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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ug 29. 2024

중국 술에 얽힌 세 가지 에피소드

1. 수정방: 2004년인가, 중국 북경에 대규모 공장을 두고 있는 모 대기업의 초청으로 여러 직장 동료들과 함께 중국 출장을 갔다. 회사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불만이 있었다면 술이었다. 저녁을 먹을 때마다 양껏 마시라면서 테이블마다 술을 내놓는데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였다. 그러면서도 우릴 안내하던 직원은 연신 좋은 술이라 자화자찬을 한다. 우린 이름도 첨 듣는 술을 내놓곤 되게 생색낸다며, 이왕 대접할 바엔 좀 좋은 술을 내놓을 거지 하면서 낮은 소리로 구시렁거렸다. 그래도 술맛은 괜찮은 것 같았다. 알고 보니 그 술이 바로 수정방, 당시만 하더라도 출시 초기라 아무도 이 술이 그렇게 비싸고 좋은 술인지 몰랐다.


2. 마호타이: 저우포하이가 키신저에게 대접하면서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술 마호타이, 무지하게 비싼 줄 알았다. 한 병에 수천만 원씩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02년 무렵 친구와 일본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의 중국집에 가서 중국술을 주문하였다. 일본 중국 음식점에선 독한 중국술을 파는 경우가 드물다. 기껏해야 홍주 정도이다. 그런데 그 집에선 중국술을 가지고 있었다. 나온 술은 마호타이어서 놀랐는데, 예상외로 그다지 술값이 비싸지 않았다. 5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어 서비스 차원에서 염가로 제공하나라고 생각했다.


   10년 전 어느 카드회사의 초청으로 중국 단체 골프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저녁 만찬자리에서 가이드가 자신이 쏘겠다고 하면서 테이블마다 마오타이를 내놓았다. 그리고는 아주 비싼 술이라며 크게 생색을 낸다. 우리는 그에게 감사하며 기분 좋게 마오타이를 비웠다. 다음날 저녁 대형 슈퍼마켓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주류 매대에 전시된 술 가운데 반 정도가 마호타이란 걸 발견하였다. 값은 병당 우리 돈 1,500원에서 2,000원 정도로, 아주 대중적인 술 같았다.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마오타이에도 수많은 종류가 있으며, 값도 천차만별이란 것을. 


3. 이과두주: 1990년대 중국과 국교가 이루어지면서 물밀듯이 들어온 것이 중국약과 중국술이었다. 그중에서도 이과두주는 싼값으로 우리나라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 초 중국 상해의 어느 전통시장의 작은 만두집에 가서 만두 2인분과 이과두주 1병을 주문했더니, 우리 돈 800원 정도의 계산이 나왔다. 아마 중국에서는 당시 이과두주가 1~2백 원 정도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15년 전쯤 통계 관련 국제회의가 중국 북경에서 열려 참석하였다. 그날 저녁 북경오리점 전취덕(全聚德)에서 열린 만찬장에서는 중국 통계청장과 함께 해드 테이블에 앉았다. 나온 술은 맥주였다. 중국 통계청장이 내게 어떤 술을 좋아하느냐고 묻길래, 나는 중국 전통의 "화이트 와인"을 좋아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청장은 아주 좋아하면서 당신이야 말로 술을 제대로 안다면서, 나를 위해서 특별히 아주 좋은 중국술을 시키겠다며 웨이터를 부른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청장이 주문한 술은 바로 이과두주였다. 청장은 북경의 유명한 술이라며 연신 내게 이과두주를 따라준다. 나는 크게 실망하며, 속으로 뭐 이리 쩨쩨한 사람이 있나라고 생각했다. 별로 마시고 싶지도 않았지만, 자꾸 따라주니까 어쩔 수 없이 마셨다.


   다음날 호텔 근처에 큰 주류판매점이 있어 구경삼아 들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한쪽에 몇 개의 선반에 걸쳐 각양각색의 이과두주가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값도 몇천 원짜리부터 시작해 몇만 원, 몇십만 원, 비싼 것은 수천만 원 짜리도 있었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북경 명주라면 단연 이과두주이며, 창고에는 이보다 더 비싼 것도 있다고 한다. 이제야 알았다. 이과두주라 해서 다 같은 이과두주가 아니란 것을. 진작 알았으면 어제저녁 기분 좋게 마셨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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