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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n 18. 2021

드라마: 료마전(龍馬傳)

일본 최고 정치가의 일대기

일본에서는 가끔 국민들을 상대로 역사상 인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정치가가 누구인가 하는 여론조사를 한다. 이때 에도 막부를 개설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전국시대(戰國時代)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카마쿠라 막부를 설치한 미나모토 요리토모(源頼朝) 등 쟁쟁한 인물들을 물리치고 항상 1등으로 선정되는 인물이 바로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이다. 


사카모토 료마는 도사번(土佐蕃)의 하급 사무라이 출신으로서, 막부 말 적대관계였던 쵸슈 번(長州藩)과 사쯔마번(薩摩藩)의 동맹을 성사시켜,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성공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다. 그리고 32세란 젊은 나이에 암살에 의해 사망한다. 그야말로 일본 막부 말기에 활약한 풍운아로 평가받고 있다. 


료마전(龍馬伝)은 사카모토 료마의 생애를 그린 NHK 대하드라마로서, 2010년 48회에 걸쳐 방영되었다. 사카모토 료마를 주인공으로 한 대하드라마는 1968년에 <료마가 간다>(竜馬がゆく)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적이 있는데, 이번 방영은 두 번째이다. 1968년의 <료마가 간다>는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가 쓴 역사소설을 같은 제목으로 드라마화한 것이다. 

료마는 시고쿠(四国)의 남단인 토사 번에서 하사(下士, 케시), 즉 하급 사무라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무라이 가운데서도 신분이 높은 사무라이를 상사(上士, 죠시), 신분이 낮은 사무라이를 하사(下士)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이상으로 엄격한 신분사회였던 에도 시대의 일본에서는 상사의 아들은 상사가 되고, 하사의 아들은 하사가 되는 것이 당연하였다. 그리고 하사는 상사에 대해 꼼짝도 못하고 복종해야 하는 신분이었다. 하급 사무라이의 살림이란 것은 형편없어,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정도였다. 


료마는 어릴 때부터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弥太郎)란 친구가 있었다. 행상을 하는 아버지를 둔 찢어지도록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이 야타로가 나중에는 큰돈을 벌어 미쯔비시 재벌(三菱 財閥)의 창업자가 된다. 드라마 <료마전>에서 야타로는 내레이터로 등장하여, 그의 시점에서 사카모토 료마의 생애를 그리고 있다. 

미쯔비시 재벌 창업자 이와사키 야타로의 실제모습과 드라마 속의 모습

이 드라마는 크게 4개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부분은 사카모토 료마가 토사 번에서 태어나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사회개혁의 꿈을 키워나가는 과정이다. 봉건적 사회구조에서 숙명처럼 살아가던 료마는 격변하는 정세 속에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몸부림친다. 그러나 엄격한 봉건 질서는 그러한 료마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결국 료마는 청운의 꿈을 품고 에도(江戶, 현재의 동경)로 떠나며, 토사 번은 그를 파문한다. 


두 번째 부분은 료마가 에도와 교토에서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여러 동지들을 만나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사회개혁의 꿈을 실현시킬 준비를 착착해나간다. 이때 그는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등 반 막부파의 인물들과 교분을 두텁게 한다. 이러한 료마의 활동에 대해 막부파는 막부를 위험인물로 낙인찍었고, 신센구미(新選組)는 료마를 제거하기 위해 여러 차례 암살을 시도하나 료마는 번번이 이 위기를 넘긴다. 

세 번째 부분은 료마가 교토를 떠나 나가사키(長崎)에서 활약하던 시기이다. 료마는 교토에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암살의 위험을 피해, 나가사키로 간다. 나가사키는 서양의 상인들이 활발하게 사업을 벌이고 있는 당시 일본에서는 유일한 국제도시였다. 나가사키에서 료마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해군을 만들려고 한다. 군자금을 모으기 위하여 카스텔라 장사를 하며, 또 해운사업에도 뛰어든다. 그러나 그가 벌인 사업들은 시원찮아 해군 창설의 꿈은 멀어져 간다. 이때 쵸슈 번(長州藩)은 막부 군과 맞서 고전을 하며 싸우지만, 사쯔마 번이 막부 측에 붙을 움직임이 보인다. 료마는 쵸슈와 사쯔마의 적대관계를 중재하며, 동맹을 성사시켜 강력한 반 막부(反幕府) 세력을 형성한다. 이른바 삿쵸 동맹이다. 

삿쵸 동맹

네 번째 부분은 죠슈와 사쯔마의 동맹을 바탕으로 천황 파는 막부를 군사적으로 굴복시킨다. 마침내 막부는 천황에게 정치권력을 반환하기로 결정을 하고, 이에 료마는 새로운 나라의 기본이념을 설계한다. 그러나 교토에 도착한 그는 곧 정체불명의 인물에 의해 암살당하고 만다. 


이 드라마는 현대 일본의 출발점이 되는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성사시키기 위한 인물들의 활동을 료마를 중심으로 하여 그리고 있다. 그럼 메이지 유신이라는 것이 어떠한 정치철학에서 출발하였는가?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을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새로운 정치철학이라고 미화하고 있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현실을 지나치게 미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세기 중엽, 서구 제국은 동남아, 중국에 진출하였고 일본에 까지 그 세력을 뻗쳐왔다. 200년 동안 쇄국정책으로 인하여 세계와 격리되어 살던 일본으로서는 큰 충격이었고, 그에 따라 민심도 흉흉해졌다. 서양 제국은 막부에 대해 개국을 강요하였고, 막부는 이러한 위협에 응하여 개국을 받아들였다. 이 소식을 들은 소위 지사(志士)들은 분개하였다. 개국을 한다는 것은 서양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며, 일본은 천황을 받들고 오랑캐를 내쳐야 한다, 즉 손노죠이(尊皇攘夷, 존황양이)를 외치며 막부에 저항하였다. 즉 이들 명치유신 추진파들은 막부라는 기존의 정치체제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시대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으나, 그 기본 정치철학은 손노죠이라는 지극히 퇴행적인 것이었다.  

손노죠이를 왜치는 무사들

이들이 명치유신을 성공시키고 나서는 그들이 그동안 그렇게 비판하던 막부의 개국을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막부 이상으로 개국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리하여 서방 여러 국가와 국교를 수립하고, 무역을 확대한다. 그들이 집권하고 난 뒤 손노죠이(尊皇攘夷)라는 구호는 누구 입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지금에 와서 명치유신은 개혁과 개방의 상징으로 칭송받고 있다. 그렇지만 소위 메이지 지사(志士)들의 철학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메이지유신

이 드라마를 보고 사카모토 료마가 어째서 일본인들에게 최고의 정치가로 숭앙받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라 쵸슈 번과 사쯔마 번의 동맹을 성사시킨 것은 물론 대단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 동맹의 성사는 사카모토 료마의 힘만이 아니라 사이고 다카모리나 다카스기 신사쿠 등 쵸슈 번과 사쯔마 번의 중신들의 적극적인 호응과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쵸슈 번과 사쯔마번의 동맹을 제외한다면 료마는 정치가로서 무엇하나 제대로 해낸 것이 없었다. 그가 생각했던 현실정치의 개혁은 현실화되지 못하였고, 더욱이 그가 내세우는 정치철학이란 것도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손노죠이”(尊皇攘夷)를 떠들고 다니지만, 그에 대한 분명한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어떤 비전을 제시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의 사고의 틀이나 행동방식도 막번 체제라는 봉건적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 드라마를 감상하고 난 뒤 사카모토 료마가 왜 그렇게 일본인들에게 일본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정치가로 평가받고 있는지 궁금증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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