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형 Jun 12. 2021

숲으로 가는 무주와 남원 여행 (1)

(2020-07-06)  무주 안국사와 적성산성

이제 날씨가 점점 더워진다. 본격적인 여름으로 들어간다. 벌써 곳곳에서 맹렬한 더위가 시작되었다는 방송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 정도 날씨가 되면 이제 섬여행은 어려울 것 같다. 섬여행에서는 많이 걷지 않을 수 없는데, 섬이란 곳이 대부분은 햇빛을 피할 그늘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햇빛도 강하고, 더위를 피할 시설들도 변변히 갖추지 있지 못하다. 젊을 때라면 여름이 오면 바다에 가겠지만, 이젠 더운 바닷가에서 바닷물에 들어가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결국 산이다. 차가운 계곡물과 시원한 숲이 있는 산이 이런 계절에는 최고이다. 


친한 선배 한 사람이 자연휴양림을 즐겨 찾아다닌다. 이미 전국의 국립자연휴양림은 완전히 한 바퀴 다 돌고, 다시 두 번째 턴을 거의 다 채워가는 상태라 한다. 나도 그동안 자연휴양림에 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하였다. 휴양림 속에 있는 통나무집에서 숙박을 하려면 한 달 전에 그것도 아주 빨리 예약을 하여야 하는데, 한 달 전에 여행 스케줄을 잡을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다행히라면 좀 어폐가 있는 것 같은데, 아무튼 요즈음은 코로나 19 사태로 인하여 휴양림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줄어든 것 같았다. 한 달쯤 전에 휴양림을 예약해보려고, 여러 휴양림의 예약상태를 살펴보았다. 성수기인 여름철인데도 불구하고 예약이 가능한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그렇지만 이왕 휴양림에 가는 김에 3-4일 정도 느긋하게 보내다 올 계획이었는데, 연속해서 2박 이상이 가능한 국립휴양림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하루는 국립휴양림, 다음 하루는 공립, 즉 지자체서 운영하는 휴양림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전북 무주에 있는 <국립 덕유산 자연휴양림>과 남원에 있는 <공립 흥부골 자연휴양림>이었다. 


무주군은 옛날부터 전북지방에서 아주 오지로 꼽히던 곳이다. 무주에다 진안과 장수를 합하여 <무진장>(茂鎭長)이란 말이 있는데, 전라북도에서 오지(奧地) 중에 오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덕유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덕유산의 일부인 <무주구천동>이 관광지로 개발되었으며, 동계유니버시아드 개최, 태권도원이 개설되는 등 많은 발전이 이루어져, 이젠 오지란 말도 옛말이 되었다. 


먼저 나제통문(羅濟通門)으로 가기로 하였다. 가는 길에 적상산성(赤裳山城)을 거쳐 가기로 하였다. 적상산성은 무주의 적상산에 지어진 산성인데, <적상산>도 <덕유산 국립공원>에 포함된다. 적상산성으로 올라가는 자동차 길이 일품이다. 왕복 2차선의 좁은 포장된 도로였지만 울창한 숲을 뚫고 나가는 느낌이다. 길 옆의 산에서 자란 나무들, 그리고 가로수들이 가지를 뻗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마치 푸른 터널, 숲으로 된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다. 


내비게이터는 차를 높은 곳으로 높은 곳으로 안내한다. 가다 보니 좀 넓은 주차장이 보이고, <천일폭포>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시간도 많겠다, 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주차장 아래로 좁은 산길이 있는데, 폭포같이 생긴 것이 눈의 띄지 않는다. <천일폭포>의 이름은 하늘 아래 둘도 없는 폭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그 둘도 없는 폭포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주위를 다시 잘 살펴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저 높은 곳에 가는 실 같은 물줄기가 보인다. 낭떠러지에서 아무렇게나 떨어지는 물줄기 같다. 이런 것 까지 폭포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참을 올라가니 <적상호>(赤裳湖)라는 호수가 나온다. <적상호>는 적상산의 거의 정상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렇게 높은 곳에 어떻게 호수가 생겼는지 이상하다. 돌로 만들어진 안내문을 보니 적상호는 양수발전(揚水發電)을 위해 건설한 인공호수라 한다. 인공호수라 그런지 특별한 멋도 없고 그저 밋밋하게 생겼다. 산 정상 가까운 곳의 호수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별로 볼 것도 없는 호수이다. 


양수발전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양수발전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전기를 저축하여 꺼내 사용하는 발전 방식”이다. 원자력 발전소 같은 경우에는 낮밤을 가릴 것 없이 항상 거의 일정한 양의 전기를 생산한다. 그런데, 전기란 것이 저축을 할 수 없는 것이므로, 수요가 적은 밤에 생산하는 전기는 그냥 버려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버려지는 전기를 이용하여 양수기를 돌려  낮은 곳에 있는 물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그 물을 이용하여 전기 소비량이 많은 시간에 수력발전을 하여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 결국 전기가 남을 때 남은 전기를 저축하여, 전기가 모자랄 때 그것을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얻게 된다. 

적상호

적상호 옆 쪽으로 산 위로 작은 길이 나 있고, 그 길을 조금 올라가면 <적상산성>과 <안국사>(安國寺)라는 절이 나온다. 안국사는 적상산 정상에 가까운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차장에서 절로 올라가는 길, 그리고 절 정문에서 대웅전으로 가는 길 등이 모두 가파른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안국사에는 고려 말에 건립된 절로서, 조선시대에 사고(史庫)의 역할을 하였다고 하며, 이를 지키기 위하여 승병(僧兵)을 두었다고 한다. 


승병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잠시 옆길로 빠져 승병에 대해 알아보자. 불교는 살생을 금하고, 자비를 가르치는 곳인데, 도대체 왜 승병이라는 무력 조직을 두게 되었을까? 우리는 승병이라면 먼저 사명대사, 원효대사 등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싸운 분들을 떠올린다. 그래서인지 승병 하면 오랑캐의 침략에 대항하여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싸우는 군대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어 우리가 승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상은 매우 좋다.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 등 불교가 융성하였던 국가에서는 사찰이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사찰이 그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무력을 필요로 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승병의 출발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 중국의 소림사를 비롯한 여러 절이 무술의 본산이 되었던 것도 우연은 아니라 할 것이다. 승병이 가장 큰 세력을 형성했던 곳은 일본이었다. 일본에서는 과거 중앙권력이 취약하였으므로 여러 사찰이 강력한 승병을 보유하였다. 몇 만 명의 승병을 보유한 곳도 있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일본을 제패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도 본원사(本願寺, 혼겐지)와의 전쟁에서 수 만 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전력으로 싸웠으나, 몇 년에 걸친 공격에도 이기지 못할 정도였다. 일본의 사찰들이 이렇게 승병이라는 강력한 무력을 보유하였기 때문에 이들이 저지르는 패악질과 행패도 적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달리 일본에서는 “승병”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중앙권력이 강하였기 때문에 사찰이 무력을 보유하기가 어려웠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조정에 의한 불교의 배척으로 승병이 활동하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의 위기 시에 승병들이 나타나 나라를 구하는데 일조를 했으므로, 우리는 승병에 대한 인상이 좋을 수밖에 없다.  

안국사

다시 본론으로 돌아온다. 안국사는 높은 지대에 있는 절이라 터는 좁았지만 여러 개의 건물이 상당히 짜임새 있게 들어서 있었다. 가장 중심 되는 건물은 극락전(極樂殿)인데, 스마트폰의 고도계를 켜보니 높이가 꼭 해발 1,000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적상산의 높이가 1,030미터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거의 정상에 위치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절에서 내려다보니 저 아래 산 아래까지 경치가 펼쳐진다. 절집도 좋지만 절에서 내려다보는 산 아래 풍경은 더욱 좋다. 


절 바로 아래쪽에 <적상산성>이 있다. 고려 말에 최영 장군의 건의에 의해 만들어진 산성이라 하는데, 이런 높은 곳에 무엇 때문에 산성을 건설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산 아래서 여기까지 오려면 그 옛날 아무리 빨라도 근 하루는 걸렸을 것 같은데, 이런 곳에 무엇이 있다고 적군이 공격해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영 장군이 건의하여 건설하였다면 아마 왜구에 대비하여 만든 성일 텐데, 당시 왜구들이 내륙 깊숙한 곳에까지 진출하여 눌러앉아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산성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상산성은 납작한 작은 돌을 쌓아서 만든 성인데, 높이가 어른 키보다 조금 낮은 정도, 그러니까 130-150센티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성 폭은 1미터 정도이다. 성 이쪽도 지형이 험하지만, 성 저쪽은 거의 절벽이다. 성이 없더라도 적군이 공격해오기는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성 이쪽에 있으면 성 아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성벽 위에 올라가 보면 잘 보이겠지만, 거긴 폭이 1미터도 되지 않아 서있기도 상당히 위태롭게 보인다. 이런 성이 정말로 전술적으로 역할을 하였을까 하는 의심도 든다. 

적상산성


작가의 이전글 영화24: 나는 조개가 되고 싶다(私は貝になりた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