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아케치 코고로와 대결하는 여괴도(女怪盜)
영화 <검은 도마뱀>(黒蜥蜴)은 일본 추리소설 분야의 제1세대 작가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서, 1962년 일본에서 제작되었다. 에도가와 란포에 대해서는 다음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s://blog.naver.com/weekend_farmer/222553484209
이 블로그에서는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서 <눈먼 짐승>, <쌍생아-제미니> 등을 소개한 바 있다. “검은 도마뱀”, 즉 “구로 도카게”는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 괴도의 이름으로서, 그녀가 등장하는 소설은 여러 편이 있다. 이 시리즈 소설에서 검은 도마뱀은 미녀 괴도로서 보석 등 아름다운 것들만을 노리는데, 이를 둘러싸고 명탐정 아케치 코고로(明智小五郎)와 대결을 벌인다. 그런데 항상 최종 승자는 아케치 코고로이다.
유명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에서는 항상 명탐정이 등장하여 사건이 해결한다. 예를 들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에서는 에르퀼 푸아로나 미스 마플, 코난 도일의 소설에는 셜록 홈스라는 명탐정이 등장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에서는 대부분 아케치 코고로라는 명탐정이 활약한다. 참고로 일본 추리소설가 요코미조 세이시(横溝正史)의 작품에서는 우리에게 낯익은 소년탐정 김전일(金田一)의 할아버지 킨다이치 코스케(金田一耕介)가 명탐정으로 등장한다.
원제목의 “黒蜥蜴”에서 “蜥蜴”은 도마뱀을 의미하는 한자로서, 일본어로는 “도카게”라 읽는다. 그러면 우리말 음은 무엇일까? “척석”이다.
동경의 어느 호화로운 호텔에서 크리스마스이브 파티가 화려하게 열리고 있었다. 그곳 한쪽 자리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 검은 옷의 부인이 앉아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열화 같은 요청에 따라 보석만 걸친 알몸으로 “보석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녀의 왼팔에는 검은 도마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날밤 그 부인에게 자신의 연인과 연적을 죽인 후 도움을 요청하러 아마미야 쥰이치(雨宮潤一)라는 청년이 찾아온다. 부인은 그를 사망한 것으로 위장시킨 후 야마카와 겐사쿠(山川健作)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고는 충실한 부하로 삼는다. 그녀는 바로 “검은 도마뱀”이란 별명을 가진 괴도였다. 검은 도마뱀은 K호텔에 체재 중인 오사카의 부호 이와세 죠베에(岩瀬庄兵衛)의 딸 사나에(早苗)를 유괴하기 위하여 유한마담 “미도리가와 부인”(緑川夫人)이란 이름으로 이와세에게 접근하였다. 그녀의 정체는 검은 도마뱀이었다. 그러나 이와세는 이미 누군가로부터 계속 협박장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젊은 탐정 아케치 코고로에게 의뢰하여 신변 경호를 부탁한 상태였다.
미도리가와 부인은 아케치에게 사나에가 유괴될 것인가 아닌가 내기를 걸어온다. 그녀는 야마카와와 함께 사나에를 납치하는 데 성공하는 듯 보였으나, 아케치의 기지로 실패하고 겨우 도망친다. 아케치와 이와세는 오사카 남부에 있는 이와세의 자택에 사나에를 숨기지만, 검은 도마뱀은 사나에의 방에 있는 소파에 트릭을 걸어 사나에를 유괴하는 데 성공한다.
검은 도마뱀은 이와세에게 사나에를 돌려받고 싶으면 그가 소장하고 있는 다이아몬드 “이집트의 별”을 넘겨달라고 요구하고는, 장소를 오사카의 쓰텐가쿠(通天閣) 탑 위로 지정한다. 변장한 아케치는 검은 도마뱀의 뒤를 추적하고, 검은 도마뱀은 자가용인 증기선을 타고 동경으로 도망치려고 한다. 배에 올라탄 아케치는 검은 도마뱀과의 허허실실의 대결을 벌이지만, 숨어있던 소파와 함께 바다로 던져지고 만다. 검은 도마뱀은 호적수인 아케치를 잃고 격정에 싸여 울부짖는다.
검은 도마뱀은 사나에를 데리고 자신의 아지트로 돌아온다. 그녀의 아지트는 도쿄만의 쓰레기 매립지에 있는 버려진 창고의 지하에 있다. 검은 도마뱀은 사나에에게 지금까지 자신이 수집해 온 수많은 예술품과 보석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이와 함께 그녀는 또 다른 괴기스러운 컬렉션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그것은 박제된 알몸의 인간들의 진열, 우리에 갇힌 알몸의 미청년, 인간들을 방류한 수족관 등이었다.
그렇다. 검은 도마뱀은 젊고 아름다운 남녀들을 유괴해서 살해하여 박제로 만들어왔던 것이다. 검은 도마뱀은 사나에에게 그녀도 자신의 컬렉션에 추가할 것이라며 잔인하게 말한다. 사나에에게 위기가 닥치는 순간, 바다에 던져져 죽었어야 할 아케치가 나타나 검은 도마뱀을 공격해 오며, 검은 도마뱀은 갑작스러운 사태전개에 황급히 몸을 피해버린다.
에도가와 란포의 원작 소설은 대개가 공포스럽고 괴기스러운 분위기의 작품이 많다. 이에 비해 이 영화는 전개가 아주 가볍고 경쾌하며, 뮤지컬적인 요소도 많이 도입하였다. 종래의 에도가와 란포 작품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역시 공포와 괴기를 기본으로 하는 그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의 주인공인 검은 도마뱀은 괴도로서 아주 매력적이고 기지가 있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젊은이들을 살해하여 박제로 만들고, 또 수족관에 던지는 등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변한다. 전반부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은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