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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n 13. 2021

숲으로 가는 무주와 남원 여행 (2)

(2020-07-06) 무주 구천동과 덕유산 자연휴양림

안국사에서 내려와 <적상호> 주위의 도로를 따라가니 적상산 전망대가 나온다. 마치 큰 공장 굴뚝 같이 생긴 거대한 전망대이다. 전망대는 콘크리트로 만든 거대한 원통형으로 생겼으며, 그 원통형 구조물 표면을 따라 나선형으로 생긴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인 모양이다. 전망대는 코로나 때문인지 입구가 폐쇄되어 있다. 처음에는 이런 높은 산 좋은 곳에 저런 흉물스러운 구조물을 만들어야 했는지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것은 양수발전에 있어 수압 조절을 위한 구조물로써, 필수적인 설비라 한다. 

적상산 전망대

다음은 나제통문(羅濟通門)이다. 나제통문은 무주구천동 계곡의 초입에 해당하다. 나제통문은 말 그대로 옛날 신라와 백제가 경계를 이루었던 곳으로, 이곳은 현대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출입국 관리소 같은 곳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 런지도 모른다. 나제통문은 낮은 바위산을 뚫은 짧은 터널 같은 곳으로 입구 위쪽에는 <羅濟通門>이라는 바위에 새겨진 글자가 있다. 


그렇지만 과연 이 나제통문이 옛날 신라와 백제의 국경 관문이었을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우선 이 곳이 신라와 백제의 경계선 지역도 아니었으며, 그리고 나제통문이라는 자체가 일제 강점기에 이곳에 새로운 도로를 닦을 때 건설한 자동차 도로 터널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한다. 여하튼 나제통문이 언제 만들어졌던, 산으로 갈라졌던 이쪽과 저쪽을 가깝게 연결하는 장소란 것은 틀림없다. 

나제통문

문득 옛날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는 어떤 관계였을까? 사람들의 왕래는 있었을까? 만약 왕래가 있었다면 서로 어떻게 관리하였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현대에는 국경에는 양국의 출입국 사무소가 바로 붙어 사람들의 이동을 관리한다. 요즘에는 아주 사이가 나쁜 국가일지라로 국경에서 일상적으로 무력충돌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서로 상대방을 미워는 할지언정, 서로 마주 보며 각자의 일을 한다. 


그런데 옛날에는 다르다. 만약 신라와 백제가 적대적이었던 때라면 양국의 관리와 군사가 서로 마주하여 출입국 관리를 할 수는 없다. 상대가 언제 공격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성들의 이동 자체가 가능했는지도 의문이다. 결국 양쪽은 비무장지대 같은 곳을 두고, 국경을 경계로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서로 대치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면 그 길고 긴 국경선은 모두 또 어떻게 관리하였을까?


생각해봤자 해답을 찾을 수도 없는 의문을 뒤로하고 구천동 쪽으로 갔다.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은 무주군 설천면에 있는 덕유산 자락의 계곡으로, 말 그대로 많은 물과 바위로 이루어진 계곡이란 뜻이다. 50년도 더 전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학교 입학을 앞도고 <암행어사 박문수>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여기서 어사 박문수가 무주구천동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소설에서는 구천동의 유래를 <구(具) 씨>와 <천(千) 씨> 집안의 사람들이 많이 살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나온다. 나는 이 뻥을 거의 30대 초반까지는 사실로 믿었다. 소설에서 나오는 말을 그냥 믿어서는 안 된다. 


무주에는 덕유산을 중심으로 무주 33경(茂朱33景)을 선정해두고 있다. 자동차로 휴양림으로 가는 길에 있는 명소를 잠깐씩 들려보기로 하였는데, <월하탄>, <인월담>, <비파담>, <구월담> 등의 이름이 보인다. 계곡을 즐기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직접 내려가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직접 즐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계곡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직접 즐기기에 좋은 계곡은 많지만, 눈으로 보고 탄성을 내지를만한 계곡은 웬만해서는 찾기 어렵다. 무주 33경에 들어가 있는 소(沼)나 작은 폭포들은 거기에 들어가 놀기는 좋기만 눈으로 봐서 탄성이 나올 정도의 계곡은 아니었다. 한두 곳을 보다가 그대로 <덕유산 휴양림>으로 직행하였다.


휴양림에 도착하니 3시가 조금 넘은 정도였다. 휴양림 입구를 지나 가파른 길을 자동차로 500미터쯤 올라가니 예약한 <숲 속의 집>이 나온다. 산 아래는 더웠는데, 여기는 서늘하다. 통나무 집은 매우 급한 경사지에 지어져 있기 때문에 들어가는 계단이 매우 가파르다. 넓이가 7-8평 정도 되는 작은 통나무집이다. 방으로 들어가니 은은히 퍼지는 나무향기가 기분 좋다. 방바닥에는 난방이 들어와 조금 따뜻한 느낌이 든다. 오늘 꽤 걸었으니 먼저 좀 쉬기로 하였다. 나무로 된 바닥에 활개를 펴고 누우니 서늘한 숲 공기와 따뜻한 방바닥이 어울려 아주 기분이 좋다. 

덕유산자연휴양림 숲속의 집

좀 이르긴 하지만 오는 도중에 구입한 삼겹살에 맥주 한 병, 소주 반 병으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통나무집 안에는 취사시설과 식기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이라면 맨바닥이라 어디 기댈 곳이 없어 불편하다. 의자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맨바닥에 앉아있자니 여러모로 불편하다. 여하튼 오랜만에 먹어보는 삼겹살이라 아주 맛있었다. 집에서는 기름이 튀므로 삼겹살을 거의 구워 먹지 않는다. 밖에서 먹을 때도 벌써 친구들은 삼겹살과 등과 같이 구워 먹는 고기는 먹기가 부담스럽다고 하여 주로 수육으로 먹는 경우가 많다. 


배도 부르고 하니 이제 소화도 시킬 겸 산책에 나섰다. 방을 나오면 산 위쪽으로 산책로가 나있다. 아주 좁은 산길을 10분쯤 걸어 올라가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이곳 숲은 국유림이다. 국유림의 경우는 국가, 즉 산림청이 직접 관리하므로, 숲이 아주 잘 관리되어 있다. 마치 대나무처럼 곧게 쭉쭉 뻗어있는 굵은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다. 독일가문비나무라고 한다. 웬만한 숲에 가서는 보기 어려운 장관이다. 나무들은 대략 지름이 40-60센티, 높이는 거의 20미터 정도는 되어 보였다. 나무가 워낙 크게 자라 그 아래 있는 산책로는 좀 컴컴한 느낌이 든다. 나무가 이렇게 크게 자라다 보니 잡초도 그다지 찾아보기 어렵다.


숲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독일의 <검은 숲>, 즉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이다. 숲이 울창하여 하루 종일 어둡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서, 독일의 남서부에 있는 지역이다. 이 숲은 옛날부터 독일을 지키는 방패가 되는 지역이었다. 숲이 하도 울창하여 외국군대가 제대로 군사행동을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 옛날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막강 로마 군단도 이 검은 숲에만은 감히 진격해오지 못하였다. 검은 숲에는 가보질 못하였지만, 독일 베를린 시내에 있는 숲에는 한번 가본 적이 있었다. 둘레가 몇 아름이나 되는 죽죽 뻗은 큰 나무들이 끝도 없이 서있어 감탄이 절로 나왔다.  

덕유산 자연휴양림 풍경

일본도 숲이 아주 좋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산림녹화 사업이 시작되었지만, 일본은 1920년대부터 국가차원에서 계획 산림 사업이 시작되었다. 우리보다 약 40년 정도 앞서 계획적인 나무와 숲의 관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산술적으로 보더라도 숲의 나이가 우리보다 40년 정도 앞선다. 거기다가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연간 강우량이 2배 정도 되어 비도 많이 오고 온도도 우리보다 높아 나무가 잘 자란다. 그래서 일본에 가면 지름이 1미터 이상 되는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20년쯤 전에 일본의 어느 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수필을 기고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 일본에서 제일 부러운 것이 “일본의 숲”이라는 내용의 수필을 쓴 적이 있었다. 우리도 빨리 나무가 자라 독일이나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숲들이 전국 곳곳에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임도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나무 향기가 너무 좋다. 온몸의 피부가 <피톤치드>를 빨아들이는 느낌이다. 산책로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넓은 숲을 휴양림을 이용하는 사람들만이 이용하다 보니까 마치 산 전체, 숲 전체를 전세 낸 느낌이다. 넓은 임도를 한참 걷다 보니 다시 통나무집으로 가는 숲 속 산책로가 나온다. 한 모퉁이에 캠프장이 보인다. 캠프장은 큰 나무들 사이에 마련되어 있는데, 텐트를 칠 수 있는 데크가 마련되어 있고, 샤워장, 취사장, 화장실도 갖추어져 있다. 텐트를 칠 데크는 거의 20곳 가까이 되어 보이는데, 텐트를 치고 있는 곳은 1곳뿐이다. 


통나무집으로 가는 산책로는 큰 나무 사이로 난 제법 넓은 길이다. 길에는 소나무 낙엽이 조금씩 덮여 있어 길이 아주 푹신한 느낌을 준다. 집에 들어오니 해가 날이 어두워진다.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있고 간간히 비도 뿌린다. 자연휴양림에 온 목적 중에 하나가 밤에 별을 보는 것이었는데, 오늘은 틀린 것 같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난방을 따뜻이 켜고 잠자리에 들었다. 조금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묻혀 오는 나무향기는 상쾌하기 그지없는데, 조금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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