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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Oct 26. 2023

영화: 이중간첩

거짓 귀순한 북한 첩보원의 안타까운 사랑

■ 개요


독자들 가운데는 “이수근”이라는 인물을 아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1967년 3월 말 신문에서 어마어마한 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하였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사>의 부사장인 이수근이 판문점을 통해 귀순하였다는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사라면 북한에서는 우리나라의 KBS와 MBC, 그리고 연합통신을 합한 정도의 위치에 있는 언론사이다. 그런 중요한 언론사의 부사장이 귀순해 왔다니 정말 놀라고도 놀랄만한 일이었다. 아마 그때까지 북으로부터 넘어온 사람들 가운데 가장 고위직이면서 중요인사였을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는 “이수근 귀순 환영대회”가 열렸다. 이 시기 박정희 정권은 사회적으로 무슨 큰일이 있을 때마다 환영대회니 궐기대회니 하면서 관제 대중집회를 열었다. 이수근 환영대회도 그런 관제 대중집회 가운데 하나였다. 나도 당시 중학생으로서, 몇 번 그런 관제 집회에 동원된 바 있었다. 그 후 이수근은 어느 여교수와 재혼을 하여 잘 산다는 말이 들려왔다.


2년 뒤인 1969년 1월 말 다시 정말 깜짝 놀랄만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수근이 북한의 이중간첩으로서,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남한에서 간첩활동을 하다가 발각되자 국외탈출을 하려다가 베트남 사이공(지금의 호치민 시) 공항에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는 사이공을 거쳐 캄보디아로 가려하다가 사이공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앙정보부 직원들에게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중앙정보부의 발표에 의하면 이수근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위장귀순한 뒤 국가기밀을 탐지하여 북한으로 보냈으며, 북한의 지령을 받기 위해 한국을 탈출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그해 여름 사형을 당한다.

이수근 씨와 그의 귀순을 보도한 신문들
이수근 환영대회

그런데 사실 중앙정보부의 발표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이수근은 귀순 후 줄곧 중앙정보부의 관리하에 있었고, 중앙정보부의 지시에 따라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반공강연을 하며 돌아다녔는데, 그런 그가 북한의 지령을 받고 간첩활동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 힘들다. 그러면 그는 왜 탈출을 시도했을까? 그것은 북한에서 고위직에 있던 그가 북한 비난을 위한 강연 등에 끌려다니면서 하기 싫은 강연을 하여야 하였고, 하급 정보부원들에게 수시로 구타당하고 모욕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도저히 수모를 참을 수 없어 제3 국으로 탈출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하튼 “이수근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이중간첩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이 있은지 40년 가까이 지난 지난 2018년 법원은 재심에서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다"라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의 죽음은 "사법살인"의 하나로 기록되게 되었다.


영화 <이중간첩>은 1980년 동독을 통해 귀순한 북한 정보기관의 직원이 사실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이중간첩으로서, 그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한국 정보부와 북한 간첩 간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2003년에 제작되었다. 그런데 앞에서 외 “이수근 사건”을 장황하게 설명했는가 하면 이 영화의 전개 도중에 이수근의 심정을 이해할만한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 줄거리


때는 냉전이 절정기에 달했던 1980년 독일 동베를린의 검문소 부근에서 한 발의 총성이 들린다. 이를 신호탄으로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지며, 그러한 가운데 한 남자가 동베를린으로부터 서베를린으로 무사히 탈출한다. 그는 북한의 정보기관 소속으로서 동베를린 북한대사관에 파견 나와 있던 임병호(한석규 분)란 자였다. 한국의 정보기관이 귀순의사를 밝힌 그와 계속 접촉하여 마침내 그를 귀순시키는 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북한 정보기관 소속 직원이 귀순한 것은 처음이다. 이 소식은 바로 한국에 알려져 임병호의 귀국과 함께 대대적인 환영 군중대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그의 귀순을 열광하는 군중들 앞에 나타난 임병호는 웃는 얼굴로 힘차게 태극기를 흔든다.


장면은 바뀌어 중앙정보부 고문실. 한 남자가 발가벗겨진 채로 참혹한 고문을 받고 있다. 바로 임병호였다. 몽둥이찜질은 물론, 물고문 등 여러 형태의 고문이 쉴 새 없이 가해지고, 고문담당 직원들은 발가벗겨진 그의 몸을 발길로 차면서 온갖 욕설과 모욕을 퍼붓고 있다. 위장귀순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렇게 가혹한 고문이 며칠 동안이나 계속되었지만, 임병호는 자신은 한결같이 자유를 찾아서 내려왔다고 주장한다. 고문관 가운데 한 사람이 발길로 임병호를 짓이기면서 비웃듯이 말한다. “네가 자유를 찾아서 이곳으로 왔다고 하지만, 그딴 것은 이곳에도 없어?”


며칠이나 계속되었는지 모를 고문이 끝나고, 임병호가 위장 귀순이 아니란 것을 확인한 중앙정보부는 그를 풀어준다. 그리고 그를 중앙정보부의 <대공정보분석실> 직원으로 채용한다. 임병호는 어선 남북 사건에 적절히 대처하여 상관으로부터 신임을 얻게 된다. 그러나 실은 그는 남조선 혁명 과업을 부여받고 남파된 대남 공작원이다.

임병호는 북한으로부터 첫 번째 지령을 받는다. 그것은 고정간첩으로 있는 라디오 DJ 윤수미(고소영 분)와 접선하라는 것이다. 윤수미와 접선한 임병호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간첩활동을 시작한다. 송경만(송재호 분)은 오랫동안 고정간첩으로 활약해 온 자로서, 윤수미에게는 마치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다. 임병호는 송경만, 윤수미와 함께 비 오는 날 호숫가에서 북한에서 내려온 물건을 전달받으려다 중앙정보부에 발각된다. 송경만은 중앙정보부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지만, 임병호는 겨우 윤수미와 함께 탈출에 성공한다. 그는 윤수미와 함께 북한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북한에서도 그들은 이미 용도폐기 되었다고 판단하고 그들을 버린다.


남한 정보부로부터 쫓기고 북한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임병호와 윤수미는 남미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곳에서 임병호와 윤수미는 결혼하여 함께 살며, 임병호는 바닷가 어선에서 일하고, 윤수미는 임신한 몸으로 집에서 그를 기다린다. 임병호는 일을 마치고 아내를 만나러 차를 몰고 집으로 간다. 가는 도중 누군가가 차를 태워 달라고 손을 흔든다. 임병호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차를 세운다. 그러자 그 사내는 총을 뽑아 임병호를 쏘아버린다. 임병호는 차에서 기어 나와 아내를 부르며 죽어간다.


총을 쏜 사내는 누구의 사주를 받은 걸까? 아마 한국 중앙정보부가 파견한 킬러인 것 같다. 북한으로서는 임병호를 죽일 이유도 없고, 또 그의 생사도 알 수 없으며, 안다고 하더라도 어디로 갔는지 그 정보가 없을 테니까...


■ 약간의 평


남북 양쪽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중간첩의 안타까운 사랑을 그린 영화이지만, 이야기 전개에는 엉성한 점이 많다.


우선 북한이 임병호에게 고정간첩과 접선 명령을 내리고, 또 북에서 보낸 불건을 수령하도록 지령함으로써, 이 임무를 수행하다가 임병호는 정체가 발각된다. 아무리 북한 정보기관이 엉터리 같은 짓을 한다고 해도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할 리가 없다. 그런 것은 하급 간첩에게나 시킬 일이다. 자신들의 공작원이 한국 정보기관, 그것도 대공정보분석실에 침투하였다는 것은 북한 정보기관으로서는 다시 없이 소중한 보물이다. 북한 정보기관의 장이 정상적인 머리를 가졌다면 임병호가 절대 안전하도록 보호하면서, 정말 정보부만이 알 수 있는 고급정보만을 빼내야 할 것이다. 몸으로 때우는 어설픈 공작 같은 것으로 그를 소모한다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임병호는 자신의 상관과 함께 윤수미가 근무하는 방송국을 찾아간다. 둘은 방송국 자료실에서 임병호의 상관의 눈을 피해 서로의 신분을 확인하고, 둘이 힘을 합해 남조선 혁명과업의 성공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참, 이런 바보 같은 짓이 어디 있나. 바보가 아닌 담에야 어떻게 한국 정보부의 간부가 있는 바로 옆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나. 명함이나 연락처를 나눈 후 나중에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정상이지.


이 외에도 이 영화에서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영화니까 그러려니 하다가도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임병호가 한국으로 와서 중앙정보부에서 며칠 동안이나 가혹한 고문과 함께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받는다. 이 정도의 대우를 받는다면 정말 진심으로 북한이 싫어 남한으로 귀순한 사람들도 이빨을 갈며 남한에 대해 복수를 맹세할 것 같다. 남한에 대해 가졌던 일말의 동경도 모두 날아가 버릴 것 같다. 앞에서 말한 이수근도 이러한 대우를 받고 도저히 수모를 견딜 수 없어 제3 국으로 탈출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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