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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r 17. 2023

영화: 만델라-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

자유와 인권을 위해 평생을 투쟁한 만델라 대통령의 일대기

남아프리카 영화로서는 부시맨 1, 2에 이어 세 번째로 감상한 영화가 <만델라: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Mandela: Long Walk to Freedom)이었다. 만델라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인종차별이 극심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몇십 년간에 걸친 백인 정권의 탄압을 받으면서 결국은 남아프리카의 흑인들을 해방시키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는 곧잘 우리나라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비교되곤 한다. 


이 영화는 2013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제작된 전기영화이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남아프리카의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을 말한다. 이 영화는 변호사로서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에 섰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저서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넬슨 만델라 자서전>(1995)을 원작으로 하였다. 


소년 만델라는 7살 때 민중의 힘은 강하다는 가르침을 받고, 한 사람의 남자로 인정받아 고향을 떠난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1942년 백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남아프리카의 요하네스부르그에서 올리버 탄보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만델라는 약한 입장에 놓인 흑인들을 도와주기 위해 변호사 생활을 한다. 그는 몇 번이나 남아프리카의 정치조직인 ANC(African National Congress, 아프리카 민족회의)에 참가할 것을 권유받지만, 항의 활동 이외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여 참가를 사양한다. 

그날밤 만델라가 알고 지내는 잭슨이 술에 취해 걷고 있을 때 경찰의 단속을 받았다. 신분증을 잊고 나온 잭슨은 경찰서로 연행되어, 경찰서에서 폭행을 당하고 사망한다. 그러나 경찰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잭슨의 사인을 병사로 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이에 대해 만델라는 판사에게 항의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흑인을 위한 법률이 없다고 깨달은 만델라는 시스루와 아메드 캐틀러 등과 의논하여 ANC 참여를 결정한다.  


에블린 마세와 결혼한 만델라는 시스루로부터 버스 보이콧 운동을 제안받는다. 자신의 이상을 설파하는 것만으로는 민중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는 주위로부터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는 먼저 생활에 밀착된 버스요금의 인상에 대한 항의활동에 나선 것이다. 만델라 신념을 갖고 ANC의 활동에 깊숙이 간여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아내 에블린은 그가 버스 보이콧 운동에 참가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만델라와 에블린의 사이는 조금씩 벌어진다.  


시간이 흘러 1948년, 백인 정권이 아파르트헤이트(극단적 인종차별 정책)를 강하게 추진해 나갈 즈음 만델라와 에브린 사이에 아들 텐비가 태어나, 가족 3인은 소베트의 올란드 타운시프로 이사한다. 이후 만델라는 ANC 활동을 더욱 열성적으로 하고, 그로 인해 가족과 만나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난다. 

어느 날 흑인들 앞에서 연설하던 만델라는 연설이 끝난 후 그곳에 있던 한 여성과 관계를 가진다. 그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자, 가정을 돌보지 않는 남편에 대한 분노가 쌓였던 에브린은 크게 화를 내고, 대판 부부 싸움을 벌인 끝에 결국 두 사람은 이혼을 결정한다. 그 후 만델라는 함께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비니 마디키젤라와 가까워지게 되며, 그녀에게 반한 만델라는 그녀와 결혼한다. 


ANC의 활동을 비웃듯이 백인 정권은 아파르트헤이트를 더 강력히 추진하였으며, 이를 항의하는 흑인 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하여 많은 사상자가 나온다. 맨몸의 민중에게 발포하는 행위에 격노한 만델라는 지금까지 비폭력으로 일관해온 운동을 폭력과 병행하는 운동으로 전환한다. 그러나 ANC의 아지트인 농장이 정부에 발각되어 만델라는 주요 멤버들과 함께 반역죄로 체포된다. 재판에서 그는 “폭력행위는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 민족은 오랜 기간 권리를 빼앗겨 왔다. 백인 지배에 맞서 싸워왔다. 자유롭고 민주주의적인 국가를 원한다. 그리고 이 나라의 이상을 위해 죽음도 각오하고 있다.”라는 성명을 발표한다. 


만델라의 사형 판결이 확실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재판의 결과 사형이 아니라 종신형이라는 판결이 내렸다. 이때부터 만델라와 그의 동지들은 27년간에 걸친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형무소 안에서 잔악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만델라는 신체를 단련하고, 또 작은 것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권리를 끊임없이 주장하는 날이 계속된다. 만델라의 아내 비니도 경찰로부터 여러 번 폭력적이고 굴욕적인 조사를 받지만 그녀 역시 조금도 굴하지 않는다. 점차 남아프리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세계로 번져나갔다. 그리고 이 나라에는 만델라가 필요하다는 민중의 봉기가 이어졌다.

1982년 만델라와 그 동지들은 케이프타운의 수용소로 이송된다. 비니는 만델라 대신에 리더가 되어 백인 지상주의에 맞서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만델라가 원하는 평화적인 방법이 아니라 폭력행사도 불사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만델라에게 폭력의 사용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낸다면 자유를 줄 것이라는 제안을 해온다. 만델라는 조건부 석방이 되었다. 


오랜만에 비니와 만나 기뻐하던 두 사람은 이미 상당히 나이가 들었다. 정부 측이 만델라를 데리고 간 곳은 비밀 회합 장소였다. 그곳에는 사법 장관도 참석해 있었는데, 남아프리카는 인종차별로 인해 세계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는데, 만델라가 협력해 주어야 신용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부 측의 제안은 폭력 행위를 하지 않으면 만델라를 정권에 참여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적 실권을 줄 생각은 없다. 흑인이 정권을 쥐게 된다면 지금까지 그들이 당해왔던 차별에 대한 복수를 하려들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만델라는 그들의 제안을 단호히 거부한다. 만델라는 “우리들은 백인과는 다르다. 복수는 하지 않는다. 백인들은 무서워서 흑인을 탄압해 온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만델라는 자신의 이상을 밝히기 위해 대통령과 면담한다. 


비니는 만델라의 뜻에 반하여 폭력적 운동을 계속한다. 보다 못한 만델라는 그것을 나무라고, 또 비니가 다른 남자와 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혼의 뜻을 표명한다. 백인 정권도 만델라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코너에 몰렸다. 그들은 결국 만델라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유선거를 행한다. 드디어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대통령에 당선되어 대통령직에 취임한다. 


아프리카의 민권운동의 선두에 서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그 악랄했던 인종차별정책과 싸우면서 마침내 남아프리카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한 만델라의 인생 역정을 그린 감동적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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