프스키가 다시 나타나 스트렐리니코프가 실각하여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백군이 소멸해 버린 지금 소련에 있어서 그는 다만 걸거적 거리는 인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가 라라에게도 미칠 것이니 국외탈출하라고 강하게 권유한다. 유리는 이 권유를 받아들여 곧 준비를 하여 떠나려 하는데, 썰매마차가 만원이 되어 한 사람밖에 탑승할 수 없다. 유리는 다음 교통편으로 꼭 갈 것이라며 라라를 먼저 보낸다. 집으로 돌아온 유리는 급히 2층으로 뛰어 올라가 멀어져 가는 라라의 모습을 슬픈 눈으로 바라본다.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가 출발할 때가 되었는데도 유리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코마로프스키의 도움을 받기 싫었던 것이다.
그 후 유리는 모스크바로 돌아와 형의 덕택으로 의사 일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전차를 타고 가던 중 길을 걸어가는 라라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는 라라를 부르려 하지만 목소리나 나오지 않는다. 전차에서 내려 그녀를 뒤쫓아 뛰어가지만 얼마 못 가 그는 쓰러지고 만다. 지병인 심장마비가 발작한 것이다. 라라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가운데 유리는 죽고 만다. 그 후 유리의 장례식에서 라라는 예브그라프와 만난다. 라라는 생이별을 한 유리와 라라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찾고 있었다. 두 사람은 열심히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라라는 강제수용소로 연행되어 가 그곳에서 죽고 말았다.
양친의 이야기를 들은 토냐는 눈물을 흘린다. “그렇지만 아빠와는 전쟁 중에 헤어졌다”라고 말하는 토냐에게 예브크라프는 “그건 진짜 아버지가 아니라 코마로프스키였다. 그래서 손을 놓아버린 것이었다. 부모라면 절대 손을 놓지 않는다.”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토냐에게 앞으로 잘 보살펴주겠다고 이야기해 준다. 그곳에 댐을 조작하는 일을 하고 있는 토냐의 연인이 그녀를 데리러 온다. 댐 위에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걸쳐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그리고 제정러시아의 멸망과 공산혁명이라는 혁사의 격변 속에서 우롱당한 유리와 라라의 파란만장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이다. 따지고 보면 아내가 있는 유리와 남편이 있는 라라의 사랑은 불륜이다. 그렇지만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두 사람의 인연은 러시아의 대설원 위에서 아름답게 꽃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