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형 Jul 21. 2024

프랑스 산골 숲속 집에서의 하룻밤

(2024-05-16 목a) 서유럽 렌터카여행(39)

니스의 언덕 도로가 엄청 막힌다. 차는 많고 길은 좁은 데다 서로 얽혀있느니 그럴 수밖에 없다. 주유소도 잘 보이지 않는다. 처음엔 느긋한 마음이었지만 점점 초조해진다. 겨우 좁은 도로를 빠져나왔는가 생각했더니 바로 하이웨이와 연결된다. 하이웨이를 탔다가 주유소가 없으면 낭패다. 벌써 빨간불이 켜지고 난 뒤, 20킬로 이상 달린 것 같다. 하이웨이를 타지 않고 주유소를 검색하여 찾아갔다. 찾아간 주유소가 폐쇄되었다. 일이 자꾸 꼬인다.


점점 도로가 이상해진다. 갑자기 지하도로로 들어갔는데, 지하도로가 마치 미로 같다. 지하도로 안에서 갑자기 몇 갈래로 길이 나뉘기도 하고 합류되기도 한다. 그런데 지하라서 내비도 작동하지 않는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는 웬만한 터널이나 지하도로 들어가더라도 인터넷이 다 되지만, 유럽은 터널이나 지하주차장 혹은 지하도에서는 인터넷이 거의 안된다. 그래서 그 속에서는 내비가 무용지물이다. 


도무지 도로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모르겠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길을 헤매다가 지하도를 겨우 빠져나왔다. 아주 좁은 도로가 나있는 시가지이다. 처음 가는 길이라 조심조심 속도를 늦춰 가는데, 보행자들이 차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길을 건넌다. 차가 가니까 보행자는 당연히 도로가에서 기다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아가씨가 내 차가 가는데도 차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길을 건넌다. 그 바람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내가 놀라서 등에 식은땀이 난다. 

도로에서 내려다보는 니스 풍경

이탈리아나 프랑스 사람들은 운전을 험하게 하지만, 도로에서 통행자가 우선이라는 원칙은 철저히 지키는 것 같다. 대부분의 차들이 횡단보도 옆에 보행자가 보이면 차를 멈춰 보행자들이 먼저 지나가고 난 뒤에 차들이 지나간다. 나도 국내에서 운전할 때는 보행자들을 상당히 배려해서 운전하는 편인데, 유럽에 오니 오히려 내가 보행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운전자가 된 것 같다. 운전을 하면서 "사람 먼저, 사람 먼저"하는 말을 되네인다.       


이미 내비는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었다. 그냥 도로가 보이면 보이는 대로 가다가 붉은 신호등이면 멈추고, 푸른 신호등이면 다시 가는 그런 형편이 되었다. 그러던 중 겨우 주유소를 하나 발견했다. 리터당 450원 정도를 더 주고 직원으로부터 주유 서비스를 받았다. 유럽의 주유소에는 주유기가 몇 대 있으면 그중 한두 대의 주유기에서는 직원이 주유를 해준다. 이렇게 직원으로부터 주유서비스를 받는 주유기는 기름값이 리터당 300-450원 정도 더 비싸다. 비싼 기름값에 20유로 정도만 주유를 하였다. 한적한 도로가 나오면 그곳에서 주유소를 찾아 탱크를 가득 채울 생각이다. 

니스 해변도로

이제 숙소를 향해 달린다. 시내를 빠져나오더니 숲 속으로 난 도로를 달린다. 어제의 숙소처럼 높은 산속은 아니지만 숲은 훨씬 더 울창하다. 내가 왜 하필 이런 곳에 있는 숙소를 정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니스 교외의 숲과 계곡이 있는 숙소"란 말에 끌려 예약을 한 것이었다. 강원도 산골에 가도 이 정도로 깊은 숲 속에 있는 숙소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승용차 두 대가 교차하기 어려울 것 같은 좁은 숲길을 끊임없이 간다. 


마지막으로 좁은 임도와 같은 길을 10분쯤 달리니 오늘의 숙소가 나온다. 산속에 있는 가정집이다. 근처에는 집들이 한두 채씩 숲 속에 뚝뚝 떨어져서 위치해 있다. 에어비앤비의 소개 문구 그대로 집 뒤로는 깊은 숲이 있는 산이고, 집 옆으로는 계곡물이 흐른다. 40대 정도로 보아는 부부와 10대 후반 정도의 딸 세 식구가 우리를 반겨준다. 방은 널찍하며, 제법 큰 소파까지 있다. 대박이다. 마음에 쏙 든다. 이곳에서 하룻밤만 보내는 것이 아쉽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신발장 위에 “우리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말이 큰 한글 글씨로 쓰여있다. 그런데 글씨를 아주 잘 썼다. 나야 원래 악필이긴 하지만, 하여튼 나보다는 훨씬 잘 쓴 글씨이다.   

깊은 산 속에 자리잡은 숙소

집주인 남편은 자신의 딸이 한국을 아주 좋아한다고 하면서 한국말도 곧잘 한다고 하면서 딸에게 한국말을 한 번 해보라고 부추긴다. 그렇지만 딸은 부끄러워하면서 한국말을 잘 못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빠가 자꾸 채근하니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한다. 딸과 아내가 K팝과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한다. 


시간은 벌써 7시 반이 되었다. 근처 10분 거리에 슈퍼마켓이 있다고 하는데 이미 늦었다. 오늘도 저녁을 라면으로 때운다. 니스에서 그렇게 헤매지만 않았어도 오늘은 스테이크에 와인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곁가지 이야기: 횡단보도는 언제 건너나?


벌써 30년 전쯤 이야기인가 보다. 어느 일본인이 쓴 나라별로 보행자들이 언제 횡단보도를 건너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독일인은 파란불이 켜졌을 때 횡단보도를 건넌다. 프랑스인은 자기가 건너고 싶을 때 횡단보도를 건넌다. 일본인은 옆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 건넌다. 이 이야기는 일본인들의 '집단주의'를 꼬집는 의도에서 쓴 글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빨간불도 함께 건너면 무섭지 않아"(赤い灯も一緒に渡れば怖くない.)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운전을 하며, 그리고 도보로 시내관광을 하며 각 나라의 보행자들의 습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과연 독일인들은 교통신호를 준수하여 빨간불일 때는 기다렸다 파란불이 켜져야 횡단보도를 건넜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에서도 빨간불이면 인내성 있게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프랑스인들은 여간 위험한 경우가 아니면 빨간불이 들어와도 그냥 길을 건넌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는 아예 차가 오는지 보지도 않고 길을 건넌다. 빨간불이 켜져도 차가 없으면 길을 건너는 것은 물론, 자동차가 오더라도 속도가 느리면 서슴없이 길을 건넌다. 도로 폭이 넓은 간선도로도 마찬가지이다. 운전사들도 습관이 된 듯 그런 일에 전혀 개의치 않은 것 같았다.


이탈리아인들은 위의 세 나라를 모두 합한 것 같았다. 신호를 지키는 듯하다가 빨간불이라도 한 사람이 길을 건너면 모두 우르르 따라 건넌다. 폭이 좁은 길에서는 신호등에 거의 신경 쓰지 않고 길을 건넌다.


재미있는 현상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각 나라마다 그 나라 사람들의 습관을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지켜라"라는 격언을 사람들이 잘 따르는 것 같다. 집사람도 현지의 법에 빠르게 적응하였다.


이런 교통습관에는 각 나라의 국민성의 원인이 크겠지만, 교통사정이라는  인프라의 영향도 큰 것 같았다. 독일의 경우는 대부분 도시가 반듯반듯하게 이루어져 도로도 단순하였다. 횡단보도의 신호등도 빨리 바뀌었다. 빨간불이라도 조금만 기다리면 신호등이 바뀐다.


프랑스의 경우는 횡단보도 신호등이 꽤 길어 신호등을 지키다가는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곳은 5분이 지나도록 파란불이 들어오지 않는 곳도 있었다. 아주 좁은 도로인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탈리아는 올드타운이 많아 도로 폭이 좁은 길이 많았다. 신호를 다 지키다가는 골목마다 발걸음이 막힌다.


각자들 나라 사정에 맞추어 보행자나 운전자들이 적응해 생활하는 것 같다. 좋다 나쁘다로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외국인인 나에게는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작가의 이전글 Nice wasn’t so nic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