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를 기다린 이상의 여자와 결혼, 그리고 아내의 죽음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여배우는 황신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때 TV드라마로 통해 팬들 앞에 선을 보인 황신혜는 그 빼어난 미모로 순식간에 톱 배우의 반열에 올라섰다.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은 황신혜의 전성기 때 톱스타 안성기와 함께 출연한 영화로서 1987년에 제작되었다.
아버지(최불암)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영민(안성기 분)은 가난하지만 보람찬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다. 영민은 아주 내성적이고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한다. 그런 영민이 짝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으니 바로 같은 학교 영문과에 다니는 혜린(황신혜 분)이다. 혜린은 연극반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영민은 혜린의 연습장에나 공연장에 어김없이 출석하여 혜린의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그는 익명으로 혜린 앞으로 꽃과 과일 등의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영민은 어렵게 혜린과의 만남의 기회를 갖는다. 내성적에다 소심하면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영민은 겨우 혜린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만 그녀는 영민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혜린은 자신은 곧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므로 더 이상 자신에게 미련을 갖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는 곧 산부인과 의사와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떠나간다.
혜린이 떠난 후 영민은 대학을 졸업한다. 그리고는 대기업에 취직을 하고, 아버지와 이웃들에게 축하를 받기도 한다. 영민이 취직을 하였지만 그의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몇 년이 흘렀다. 영민은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맞은편에 앉아 있는 혜린을 발견한다. 영민은 혜린의 뒤를 따라간다. 그리고 혜린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을 확인하며, 또 그녀가 다니는 조그만 출판사도 확인한다.
점심시간 어느 분식집에서 영민은 우연히 혜린을 만난다. 혜린은 라면을 시켜 먹고 있다. 내성적인 영민은 얼른 혜린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는 척 혜린에게 말을 건다. 그러나 혜린은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겨우 용기를 내어 영민은 자신을 밝히고 그동안의 소식을 묻는다. 혜린은 그런 영민에게 자신은 뉴욕에서 아주 풍족하게 살며, 지금은 잠시 서울에 다녀온 것이라고 대답하며 허세를 부린다. 그러나 실은 그녀는 결혼한 의사 남편이 아주 양아치 같은 인간이라 이혼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조그만 출판사에서 번역일을 하면서 단칸 셋방을 얻어 혼자서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이다.
혜린의 사정을 대략 눈치챈 영민은 혜린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그녀와의 만남을 계속한다. 혜린도 결국은 그동안 자기가 한 이야기는 모두 허세였으며, 자신이 처한 처지를 솔직히 털어놓는다. 그런 혜린에게 영민은 결혼을 신청한다. 이미 한 번 이혼을 하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혜린은 거절하지만, 영민의 열정에 굴복하여 둘은 마침내 결혼한다. 그리고 곧 혜린은 아이를 갖는다.
아이를 가진 혜린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병원에 찾아간 두 사람은 의사로부터 혜린이 암에 걸렸으며, 수술을 위해서는 아기를 포기하여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영민은 혜린에게 아기를 포기하자고 설득하지만 혜린은 아기를 결코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혜린의 고집에 영민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다.
몇 달이 흘러 드디어 혜린은 아기를 낳는다. 그러나 곧 그녀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만다. 자신과 꼭 닮은 딸을 남겨두고서는. 영민은 혜린의 마지막 선물인 딸을 꼭 껴안으며 혜린을 생각한다.
슬프게 끝나는 사랑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한 가지 위안은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혜린과 이혼한 산부인과 의사는 악인이지만, 그는 영화에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짝사랑으로 시작된 사랑이 어렵게 맺어지고 다시 그것이 슬프게 끝나는 잔잔한 물이 흐르는 듯한 영화이다. 미워하고, 원망하고, 울부짖는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