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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Sep 05. 2024

영화: 천사의 황홀(天使の恍惚)

격변의 시대, 혁명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 개요


1960년대 일본은 “고도성장의 시대”, “선진국 진입의 시대” 등 여러 말로 표현될 수 있지만 “혁명의 시대”라는 말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 시기 많은 일본의 젊은이들은 진심으로 자신들의 힘으로 혁명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급진적인 투쟁을 벌여왔다. 전공투(全共闘)로 대변되듯이, 대부분의 일본 대학생들이 무력투쟁의 기치를 내걸고 급진적인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거의 10여 년 가까이 계속된 이러한 격렬 사회운동은 1970년대 초 장기간 이끌어왔던 동경대 강당 점거사건이 무장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는 것을 끝으로 사그라들었다. 


영화 <천사의 황홀>(天使の恍惚)은 제목을 보면 에로영화로 보이지만, 1960년대 격변의 시대를 살면서 혁명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프랑스 파리 꼼뮨의 시대, 소수의 엘리트 집단으로서 폭력 혁명을 꿈꾸었던 사계(四季, Four Season)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이 영화에서는 프랑스의 사계를 본떠 일본에서 폭력혁명을 주장하는 청년들이 결성한 “사계협회”(四季協會)에서 벌어지는 소속 회원들 사이의 갈등과 분열을 그리고 있다. 


■ 줄거리


혁명단체 “사계협회”에 소속된 가을 군단(秋軍団)은 10월 요시자와 켄(吉澤健)을 리더로 하여 미군부대에서 무기를 강탈한다. 사계협회는 조직원들에게 군단의 리더인 경우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로, 일반 조직원은 월요일, 화요일 등 요일을 별명으로 붙이고 있다. 군단이라 해봤자 대여섯 명의 조직원이 전부이다. 

강탈한 무기를 가지고 도망치던 중 미군에게 발각되어 총격을 받은 끝에 몇 명은 사살되고, 10월도 눈을 다쳐 시력을 잃는다. 겨우 훔쳐온 무기는 월요일 혼다 다츠히코(本田竜彦)와 금요일 요코야마 리에(横山リエ)가 겨울군단의 2월 이와부치 스스무(岩淵進) 등으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한 끝에 겨울군단에게 빼앗겨버린다. 


가을군단의 지휘관 가을 아라사 유키(荒砂ゆき)는 겨울 요시다 기요시(吉田潔)와 섹스를 하고, 겨울과 가을 군단의 통합을 가을군단의 전령인 토요일 소오가와 고사부로(小野川公三郎)에게 지시하지만, 집단에 의한 혁명을 주장하는 토요일에 대하여 월요일과 금요일이 반발한다. 결국 월요일과 금요일은 조직을 탈퇴하고 개별적으로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하며 아지트를 폭파한다. 


월요일과 금요일은 사제폭탄으로 동경 각지에서 폭발사건을 일으킨다. 가을군단은 해산하고, 리더인 가을은 여러 명의 남자들의 습격을 받으며, “개별적인 투쟁”을 외치던 금요일은 차를 타고 황야를 달리던 중 차가 대폭발해버리고 만다. 10월은 혼잡한 도로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 약간의 감상


지금 시대에 이 영화를 감상하면 영화 속의 분위기가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몇몇 젊은이들이 마치 장난감이나 다름없는 엉성한 무기를 가지고 혁명을 하겠다며 테러 사건을 벌이는 것이 어떻게 보면 우스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감상할 때는 그 시대의 분위기를 이해하여야 한다. 1960년대는 풍요의 시대이기도 하였지만, 베트남 전쟁 등으로 반전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었고, 이 외에도 여권신장 운동, 인종차별철폐 운동 등 여러 사회운동이 격렬히 전개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본에서도 프롤레타리아 혁명, 반전주의 등이 젊은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으며, 특히 일본의 거의 모든 대학들이 투쟁의 물결에 휩쓸렸다. 그들은 평화적 집회보다는 폭력투쟁을 선택하였다. 폭력투쟁이라 해봤자 각목을 들고, 머리에는 오토바이 헬맷을 쓰고 경찰과 싸우는 정도였지만. 그렇지만 그 가운데는 적군파 등과 같이 하이재킹으로 비행기를 납치하거나 폭탄테러를 벌이는 극렬단체도 있었다. 


이러한 사회상 속에서 폭력혁명을 지향하는 몇몇 젊은이들이 모여 조직한 가상의 단체 “사계”에서 벌어지는 조직원들의 이념적 지향과 갈등, 분열을 그리고 있는 것이 이 영화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이들의 행동이 유치하고 치기 어린 짓에 지나지 않지만, 그 시대에 그들은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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