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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l 23. 2024

프랑스 시골 농가 체험

(2024-05-17 금a) 서유럽 렌터카여행(41)

내일 찾아갈 고르즈 베르동은 국립공원인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주위에 도시가 없다. 그래서 최대한 고르즈 베르동에 가까운 마을을 찾아 예약한 것이 오늘의 숙소이다. 니스에서 북쪽 방향으로 난 고속도로를 달린다. 앞쪽 저 멀리는 산이 첩첩이 기다리고 있으며, 가장 뒤쪽에 보이는 높은 산에는 흰 눈이 쌓여있다. 한참을 달린 후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더니, 얼마 안 가 산속도로로 들어선다. 그저께도 산속 마을에서 잤고, 어제도 깊은 산속 숙소에서 머물렀다. 오늘도 또 산속 마을에서 자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그저께와 어제의 숙소는 오늘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한 시간 동안을 산속 도로로 달려가야 한다. 풍경부터가 다르다. 웅장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 연이어 펼쳐진다. 프랑스의 지형에 이렇게 웅장한 곳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도로는 왕복 2차선이지만, 마주 오는 차가 있으면 아슬아슬하게 교차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도로의 제한 속도가 구간에 따라 시속 70킬로 내지는 90킬로이다. 나는 아무리 빨리 달리려 해도 도저히 시속 50킬로 이상은 못 달리겠다. 그만큼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이다. 


도로 옆으로는 넓은 계류이다. 웅장한 산에서 흘러나오는 계류이므로 맑은 물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흐르는 물은 색깔은 짙은 잿빛이다. 그래서 물과 자갈밭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는다. 10여 년 전 네팔에 간 적이 있었는데, 히말라야에서 내려오는 물의 빛깔은 탁한 잿빛이었다. 아마 석회암 지대여서 그랬던 것 같다. 이곳의 물 색깔이 이렇게 짙은 잿빛인 것은 이곳이 석회암 지질이라 그런지, 아니면 빙하가 녹은 물이라 그런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

숙소 가는 도로 옆의 계류, 물빛이 짙은 회색이다
산골 마을에 있는 대형 슈퍼마켓

가끔 가다 마을을 만나기도 하는데, 기껏해야 20~30호 정도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다. 벌써 3일째 장을 못 봐 아침은 빵, 저녁은 라면이다. 이런 상태로 기다간 또 장을 못 보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 이렇게 작은 마을밖에 없는데 도저히 큰 슈퍼마켓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렇지만 어딜 가더라도 사람 사는 곳이라면 반드시 식료품점은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생각도 든다. 숙소를 5킬로 정도 앞두고 슈퍼마켓을 발견했다. 상당히 큰 슈퍼마켓으로서, 우리나라의 중형 슈퍼마켓과 대형마트의 중간 정도 규모였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식품을 구입하였다.


이태리 사람들 운전이 난폭하다고 했는데 프랑스 사람들도 만만치 않다. 아니 이태리 사람들에 비해 오히려 한 술 더 뜨는 것 같다. 길이 익숙지 않아 속력을 못 내니 모두들 뒤에 바싹 붙어와서는 틈만 보이면 굉음을 내면서 추월해 간다. 험한 길이라 속력을 못 내니 항상 내 뒤로는 차들이 밀려있다. 그래서 가끔 한 번씩은 조금 넓은 길이 나오면 길옆으로 피해 뒤차들을 보내주곤 했다.   


거의 한 시간을 달린 후 차는 가파른 경사도로로 들어선다. 지금까지 달려온 길은 주위 풍경이 아주 웅장하였지만, 도로의 경사는 크게 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가파른 산간도로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산 꼭대기 저 위에 작은 마을이 보인다. 바로 오늘의 숙소가 있는 생 베노이 마을이다. 이 숙소는 에어비엔비를 통해 예약하였는데, 숙소의 사진을 가지고 있으므로 마을로 가면 쉽게 숙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숙소로 가는 도로 옆의 풍경

산 꼭대기에 있는 생 베노이 마을은 이전에는 작은 성곽 마을이었던 것 같다. 폐허가 된 작은 성문을 통과하니 바로 조그만 둥근 광장이 나오고, 그 광장을 중심으로 20-30호 정도의 집들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 사진에서 본 숙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동양인이 차를 타고 들어와서 그런지 신기한 듯 바라본다.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어디를 찾느냐고 묻는다. 내가 숙소의 바우처를 보여주니까 이곳이 아니란다. 그러면서 내가 예약한 숙소는 마을 아래 기찻길 옆에 있는 외딴집이라 한다. 


이 여자도 영어가 아주 서툴다. 그래서 내게 길을 가르쳐주면서 진땀을 흘린다. 연신 영어가 서툴러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면서 서툰 영어로 떠듬떠듬 숙소 가는 길을 가르쳐준다.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 내게 조금도 미안해할 일이 아닌데, 이런 점은 꼭 우리나라 사람 정서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그 여자가 한마디 하면 나도 한마디 거들고 하면서 겨우 숙소를 찾아가는 길을 알았다. 오늘 숙소는 산자락에 위치한 외딴집이었다. 

오늘의 숙소 시골집

이곳 일대는 모두 산이지만 숙소 주위는 제법 넓은 평지로서 온통 목초들이 자라고 있다. 이 외딴집에는 할머니 혼자만 살고 있다고 한다. 마당 건너에 있는 초원으로 걸어 나가니 맑고 시원한 공기가 가슴으로 밀려든다. 나이가 80세 정도 되어 보이는 할머니는 텃밭 농사를 지으며, 도자기 공예도 하면서 혼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집 안에 도자기를 비롯한 공예품이 꽤 많았다. 


짐을 대충 챙긴 후 집사람이 고기를 굽는다. 마트에서 쇠고기 400그램, 돼지고기 300그램을 샀지만 10유로도 안된다. 주인 할머니에게 함께 식사를 하자고 권하였다. 주인 할머니는 큰 빵에 치즈, 그리고 큰 와인병을 가져온다. 마당에 차려진 식탁에서 오랜만에 고기와 치즈에다가 와인을 취하도록 마셨다.


집 안에 걸린 사진을 보니 할머니와 남편이 직접 이 집을 지은 것 같았다. 그들 부부 외에도 여러 젊은 사람들이 집 짓는 일을 거들어주는 사진을 보았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화제가 가족 이야기로 흘렀다. 할머니는 내게 자식이 몇이냐고 묻고, 나는 일남일녀이고 위의 애가 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내의 자식은 어떻게 되냐고 묻는다. 나는 일순 당황하여 내 자식이 아내의 자식이기도 하니까 마찬가지로 일남일녀라 대답했다. 할머니는 수긍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런 이상한 질문을 했을까? 아마 프랑스에서는 나이가 들도록 함께 사는 부부가 그다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숙소와 숙소 앞 목초지

할머니는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남편과는 아마 사별한 것 같다. 아들은 없고 딸이 일곱이라 한다. 조금 전에 집 짓는 사진에서 젊은이들이 도와주고 있는 사진을 봐서 나는 당연히 그들이 딸과 사위들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 집을 지을 때 사위들과 함께 하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무슨 말이라며 이해를 못 하겠다고 대답한다.


나는 사위(son-in-law)란 말을 이해 못 하나 생각해서 다시 "당신 딸의 남편"이라고 고쳐 물었다. 이번에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한다. 집 짓는 것을 도와준 사람들은 동네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런 후 잠시 대화는 끊어지고 다른 화제로 옮겨갔다. 더 이상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해봤자 좋을 것 없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가족에 대한 관념이 우리와는 뭔가 큰 차이가 난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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