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무대로 한 빨치산의 투쟁을 그린 실화극
영화 <남부군>은 빨치산 출신인 이태의 동명 자전적 소설을 기반으로 정지영 감독의 연출에 의해 1990년에 제작되었다. 이태의 '남부군' 소설은 베스트셀러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영화 또한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었고 비평가들도 극찬하였다. 이 영화에는 안성기, 최민수, 최진실, 이혜영 등 당대의 스타들이 출연하였다.
합동통신사 기자로 일하던 이태는 서울이 인민군에게 점령당하자 북한의 조선통신사로 편입되어, 전주지국장으로 임명되어 전주로 내려간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이 철수하게 되자, 이태와 그의 동료들은 인민군의 지령에 따라 덕유산과 지리산 일대로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하는데, 이 영화는 그 기록을 담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제11회 청룡영화상 감독상(정지영), 남우주연상(안성기), 남우조연상(최민수), 여자 신인상(최진실) 등을 수상하였다. 이와 함께 이 영화는 한국 전쟁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국 영화사에 중요한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면서, 당시 한국의 유일한 통신사였던 합동통신사는 북한의 조선통신사로 편입된다. 합동통신사에서 일하고 있던 이태(안성기 분)는 조선통신사 전주 지국장으로 발령받고 전주로 내려간다.
거듭되는 인민군의 승리로 곧 남한의 통일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생각하지만, 인천상륙작전의 뉴스가 들어오고, 기대와는 달리 인민군은 퇴각을 시작한다. 이태를 비롯한 조선통신사 전주지국의 직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군 고위층으로부터 순창으로 이동하여 빨치산으로서 게릴라 활동을 하라는 지령이 내려온다. 이태는 직원들과 함께 순창으로 향하는 트럭에 오른다.
이태 일행은 순창의 엽운산에 있는 빨치산 부대에 편입되었다. 이태는 과거 학병으로 일본군에 끌려가 총을 쏘아본 경험이 있다고 하여 소대장으로 임명된다. 그의 소대에는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한 이영(최민수 분)과 그의 애인인 김희숙(이혜영 분) 등이 소속된다.
막상 빨치산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나, 제대로 보급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굶주림에 허덕인다. 이태의 소대는 다른 소대와 함께 식량 조달을 위해 마을로 내려간다. 이들이 마을에서 밥을 얻어먹고 식량을 조달하여 귀환하려는데, 다리 위에서 토벌군의 공격을 받는다. 이태의 소대는 처음에는 기습을 받아 위기를 맞지만, 산 위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 기관총으로 역습하여 토벌군을 물리친다. 이태는 첫 전투에서 승리하고 많은 무기도 노획하였다. 이태는 전투 중 총알이 배를 스쳐 부상을 당한다. 간호사로 새로 배속된 박민자(최진실 분)가 그를 치료해주며,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다음 날 밤 갑자기 토벌군이 마을로 진주해온다. 이태의 소대원들은 황급히 마을에서 탈출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피해를 입는다. 이태와 민자도 토벌군에게 쫓겨 마을의 집에 숨는다. 그러다가 주인 아주머니가 그들을 숨겨주고, 토벌군을 다른 곳으로 따돌리는 바람에 둘은 겨우 탈출한다. 산속에서 헤매던 이태와 민자는 빨치산의 벼락 군단에 의해 구출된다. 둘은 자신의 부대로 돌아오지만, 민자는 다른 부대로 전속 명령을 받고 부대를 떠난다. 이태와 민자는 다시 만나기를 다짐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헤어진다.
며칠이 지나 다시 토벌군이 점령하고 있는 마을을 탈환하라는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마을에서 이태의 소대는 토벌군과 대치한다. 두 부대는 서로 자리를 잡고 총격전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미 양쪽은 엄폐물로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는다.
이때 두 부대 사이에 강아지 한 마리가 달려오고, 곧이어 강아지를 잡으려는 어린 소년이 뛰어들어 온다. 이 모습을 본 이태는 즉시 사격을 중지하라고 명령하며, 토벌군 역시 사격 중지를 명령한다. 이태가 강아지를 안은 소년에게 이쪽으로 달려오라고 소리치자, 토벌군 대장도 자신 쪽으로 달려오라고 한다. 어디로 갈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 소년에게 마을 저쪽에서 소년의 엄마가 빨리 자신에게 오라고 소리친다. 그러자 소년은 어느 쪽 군대도 아닌 엄마 곁으로 달려간다. 이 영화의 시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소년은 엄마 곁으로 돌아갔지만, 총격은 다시 시작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이태의 소대에서 누군가 “두만강 푸른 물에...”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이 노래는 곧 떼창이 된다. 그러자 토벌군 측에서도 지지 않겠다는 듯 더 큰 소리로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라며 떼창을 시작한다. 대치한 두 부대는 마치 노래로 승부를 결정지으려는 듯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두 부대는 사실 한편으로는 노래를 부르며, 다른 한편으로는 노래 소리를 통해 적 부대의 규모를 추측하고 있다. 이쪽 부대를 과시하려는 듯 분산하여 노래를 부르는 이태의 작전이 성공하여 토벌군은 후퇴한다.
전투가 끝난 그날 밤, 연희전문 출신의 인텔리 청년 김영은 이태에게 그의 애인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이태는 그의 사연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듣지만, 막상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 몇몇 소대원이 몰래 술 파티를 벌인 끝에 한 병사가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린다. 그러다가 그는 어둠 속에서 날아온 총알을 맞고 사망한다. 중간 간부인 황대용(트위스트김 분)은 화가 나 마을에 밀고자가 있다면서 수색하다가 경찰관을 남편으로 두었던 과부를 밀고자로 추정한다. 그는 과부를 처단하려다가 그녀를 겁탈한다. 과부는 다음 날 혀를 물고 자살하였다.
다음 날 이 사실을 안 빨치산 대장은 황대용이 양민을 겁탈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대노한다. 그는 황대용을 군법 위반으로 즉결 처단하겠다고 하지만, 차마 자신의 손으로 방아쇠를 당기지는 못한다. 결국 그는 황대용에게 자신이 선택하라며 권총을 던져주고, 황대용은 스스로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사령부로 돌아온 빨치산들은 잠시 동안 평화를 즐긴다. 중공군이 제천까지 내려왔다는 소식에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얼마 후 토벌군이 대대적으로 사령부를 공격해온다. 빨치산들은 많은 희생을 남기고 퇴각한다. 이태는 소백산 쪽으로 가서 전북도당 본대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민자의 소식을 물어보니, 그녀는 변산반도 쪽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태는 변산반도로 이동하는 부대원들을 만나 탐문했으나, 결국 민자는 만나지 못하고 소백산으로 온다.
소백산에 봄이 왔다. 혹독한 추위는 갔지만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했다. 극심한 굶주림이 닥친다. 이태도 열병에 시달린다. 이때 변산반도 쪽에서 왔다는 병사가 민자의 부탁을 받았다고 하면서 아스피린을 건네준다. 이즈음 지리산에서 활약하는 남부군에서 지원자를 모집한다는 연락이 왔다. 이태는 남부군은 보급 사정이 좋다는 말을 듣고 자원하여 남덕유산으로 이동한다.
그는 부대와 합류하여 남덕유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동한다. 지리산 뱀사골 계곡에서 그들은 오랜만에 목욕을 한다. 남자들은 계곡 아래쪽에서, 여자들은 계곡 위쪽에서 목욕을 하고 있으나, 전설적인 남부군의 지도자 이현상이 나타나 그들을 격려한다. 모든 부대원들은 환호성을 울리며 그에게 존경의 표시를 보인다. 이태는 무사히 남부군에 합류하였다.
남부군은 산 아래 마을에 진주한 토벌군을 치기로 한다. 그들은 밤중에 마을을 습격하지만, 토벌군은 이미 대응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관총으로 응전하는 토벌군에 빨치산은 많은 희생을 남기고 일단 후퇴한다. 일선 소대장들은 지휘관에게 마을을 폭격해야 한다고 건의한다. 그러나 지휘관은 그럴 경우 무고한 주민의 희생이 커진다고 하며 폭격을 망설인다. 결국 그는 주민을 비밀리에 소개한 후 포격을 하기로 하고, 이 작전은 성공하여 빨치산 부대는 토벌군을 퇴치하고 마을을 점령한다.
이 전투에서 빨치산 측에서도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지휘부는 부상병들을 임시 치료소로 후송하기로 하고, 각기병에 걸린 이태에게 그들을 보살피라며 함께 보낸다. 이태는 남부군이 집결해 있는 피아골에 도착하였다. 최고 지휘관인 이현상이 이번 승리에 대한 포상을 시작했다. 이태는 여러 간부들의 추천을 받아 정치부에 근무하게 되고, 조선노동당 당원이 된다. 이태는 신문과 전사 편집을 담당하게 된다.
이후 남부군이 여러 차례 작전을 전개했으나, 그때마다 번번이 토벌군의 강력한 반격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겨울이 왔다. 개성에서 휴전 협정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빨치산들은 추위에 떨면서 휴전이 성립되어 북으로 귀환하게 될 것을 꿈꾼다.
남부군은 다시 출정식을 올린다. 휴전 협정을 앞두고 전선에서는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후방에서 남부군이 활동을 벌이면 국군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일선의 군을 뺄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이다. 그런 점에서 남부군은 승리를 하면 당연히 승이지만, 패배를 하더라도 일선의 적의 전력을 약화시켰다는 점에서 역시 승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남부군의 출정식이 클라이맥스로 향하고 있을 때 갑자기 폭격이 시작된다. 토벌군들이 이곳을 급습해온 것이다. 남부군 지휘부에서는 일단 각자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태도 일단 피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포위되었다. 그러나 이태를 비롯한 일부 부대는 사선을 뚫고 겨우 포위망을 탈출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토벌군은 다시 공격을 해온다. 이 와중에 이태는 스쳐 가는 총알에 쓰러진다. 희숙이 그를 구하려 달려왔지만, 그녀 역시 총에 맞고 죽는다. 이태는 그 자리를 겨우 벗어났다.
이태와 몇몇 남부군 병사는 일주일 이상 쫓겨다니고 있다. 대원 대부분이 동상에 걸렸다. 그들은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절망하며,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도 늘어난다. 행군 대열이 중간에 끊겨 이태는 후발 팀을 찾기 위해 부대를 먼저 보내고 자신은 그 자리에 남는다. 그러다가 낙오된 병사 셋을 만난다. 한 사람은 간호사였다. 네 사람은 다시 행군을 시작하여 부대를 따라간다. 지리산 대성골에서 그들은 앞서간 부대들이 밥을 하고 있는 모습이 멀리서 보인다.
세 사람은 그리로 달려갔지만, 부대는 모두 전멸하여 살아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밥을 해 먹다가 습격을 받아 모두 전멸당한 것이었다. 세 사람은 죽어있는 사람들의 손에 있는 밥을 허겁지겁 먹는다. 다시 출발한 세 사람은 화전민의 산막이 있는 임걸령으로 간다. 그러나 그곳에도 식량이라곤 쌀 한 톨, 썩은 감자 한 알 없었다. 하룻밤을 쉬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한 사람이 움직이지 못한다. 간호사가 살펴보니 그 사람은 동상으로 이미 다리 전체가 시커멓게 썩어 있었다. 사람을 살리려면 다리를 잘라야 한다. 이태는 옆에 보이는 도끼로 그의 다리를 잘라준다.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데리고 산길을 갈 수는 없다. 이태는 그에게 투항 권유 삐라를 주고, 토벌군이 오면 투항하라고 하고 길을 떠나려 한다. 다리를 잘린 병사는 자신을 두고 가지 말라며 울부짖는다. 이태는 그에게 수류탄을 건네주면서 투항을 하든지 아니면 자살을 하든지 알아서 판단하라고 한다. 그때 갑자기 토벌군이 습격을 해온다. 이태와 남은 두 사람은 도망치고, 다리를 잘린 병사는 투항할지 말지를 망설이다가 수류탄을 잘못 만져 폭사하고 만다.
이태는 추격 당하면서 동료들을 모두 잃고 혼자만 남는다. 그는 계곡 얼음 밑에 몸을 숨겨 겨우 위기에서 벗어난다. 혹독한 지리산의 한겨울에 계곡 얼음 밑 물속에 있었던 이태에게 추위가 몰아친다. 온몸이 얼어온다. 그는 혼자서 산속을 헤매다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고 느끼고 자살하려고 마음먹는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그의 눈에 남부군이 지나갔다는 꺾어진 나무 가지 표시가 보인다. 그는 살았다고 생각하고 표시를 따라간다. 그러나 그곳에는 전멸된 남부군 빨치산의 시신들만 나뒹굴고 있었다.
아주 감동적인 영화였다. 이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90년에 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에 만든 영화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다.
우리나라 전쟁 영화라면 반공 영화가 많다. 그에 비하여 이 영화는 반전(反戰) 영화이다. 전쟁이 얼마나 인간성을 피폐시키고 비극을 가져오는가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빨치산이나 토벌군 어느 한쪽을 '악'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총을 든 것이다.
이 영화에서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빨치산과 토벌군 양군이 대치하는 가운데 뛰어든 강아지와 소년, 그들은 서로 자기 쪽으로 오라는 양군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 중간에서 부르는 엄마의 품으로 달려간다. 마을에서 이태와 민자가 토벌군의 포위에 빠져 위기에 처했을 때 동네 아주머니가 그들을 숨겨주고, 토벌군을 따돌린다. 그리고 마을의 과부를 겁탈한 황대용에 대해 빨치산 지휘관은 군법 위반으로 그를 처단하며, 황대용은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