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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l 22. 2024

다시 한번 니스로

(2024-05-17 금) 서유럽 렌터카여행(40)

아침 산새 노랫소리에 잠을 깼다. 창문을 여니 시원한 숲바람이 불어 들어오고, 계곡 물소리가 들려온다. 이 집이라면 며칠 묵었다 가고 싶은데, 다음 스케줄 때문에 그럴 수 없다. 미리 숙소를 예약하면 숙박비가 싼 건 좋은데 이렇게 여행에 융통성이란 게 조금도 없게 된다. 이 좋은 숲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아쉽다. 신발장에 있던 한글로 된 환영의 글을 누가 썼느냐고 물었더니, 예상외로 딸이 아니고 집주인이 썼다고 한다. 한글을 전혀 모르는데, 딸이 써준 한글을 보고 그리다시피 하였다고 한다. 아주 예술적 감각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내일은 프랑스 남부에 있는 국립공원인 고르즈 베르동을 탐방할 예정이다. 그래서 오늘 숙소는 그곳과 가까운 '셍 베노이'라는 시골 마을의 농가를 예약해 두었다. 오늘 숙소에서 바로 그곳까지 간다면 한 시간 정도로 충분하다. 그렇지만 어제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니스를 다시 한번 들린 후 칸을 거쳐 오늘 숙소로 가는 U자 형태의 경로를 택했다.


니스로 향하는 도중 주유소가 보인다. 더 이상 기름 때문에 스트레스받지는 말자는 생각에서 탱크 가득히 주유를 하고 가기로 했다. 기름값이 싼 주유소인지 줄이 무지하게 길게 밀려있다. 앞 차가 기름을 넣고 정산하는 방법을 눈여겨봐 두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역시 연료탱크 뚜껑이 열리지 않는다. 또 이 연료 뚜껑 설계를 한 넘을 속으로 무지하게 욕했다. 연료 캡을 열려고 씨름을 하는 사이에 내 뒤로 기름을 넣으려는 차는 이제 거의 10대 가까이 줄을 서있다. 아무리 뚜껑을 열려고 해도 안된다.

갈등이 생긴다. 주유를 포기하고 그냥 나가버릴까. 아니다. 난 답답할 것 하나도 없다. 이러고 있으면 누군가 도와주겠지. 역시 예상대로 기다리다 참다못했는지 뒤 차에서 젊은이가 나와서는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 젊은이도 좀 끙끙대더니 뚜껑을 열어준다. 정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름을 넣을 때마다 이 고생을 해야 하나...


니스 해변이 가까워졌다. 역시 살인적인 교통지옥이 시작된다. 지난번 제노바가 교통지옥이라 했지만, 니스에는 댈 것이 못된다. 정말 말도 못 하는 교통지옥이다. 게다가 보행자는 더 위험하다. 이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건넌다. 한국식으로 운전했다간 큰일 난다. 사람들이 그냥 자기들 내키는 대로 주위를 살피지도 않고 그냥 길을 건넌다. 아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사히 리스해변에 도착했다. 아주 큰 지하주차장을 발견하여 주차하였다. 주차비가 무지 비싸다. 얼핏 보니 10분에 1유로씩이나 한다. 주차장에서 나오니 앞쪽에는 큰 철제 탑이, 뒤쪽에는 아폴론 분수대가 보인다. 어제 왔던 니스와는 다른 곳이다. 어제는 가파른 산 아래의 해변이었는데, 오늘은 긴 해안선이 있는 평지로 된 해변이다. 바로 우리가 사진에서 흔히 보는 바로 그 니스의 풍경이다. 어제 갔었던 니스 해변은 변두리 해변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해변의 경치는 어제가 더 좋았다.

니스의 해변에는 벌써 사람들이 붐빈다. 아직 철이 아니라 물속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지만, 해변은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저마다 작은 자리를 깔아놓고 수영복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긴다. 공기는 선선하지만 햇빛은 따갑다. 이곳에는 햇빛이 하도 따가워 겨울에도 일광욕을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 한다. 니스의 위도는 북위 44도에 가까워 우리나라의 중강진보다 더 북쪽이며, 만주의 하얼빈과 비슷한 정도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따뜻하니 지중해성 기후의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곳곳에 야자수 나무이다.


니스의 바다 색깔은 두 가지이다. 해변에 가까운 쪽은 투명한 옥색이다. 그리고 해변을 조금만 벗어나면 푸르디푸른 진한 청색이다. 이 두 색깔의 바닷물이 선명한 경계를 짓고 펼쳐지고 있다. 니스의 해변에는 모래가 없다. 모두 작은 자갈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지만 거제도의 몽돌해변의 자갈에는 따라오지 못한다. 니스의 해변은 초승달 모습으로 바다를 감싸 안고 있는데, 어쩐지 부산 해운대와 비슷한 느낌을 갖게 한다. 


잠시동안의 니스 해변 산책을 즐긴 후 해변 안쪽 시가지 구경을 하였다. 안쪽 시가지의 중심은 아폴론 분수(Nice Apollon Fountain)이다. 시원한 물을 내뿜는 분수를 가운데 두고 좁은 자동차 도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트램도 다닌다. 아폴론 분수는 1956년에 만들어졌으니 역사는 길지 않다. 분수의 중앙에는 태양의 신인 아폴론의 대리석상이 서 있다. 아폴론 동상 주위에는 신화 속의 요정들과 동물들의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이 조각들은 물을 뿜어내며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니스의 시가지 풍경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주차요금 정산을 하려는데 정산기가 마음먹은 대로 잘 안된다. 정산기는 불어로만 표시된다. 하도 안되길래 글자판을 신경 써서 들여다봤다. 아련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한 달 티켓을 할지, 하루 티켓을 할지, 바로 나갈지를 묻는 것이다. 바로 나가기를 선택하였다. 그랬더니 그다음부턴 쉽게 처리하였다. 한 시간 미만은 주차료가 무료란다.


대학교 다닐 때까지는 불어를 제법 했다. 대학 입시 때 선택과목을 불어로 하였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Le Petit Prince)와 "O의 이야기"(Histoire d"O)는 불어 원문으로 읽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50여 년 동안 불어는 들여다본 적도 없다. 그래서 지금은 불어 단어는 생각나는 것도 전혀 없어 완전히 다 잊은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불어로 쓴 문장들을 보니까 단편적이나마 옛날 기억이 조금씩은 난다. 


다음 행선지는 칸이다. 니스에서 칸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선 니스를 빠져나가야 하는데 보통일이 아니다. 칸도 니스와 같이 지중해에 연한 도시이므로 교통사정은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길을 앞으로 한두 시간 더 운전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엄무가 안 난다. 그래, 칸은 그만 포기하자. 오늘은 일찍 숙소에 도착하여 고기를 구워 먹으며 느긋이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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