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인 아들을 끝까지 포용해 준 아버지의 이야기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는 20세기 초반에 활약하였던 일본의 유명한 동화 작가이자 시인으로서, 그의 대표작은 <은하철도의 밤>(銀河鉄道の夜)이다. 고독한 소년 죠반니가 친구 캄파넬라와 함께 은하철도를 타고 여행하는 이야기로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작품수는 수없이 많으며,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영화화 또는 애니메이션화, 연극화되었다.
영화 <은하철도의 아버지>(銀河鉄道の父)는 미야자와 겐지와 그의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카도이 요시키(門井慶喜)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야자와 겐지의 아버지 미야자와 마사지로(宮沢政次郎)의 눈을 통해 겐지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 영화는 2023년 일본에서 제작되었다.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는 일본 동북지방의 이와테현(岩手県) 하나마키(花巻)에서 큰 전당포를 운영하는 아버지 마사지로(政次)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겐지는 어릴 때부터 병약하여 자주 병치레를 하였는데, 그가 이질로 입원했을 때는 아버지가 직접 주위의 눈도 신경 쓰지 않고 옆에 붙어 간병을 할 정도로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끔찍했다. (당시의 일본 사회에서는 집안일은 여자가 할 일로, 남자가 아이를 간병하거나 하는 것은 채신머리없다고 보는 경향이 있었다.)
겐지는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마사지로는 겐지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전당포를 물려받으라 하였지만, 겐지는 강하게 거절한다. 겐지는 아버지에게 전당포란 것은 가난한 농민에게 돈을 빌려주고 비싼 이자를 받는 일이기 때문에 농민을 착취하는 짓이라며 분개한다. 이에 대해 마사시로는 전당포가 없으면 이들 농민들이 급한 일이 있을 때 돈을 빌려줄 사람이 없다고 설명해 준다.
어쨌든 계속되는 아버지의 강요로 겐지는 어쩔 수 없이 전당포 일을 하게 된다. 어느 날 겐지가 가게를 지키고 있을 때 어떤 남자가 허름한 물건을 들고 와 아내가 병으로 쓰러져 당장 돈이 필요하다면서 제법 큰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겐지는 불쌍한 마음이 들어 오히려 남자가 요구하는 이상의 돈을 빌려준다. 그 모습을 옆 방에서 지켜본 마사지로는 혀를 찬다. 그 남자는 아내가 병에 걸리지도 않았으며, 지금 빌려준 돈은 노름과 술값으로 탕진해 버릴 것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그렇지만 마사지로는 아들을 책망하지는 않는다.
미야자와 가는 2남 3녀인데, 겐지는 특히 바로 밑의 여동생 토시와 사이가 좋았다. 겐지는 언제나 동화를 써서 토시에게 보여준다. 그러던 중 겐지는 아버지에게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을 꺼낸다.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겐지는 동경에 있는 대학이 아니라, 모리오카 고등농림학교에 진학한다. 재학 중에 겐지는 아버지에게 인조보석을 만들어 파는 장사를 하고 싶다면서 자금을 대어달라고 부탁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한다.
여동생 토시는 동경의 여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왔다. 토시는 노망이 들어 난동을 부리는 할아버지에게 큰 소리를 쳐 조용케 할 정도로 당당한 여성으로 성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겐지는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집안의 종교와는 다른 일련종(日蓮宗)을 믿으며, 농림학교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낸다. 겐지는 종교를 통해 구원을 받지 않으면 인간 세상은 지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큰 소리로 일련종의 주문을 외우며 거리를 활보하기도 하였다.
집을 나와 동경으로 간 겐지는 일련종의 도장에 다니면서 종교와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토시가 결핵으로 앓아누웠다는 연락을 받고 겐지는 토시에게 읽혀주기 위해 급히 동화 <바람의 마타사브로>(風の又三郎)을 집필하여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겐지는 토시를 위해 계속 동화를 쓴다.
당시만 하더라도 결핵은 불치의 병이었다. 겐지의 정성 어린 간호에도 불구하고 토시는 사망한다. 토시를 화장하는 날, 겐지는 정신없이 일련종의 불경과 주문을 외운다. 아버지 마사지로는 그런 겐지에게 계속 동화를 쓰라고 격려한다. 어느 날 겐지는 아버지에게 자작 시집 <봄과 수라>(春と修羅)를 선물한다. 그 후 겐지는 동경에서 자비 출판을 계속하며, 아버지에게 자신의 책이 극찬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그 소식을 들은 마사지로는 기쁜 마음에 동경으로 올라가 겐지를 격려해 준 후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른다.
마사지로는 짐짓 아무것도 모른 채 하면서 겐지의 책을 사면서, 이 책이 잘 나가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서점 주인은 이 책은 시원찮지만, 반값으로 팔기 때문에 그런대로 나간다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들은 마사지로는 화가 나 서점 주인에게 겐지의 책을 전부 달라고 해서 사 온다. 그렇지만 겐지의 방에는 팔리지 않은 책이 산더미같이 쌓여있었다.
겐지는 하나마키로 돌아와 별장에서 혼자 살며 동화를 쓴다. 그리고 그는 라스치진협회(羅須地人協会)를 설립하여 농민들을 지도하면서 평온한 생활을 보낸다. 그런 가운데 마사지로는 겐지에게 전당포를 그만두겠다고 하면서, 가게를 둘째 아들 세이로쿠(清六)에게 넘기고 철물점을 하도록 한다. 그런 아버지에게 겐지는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겐지는 아이들 대신 이야기를 낳은 것이다.
마사지로의 귀에 겐지가 결핵에 걸렸다는 말이 들어왔다. 마사지로는 급히 별장으로 달려간다. 겐지가 저 세상으로 가서 토시를 볼 낯이 없다고 말하자, 마사시로는 빨리 병이 나아 동화를 쓰라고 격려하고, 겐지를 집으로 데려와 정성 어린 간병을 한다. 겐지는 병이 점점 깊어지면서도 농사일 상담을 위해 찾아온 농부에게 성의를 다해 응대해 주고 힘이 다해 쓰러진다. 결국 겐지는 죽는다.
아들이 죽고 난 후 겐지의 작품 전집을 출판한 마사지로는 겐지와 토시가 타고 가는 은하철도에 함께 자리하는 꿈을 꾼다.
참 이해심 깊고 아들을 정말로 사랑한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30여 년 전에 <은하철도의 밤>을 구입한 후 읽지 않고 어딘가에 던져두었는데, 다시 책을 찾아 한번 읽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