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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Oct 11. 2023

바둑올림픽 “응씨배 세계바둑대회”의 시작

반상(盤上)의 신삼국지(新三國志)-한중일 바둑쟁패전 其9

다시 <응씨배 세계바둑대회> 이야기로 돌아가자. 

 
응씨배에 참가할 선수들은 응씨배 주최 측에서 선발하였다. 세계대회, 바둑의 올림픽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한중일 동양 3국 뿐 만 아니라 서양 선수들까지 초청하였다. 참가 선수는 모두 16명이었다. 이들은 단판승부의 토너먼트로 승부를 벌이되, 준결승은 3번기, 결승은 5번기로 3승을 먼저 하는 기사가 우승하는 것으로 하였다. 참가선수의 나라별 구성은 일본이 5명, 중국은 4명, 대만 3명, 한국 2명, 미국과 호주가 각각 1명이었다. 국별 선수배정은 기사들의 국적을 기준으로 하였다. 
 
즉, 어느 나라에서 기사 활동을 하든 그 선수의 국적에 따라 대표선수가 된다는 것이다. 임해봉은 일본 프로기사로서 일본에서 활동을 하지만, 국적이 대만이므로 대만 대표가 되고, 조치훈 역시 일본에서 활동하지만 국적이 한국이므로 한국 대표로 선발되었다. 이렇다보니 실제로 선발된 기사들의 활동무대를 기준으로 보자면 일본 9명(일본인 기사 5명, 임해봉 등 일본에서 기사생활을 하는 대만출신 3명, 조치훈), 중국 4명, 한국 1명이었다. 
 
응씨배 주최 측에서는 한국 대표로 조훈현과 조치훈을 지명하여 초청하였다. 그런데 조치훈은 일본기원 소속이었으니, 실제로 한국선수는 조훈현 혼자뿐이었다. 한국으로서는 너무나 굴욕적인 상황이었다. 한국 바둑이 대만보다도 못하고, 미국과 호주 정도의 취급을 받은 것이다. 이에 한국기사들은 그야말로 분기탱천하였다. 아무리 한국바둑을 무시하기로서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 바둑을 미국, 호주와 동급으로 취급하다니!!! 
 
기사들 사이에는 이러한 굴욕적인 상황에서 응씨배 대회에 참가할 수 없고, 대회를 보이콧하여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렇지만 응씨배 주최 측에서는 조훈현 개인을 지정하여 초정하였으므로 한국기원은 결국 참가여부를 선수 개인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였다. 조훈현은 대회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1회전은 중국 북경에서 열렸는데, 그 당시 우리나라는 중국과 국교가 수립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조훈현은 중국 당국으로부터 특별히 입국이 허가되었다. 


드디어 응씨배가 시작되었다. 대회는 응창기 씨가 생각한대로 녜웨이핑의 세계최강의 자리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응창기 씨가 세계 최강의 기사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중국의 녜웨이핑은 일본의 강자들을 차례로 꺾고 순조로이 결승까지 진출하였다. 녜웨이핑은 16강전에서 미국 대표로 출전한 마이클 레드먼드 7단을 가볍게 꺾은 후 8강전에서는 일본 바둑의 최강 조치훈 9단을 물리쳤다. 그리고 준결승에서는 일본 바둑의 "괴물" 후지사와 슈코를 2:0으로 가볍게 일축하고 결승에 올랐다. 이제 중국바둑의 세계제패는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다른 조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한국의 조훈현 9단이 일본, 중국 선수들을 차례로 꺾고, 설마설마 하는 가운데 결승까지 진출하여 녜웨이핑의 상대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조훈현은 16강전에서 대만 대표로 출전한 일본 기원의 왕밍완 9단을 꺾은 후, 8강에서는 조치훈과 함께 일본 바둑의 양강을 이루는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을 맞이하였다. 조훈현은 이미 얼마전에 열린 후지쯔 배에서 고바야시에게 패퇴하여 1회전에서 탈락한 한 바 있었다. 이번에도 조훈현은 고바야시에게 일방적으로 밀렸지만 처절한 대응 끝에 극적인 역전승으로 결국은 지옥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 


준결승 상대는 지난번 후지쯔 배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임해봉이었는데, 그는 일본기원 소속이지만 대만 대표로 출전하였다. 조훈현은 임해봉을 2:0으로 가볍게 물리쳤다. 이렇게 하여 전혀 기대도 하고 않았던 조훈현이 녜웨이핑의 상대로 결승에 진출한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오히려 이를 행운이라 생각하고, 이미 녜웨이핑의 우승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이름조차 생소한 한국의 기사에게 그들이 세계최강이라 믿는 녜웨이핑이 패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훈현이 누구인가? 한국에서는 거의 상대가 없이 불패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절대강자가 아닌가? 10개가 넘는 국내 타이틀전을 두 차례나 싹쓸이 해버린 천재기사. 어떠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마지막에는 승리를 일구어내는 그야말로 하늘이 도우는 기사. 비록 조치훈과의 두 차례 친선대국에서 패하여 큰 좌절을 겪었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바둑 부동의 최강자였다. 
 
결승전은 1, 2, 3국을 먼저 두고, 몇 주간의 시간을 두고 다시 4, 5국을 두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1, 2, 3국은 중국의 상하이에서 두어지게 되었다. 예상을 뒤엎고 제1국은 조훈현이 승리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한국 팬들은 환호하였다. “그럼 그렇지. 조훈현이 누구인데. 아무리 섭위평(당시 한국에서는 녜웨이핑을 한자 발음대로 그렇게 불렀다)이 세다고 해도 조훈현이 한텐 안되지” 
 
반대로 중국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아니 천하의 녜웨이핑이 다른 사람도 아닌 한국기사에게 졌다고?” 대회주최자인 응창기 씨도 적지 않게 당황하였다. 그렇지만 2국과 3국을 연달아 녜웨이핑이 승리하면서 다시 안정을 찾았다. “역시 녜웨이핑이야.” 첫 세 판에서 녜웨이핑이 2:1로 앞서 나가는 것을 보고 중국에서는 승부가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녜웨이핑의 우승을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한국의 팬들은 기가 좀 꺾였다. 표면적으로는 아직 충분히 기회가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내심 녜웨이핑의 우승을 점치는 분위기였다. 
 
 (계속)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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