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황별희를 연기한 경극 배우의 파란만장한 일생
패왕(霸王)은 초나라의 왕 항우를 가리킨다. “패왕별희”란 항우와 그의 아내 우미인의 이별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국 경극(京劇)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영화 <패왕별희>(霸王別姬)는 격변의 시대를 지나면서 경극 패왕별희를 연기하는 경극 배우가 겪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서, 1993년 중국, 홍콩, 대만의 합작으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1993년 제46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에 성공하였는데, 나는 이 영화가 남성 동성애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영화평을 보고 관람을 포기하였다. 그러다가 개봉 후 30년이 지난 얼마 전 이 영화를 감상하였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 경극배우로 성공한 주인공은 두 가지 큰 사회적 격변을 맞이하여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첫 번째는 중일전쟁이다. 중일전쟁에서 도시를 점령한 일본군은 자신들의 파티에서 경극 공연을 하라고 강요한다.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공연을 하지만, 일본군이 패퇴한 후 적군에 대한 부역자로 낙인찍혀 큰 고초를 겪는다. 두 번째 격변은 문화혁명이다. 문화역명의 와중에서 주인공은 인민들을 배신한 쓰레기로 낙인찍여 다시 큰 고초를 겪는다.
1920년대 중국 베이징. 어느 경극배우 양성소에 한 젊은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찾아온다. 그 여자는 사창가에서 일하는 매춘부로서, 아이는 그녀의 아들이었다. 그녀 자신도 그 아이가 어떤 남자의 자식인지 모른다. 여자는 양성소 단장에게 아이를 맡아달라고 애원하지만, 단장은 아이의 손가락이 여섯 개라는 이유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러자 여자는 아이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버린다. 아이의 이름은 소두자(小豆子)였다.
그때부터 소두자는 경극배우가 되기 위한 엄격한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주위의 아이들은 소두자를 보고 창녀의 아들이라면서 놀리고 괴롭힌다. 그럴 때마다 항상 소두자를 도와주는 사람은 선배인 석두(石頭)였다. 소두자는 언제나 자신을 보호해 주는 석두에게 어느 사이엔가 동성애적인 사랑을 품게 되었다.
힘든 훈련을 견디기 어려워 어느 날 소두는 친구 소뢰(小癩)와 함께 양성소를 탈출하려 한다. 마침 그날은 유명한 경극단이 베이징을 찾아온 날이었다. 경극 배우들은 시민들의 환호 혹에서 멋진 연기를 선보인다. 소두는 특히 패왕의 연기에 매료되어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둘은 꼭 훌륭한 경극 배우가 되어야겠다며 양성소로 되돌아온다. 양성소에서는 다른 아이들이 둘의 탈출을 방조했다고 하여 심한 벌을 받고 있었다. 소두는 아무 말없이 그 벌을 받아냈지만, 소뢰는 너무나 가혹한 벌을 보고는 두려워 자살해버리고 만다. 그날 낮에 본 패왕별희는 소년 소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어느 날, 소두가 속한 극단은 환관의 저택에서 경극을 공연할 기회를 얻어 패왕별희 공연을 멋지게 성공한다. 환관이 소두를 마음에 들어 하자, 극단 단장은 소두에게 성적 접대를 하도록 한다. 돌아오는 길에 버려진 아기를 발견한 소두는 그 아기를 극단에 데리고 온다. 아기의 이름은 소사(小四)였다. 그날의 성공적 공연을 계기로 소두와 석두는 경극의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둘은 성장하여 소두는 정접의(程蝶衣), 석두는 단소루(段小楼)라는 예명을 갖고 함께 “패왕별희”를 공연하여 톱스타의 자리에 오른다.
소루는 창녀인 국선(菊仙)과 결혼한다. 국선은 창가의 여주인으로부터 창녀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욕설을 듣지만, 행복을 찾기 위하여 과거와 결별한다. 접의는 질투심과 자신을 버린 엄마와 같은 신분인 창녀 국선에게 강한 적의를 품는다. 접의는 동성애자인 경극계의 거물 원사야(袁四爺)의 비호를 받아 소루와의 공연을 거절한다.
중일전쟁이 격화되기 시작한 1937년 북경은 일본군에 의해 점령된다. 우미인 역을 맡은 접의의 모습은 일본군 장교들을 반하게 하지만, 소루는 일본군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여 체포된다. 국선은 접의에게 소루와 헤어지겠으니 소루를 빼내달라고 부탁한다. 접의는 일본군 장교들 앞에서 목단정(牡丹亭) 춤을 춘다. 접의의 덕택으로 소루는 석방되었지만, 국선은 소루와 헤어지지 않는다. 낙담한 소루는 도박에 빠져 무대의상조차 팔아치우는 지경에 이른다. 한편 접의도 아편에 빠져든다. 양성소를 찾은 두 사람은 스승으로부터 꾸중을 듣고 다시 무대에 오르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곧 스승이 죽어버려 양성소 극단은 해산되어 버린다. 양성소에 있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지만, 소사만이 갈 곳이 없다. 접의는 소사를 보고 자신의 옛 모습과 겹쳐져 제자로 받아들인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하여 물러나고 중국군(국민당군)이 베이징에 입성하였다. 접의와 소루는 그들 앞에서 공연을 하지만, 공연을 관람하는 중국군의 태도는 일본군에 비해 수준이 한참 낮았다. 이에 화가 난 소루 등 공연관계자들과 중국군 병사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지고, 혼란 속에서 국선은 유산해 버린다. 곧 부역자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어 접의도 재판에 회부된다. 소루는 이전에 접의를 품었던 환관 원에게 부탁하여 유리한 증언을 하도록 한다. 그렇지만 접의는 재판을 받으며 “일본인은 자신의 몸에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라면서 중국군의 천박함을 빗대어 외침으로서 오히려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되었다. 접의의 아편 중독은 더욱 악화되었지만, 소루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무대로 돌아온 접의는 노동자를 주역으로 하는 공산주의 사상에 당황한다. 한편 공산주의 사상에 순응한 소사는 접의와 헤어지고, 문화대혁명이 벌어지자 접의를 고발하고 대신 톱스타의 자리에 오른다. 국선은 문화대혁명에 강한 불안을 느끼면서도 항상 소루의 마음을 기쁘게 해 준다. 접의는 그러한 소루 국선 부부의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문화대혁명이 격화되면서 경극은 타락의 상징으로서 탄압을 받아 접의와 소루 모두 자아비판을 강요받는다. 군중들 앞에서 치욕을 겪으면서 둘은 서로에의 애증과 배반의 모습을 보이면서, 급기야는 국선까지 이 싸움에 끌어 넣는다. 국선이 창녀였던 과거까지 들추어지자, 소루는 국선과 헤어지겠다고 선언한다. 이 말을 듣고 절망한 국선은 목을 매고 자살한다.
한편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소사는 접의의 것이었던 무대용 보석 장식품을 바라보며 기쁨에 빠져있다. 그러나 그는 곧 뒤에서 다가온 모택동주의자들에게 둘러싸인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났다.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사인방이 몰락한 이후 접의와 소루에게 드디어 다시 패왕별희를 공연할 기회가 찾아왔다. 리허설 중 쇄락한 느낌을 주는 소루에 비하여, 세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간직한 접의는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어릴 때 했던 대사의 실수를 일부러 반복한다. 접의는 천천히 소루의 칼을 뽑아 극 중의 우미인처럼 스스로의 인생과 사랑에 막을 내린다. 소루는 돌아보며 깜짝 놀라면서, 작은 목소리로 “더우지”(豆子)라며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