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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y 05. 2024

영화: 배거 번스의 전설

흥미진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본격 골프 영화

■ 개요


필자는 2010년 경 나이 50대 중반이 되어 골프를 시작하였는데, 그 이전에도 골프에 대한 관심은 많았다. 내게 골프의 재미를 알려준 것은 <내일은 맑으리>(明日天気になあれ)라는 일본 골프 만화였다. <도전자 하리케인>(明日のジョー)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만화가 치바 테츠야(ちばてつや)가 그린 만화로서, 홀어머니가 식당을 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무카이 타이요(向太陽)란 소년이 중학교를 졸업한 후 프로골퍼가 되어 끝내는 영국 <디 오픈> 대회에서 잭 니클라우스와 혈투를 벌인 끝에 우승한다는 내용이다. 


이 만화는 총 80권이 넘는 대형 장편 영화인데, 그 속에서 벌어지는 골프 시합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특히 마지막에 영국 세인트 엔드류스 코스에서 벌어지는 디오픈 대회는 그 묘사가 얼마나 상세했는지, 만화만을 보고도 세인트 엔드류스 코스 현장에 가본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나는 1990년대 중반 무렵 이 만화를 읽었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이후로 골프를 직접 치지는 않았지만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골프 룰도 이 만화를 통해 거진 알게 되었다. 

영화 <배거 번스의 전설>(The Legend of Bagger Vance)은 스티븐 플레스필드의 소설을 영화화한 골프 영화로서 2000년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어느 노인의 회상을 통해 그 옛날의 전설적인 골프 시합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배거 번스(Bagger Vance)는 캐디인데, 우리말 표기는 ‘베가 번스’로 되어있다. ‘배거 번스’가 맞는 표기일 텐데 왜 그렇게 표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 줄거리


하디 그리브스 노인은 골프를 즐기다가 심장 발작으로 쓰러진다. 골프 도중 심장발작으로 쓰러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잔디 위에 쓰러진 그는 옛날 일을 회상한다. 


하디가 어렸을 때, 부모가 경영하는 철물상에서 손님들이 유명 골퍼인 보비 존즈와 윌터 헤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아무리 그들이 골프를 잘 친다지만 래널프 쥬너에게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쥬너는 이 지방 골프 대회에서 3년 연속 우승한 골퍼로서, 이곳 사바나 마을에서는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하디도 그와 같은 골퍼가 되고 싶다고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그 천재 골프의 인생은 어느 순간 변해버렸다. 

쥬너는 이곳에서 대부호의 딸 아델과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쥬너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전쟁터로 나갔다. 아델은 그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지만, 전쟁 후 돌아온 쥬너는 너무나 변해있었다. 그는 전쟁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물론 아델마저 피하고 홀로 술에 찌든 생활에 들어갔다. 세상과는 완전 담을 쌓았다. 아델과의 결혼 약속도 이미 지난 일이 되어버렸다. 


미국에서 대공황이 발생하였고 그 여파는 이곳 사바나 마을까지 불어닥쳤다. 아델의 아버지는 자신이 젊을 때부터 꿈꾸어 왔던 골프장을 건설하였으나 불황의 영향으로 골프장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경영부진과 쌓여가는 부채를 견디지 못한 아델의 아버지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골프장 투자가들과 채권자들은 아델에게 골프장을 매각하라고 압박한다. 그러나 아델은 아버지의 꿈이었던 골프장을 결코 팔 수 없다고 하면서, 골프장 회생을 위하여 이곳에서 세기의 골프대회를 개최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녀가 구상한 골프대회는 지금 세계 골프계를 휩쓸고 있는 두 명의 골퍼들을 불러 1만 달러의 상금을 걸고 맞대결을 시킨다는 것이다. 두 명의 골퍼는 보비 존즈와 월터 헤건 두 사람이었다. 보비 존즈는 최근 몇 년간 각종 세계 골프대회를 석권하고, 최근 그랜드 슬럼까지 달성한 천재 골퍼로서 그는 명문 대학을 나와 변호사 자격증까지 가진 아주 지성적인 남자이다. 월터 헤건은 도박사 기질이 있는 배짱이 두둑한 승부사로서 현실감이 뛰어나면서 대단한 멘틀을 소유한 남자로서 큰 승부에 아주 강한 면모를 보인다. 

아델의 이 계획을 들은 사람들은 아무리 파격적인 상금이라 하지만 존즈와 헤건이라는 두 세계적인 골퍼가 여기까지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렇지만 아델은 두 사람을 직접 찾아가 두 사람의 승부욕을 자극하여 시합에 참가하겠다는 승낙을 받는다. 두 사람의 시합이 결정되면서 골프계의 관심은 이 작은 사바나 마을에 집중되었으며, 마을은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시합을 보기 위해서 이곳으로 오겠다고 한다. 


대회날이 다가오면서 이번 시합에 두 사람만이 출전할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을 대표할만한 골퍼가 참석해야 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런 의견이 한번 나오자 주민들은 열화같이 지역 대표 골퍼의 출전을 외친다. 그렇지만 이 지역에서는 존즈와 헤겐이라는 두 거물들과 승부를 겨룰만한 골퍼는 없다. 그러던 중 하비는 쥬너가 이 시합에 나가야 한다고 소리치고, 그 말을 들은 주민들은 모두가 쥬너의 이름을 소리 높여 외친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쥬너는 이미 폐인이 되다시피 하였다. 매일 술에 절어 마을 밖의 폐가에 살면서 도박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델은 쥬너를 찾아가 시합에 참가해 달라고 간청하지만 쥬너는 단칼에 거절해 버린다. 실망한 아델은 돌아가는데, 혼자 남은 쥬너는 혼자서 빈 스윙을 해본다. 이때 한 흑인 남자가 나타나는데, 그는 스스로를 배거 번스(윌 스미스 분)이라 소개하면서 5달러로 캐디를 맡겠다고 한다. 

배거 번스의 설득으로 쥬너는 시합에 나가기로 결심한다. 배거 번스는 쥬너의 연습을 도와주지만, 이미 몇 년을 골프에서 멀어져 있던 쥬너는 옛날의 그가 아니다. 제대로 맞는 공이 거의 없지만 번스의 차근차근한 조언으로 조금씩 나아진다. 그러나 시합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존즈와 헤겐이 시합을 위해 사바나 마을로 왔다. 골프 전문 기자들도 속속 이곳으로 모인다. 그 가운데는 미국 최고의 골프잡지 기자인 그랜틀랜드 라이스도 있었다. 라이스는 하디의 집에 머물기로 하였다. 


배거 번스는 하디를 보조 캐디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시합 전날밤 번스는 하디와 함께 골프장에 나가 코스 하나하나를 상세히 조사한다. 


드디어 시합이 시작되었다. 시합은 이틀에 걸쳐 4라운드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쥬너는 존즈와 헤겐에 밀리지 않고 대등하게 나아간다. 그러나 워낙 준비가 되지 않았던 쥬너는 5번 홀에서 OB를 기록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쥬너는 악전고투 끝에 첫 라운드를 존즈와 헤겐에게 12 오버로 뒤처진 채 마친다. 

첫 라운드가 끝나고 번스는 쥬너에게 그의 무너진 스윙을 지적해 준다. 그리고는 스스로 존즈와 헤겐의 스윙 폼을 보여주면서 쥬너에게 스윙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 쥬너는 번스의 조언과 스윙 모습을 보고는 스스로의 잘못을 고쳐나간다. 번스는 쥬너의 스윙을 지적하기보다는 쥬너가 옛날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근조근 그를 깨우쳐준다. 


두 번째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쥬너의 맹렬한 추격이 시작되었다. 2 라운드가 끝나고 쥬너는 존즈와 헤겐에게 8 오버로 따라붙었다. 첫 라운드의 경기를 보고 실망하던 마을 주민들은 두 번째 라운드에서의 쥬너의 추격을 보고는 열광하기 시작하였다. 


두 번째 날로 접어들어 세 번째 라운드에서도 쥬너의 추격은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된다. 계속 신들린 듯한 스윙으로 점수를 쌓아나가면서 타수를 좁혀나간다. 그러다가 마침내 3타 차까지 압박해 나간다. 

두 번째 날 오후 이제 마지막인 제4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존즈와 헤겐은 동타, 그들을 3타까지 추격한 쥬너의 기세는 올랐다. 마지막 라운드에서도 쥬너의 추격은 계속된다. 격차는 점점 줄어들어 중반이 되면서 이제 1타 차까지 압박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사람들은 열광하여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골프장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존즈와 헤겐도 보통이 아니다. 그들은 쥬너의 추격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해 나간다. 헤겐은 바다를 낀 홀에서 욕심을 부리다가 드라이브 셧한 공이 바다로 떨어져 버린다. 그런데 공은 모래톱 위에 놓여 있다. 헤겐은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은 후 멋지게 세컨드 셧을 쳐 그린 온 시킨다. 박세리의 셧을 연상시킨다. 


결국 4 라운드가 끝난 시점에서 3인은 모두 올스퀘어, 즉 동률이 되어 연장전에 돌입한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사람들이 타고 온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켜져 조명을 대신한다. 여기서 쥬너는 파 5 홀에서 욕심을 부리다 세컨셧을 해저드에 빠트리고 만다. 그러나 다음 셧에서 극적으로 그린 온에 성공하고 원 퍼트로 홀아웃하면서 파로 이 홀을 마감한다. 나머지 두 사람도 역시 파를 기록한다. 

이렇게 세 사람은 결국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올스퀘어로서 시합을 끝냈다. 이 시합은 세 사람 모두에게 중요하였다. 존즈는 이 시합을 마지막으로 골퍼로서의 생활을 마치고 변호사로서 새 삶을 시작하겠다고 한다. 그는 골퍼로서의 마지막을 이렇게 훌륭한 시합으로서 장식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 쥬너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헤겐은 이제는 정식 골프대회보다는 이벤트 대회에 전념하겠다고 하면서 그 첫발이 된 이번 시합이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다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쥬너, 그는 이제 새 삶을 시작한다. 그동안의 폐인 생활에서 벗어나 밝은 세상으로 나왔다. 그동안 그토록 자신을 기다렸던 아델과의 사랑도 되살아났다. 그에게는 이제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아델도 이 시합을 통해 아버지의 소중한 유산인 골프장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그토록 기다렸던 사랑을 다시 찾았다. 


모든 이에게 이와 같은 행복을 남겨준 배거 번스는 쥬너와 약속한 5달러의 캐디피를 받고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홀로 표표히 길을 떠났다. 


■ 약간의 감상


아주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골프 드라마였다. 골프는 게임의 속성상 영화화가 쉽지 않은 스포츠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골프영화라면 어떤 영화라도 마다하지 않고 볼 것이다. 


다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일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폐인이 된 옛 골프 선수가 겨우 며칠의 연습 끝에 세계 톱 골퍼들과 대등한 대결을 벌인다는 일은 현실 세상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3라운드 54홀 동안 12타를 따라붙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럼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골프 판타지 영화라 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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