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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각자의 눈으로 보는 하나의 일상의 사건

by 이재형

▪ 개요


이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으로서, 서로 얽힌 네 명의 인물 입장에서 비친 상황을 병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1996년에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또한 송강호의 데뷔작이기도 한데, 그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몇 컷에 등장할 뿐이다.


이 영화는 비선형적인 서사, 하나의 상황이 각기 다른 인물의 시각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의 내면 의식, 객관적인 시선, 지극히 일상적인 에피소드 등이 절묘하게 배합된 새롭고 독특한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최고의 한국 영화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고 한다. 이러한 호평으로 이 영화는 대내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타이거상, 밴쿠버 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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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효섭(김의성 분)은 삼류 소설가로서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하여 옥탑방에 세들어 살고 있다. 그는 민재(조은숙 분)라는 아가씨와 사귀고 있는데, 민재는 효섭을 아주 사랑하지만, 효섭에게 민재는 그저 욕망 처리의 도구일 뿐이다. 효섭은 후배가 경영하는 출판사에 원고를 주었지만, 그 후배는 원고를 제대로 읽어볼 생각도 않는다.


효섭은 지갑을 두고 왔다는 핑계로 찻값을 민재에게 계산하게 하고 차비까지 빌린다. 효섭은 유부녀인 보경(이응경 분)과 불륜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는 보경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효섭은 민재에게 빌린 돈으로 여관에서 보경과 관계를 갖고, 일이 끝난 후에는 보경에게 자신과 함께 살자고 말을 걸어본다. 그러나 보경은 단호히 거절한다.


그날 저녁 효섭은 문인들과 술자리를 가진다. 사실 그는 문인들 사이에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데, 억지로 이 자리에 낀 것이다. 그는 참석한 다른 여성 문인에게 강압적으로 술을 권하다 주위의 빈축을 사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종업원에게 시비를 걸며 난동을 부리다가 경찰서에 끌려간다. 결국 그는 즉결심판에서 구류를 선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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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는 보경의 남편으로서, 결벽증이 심한 편이다. 업무상 지방으로 출장을 가게 되는데, 고속버스 옆자리의 남자가 차멀미를 한다. 동우는 오물이 묻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화장실에 가서 양말을 갈아 신을 발을 씻는다. 그러다가 고속버스를 놓치는 낭패를 당하는데, 고속버스 회사에 항의를 해보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 그는 한 시간이 멀다고 보경에게 전화를 한다. 그는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늘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동우는 납품을 위해 백화점을 찾아가나 사장이 자리에 없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만날 수 없고, 내일 오전에 가능하다고 한다. 동우는 어쩔 수 없이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한다. 여관 옆방에서는 누군가 정사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 동우는 티켓다방에서 여자를 부른다. 여자가 어떡할 거냐고 묻자, 동우는 이야기나 하자고 한다. 다방 여자는 그런 동우를 경멸 어린 눈으로 본다. 결국 동우는 그 여자와 관계를 갖는다. 그런데 일이 끝나고 보니 사용했던 콘돔이 찢어져 있다. 다음 날 아침 동우는 비뇨기과 병원을 찾아가 성병 주사를 맞는다.


민재는 변두리 삼류 극장에서 매표소 일을 하면서, 부업으로 모닝콜을 해주는 일도 하고 있다. 어느 날 가판지 “가로수”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지원하니, 그곳은 애니메이션 더빙을 하는 일이다. 첫날 그녀는 몇 시간 일을 하고 7만 원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돌아온다. 그곳 사장도 그녀에게 목소리가 좋고 일을 잘한다며 앞으로도 같이 일을 하자고 한다. 알바를 하고 돌아오니 극장 사장의 아들 민수가 찾아와 사장이 자리를 비웠다고 화를 내었다고 전해준다. 민수는 민재를 짝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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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에게 다음에 부탁이 온 일은 성인 애니메이션의 더빙을 하는 일이다. 민재는 애니메이션의 인물들이 정사를 나누는 신음 소리를 내야 한다. 사장은 신음 소리를 제대로 못 낸다고 화를 낸다. 민재는 더 이상 이 일을 못 하겠다면서 그곳을 나온다. 극장으로 돌아와 또 사장에게 자리를 비웠다고 혼난다.


민재는 오늘이 효섭의 생일인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케이크를 사 들고 효섭의 옥탑방으로 찾아간다. 방문을 두드리니 밖으로 나온 효섭의 행동이 어딘지 어색하다. 민재가 누가 왔냐고 묻지만, 효섭은 아무도 없다고 얼버무린다. 그때 방 안에서 한 여자가 나와 몸을 피하듯이 사라진다. 그녀는 바로 보경이었다. 민재는 자신은 효섭을 그토록 사랑하는데 그럴 수가 있느냐며 따지지만, 그는 오히려 그녀에게 멸시의 말을 퍼붓고 폭력을 휘두를 뿐이었다. 민재는 마음이 무너져 내린 채 울면서 돌아오는데, 민수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민재는 민수에게 몸을 맡기지만, 그녀는 민수의 기대와는 달리 아무런 감정 표현도 하지 않는다.


보경은 효섭과 함께 도망치기로 했다. 약속한 버스 터미널에서 아무리 기다렸지만 효섭은 오지 않는다. 그녀는 효섭의 옥탑방에 찾아가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쪽지를 남기고 나온다. 보경은 집으로 돌아오다가 남편 동우를 발견한다. 그녀가 몰래 숨어서 보니, 동우는 비뇨기과 병원에 들렀다 나온다. 그녀는 그 비뇨기과에 찾아가 남편이 찾아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집 근처 사진관에 자신의 가족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액자를 부수고 사진을 찢어버린다.

집으로 돌아온 보경은 자리에 누워 자기가 죽었다는 상상을 해본다. 자신의 빈소에 효섭이 찾아와서 동우와 만난다. 그런 다음 효섭은 이불에 누워있는 자신에게 다가와 자신의 몸을 만진다. 그런 상상을 하다가 그녀는 일어선다.


그녀는 다시 효섭의 옥탑방을 찾아간다. 자신이 꽂아놓은 쪽지는 없어졌지만 아직도 문은 잠겨있다. 그녀는 창문을 통해 방 안을 살펴본다. 방 안에는 피투성이가 된 효섭과 민재의 시신이 침대에 쓰러져 있었고, 피를 뒤집어쓴 민수가 칼을 들고 넋이 나간 듯 앉아있다. 이 모습을 보경이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보경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방에 누워있는데, 동우가 들어와 갑자기 그녀를 덮쳐 관계를 시도하려고 한다. 보경이 완강히 거절하지만 그는 중단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바탕 두 사람의 정사가 끝이 났다. 동우는 담배를 사겠다며 나가고, 보경은 효섭에게 전화를 해본다. 다시 보경은 일상의 생활로 돌아온다.


▪ 약간의 감상


이 영화는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고, 여러 영화제에서도 수상을 하였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이 영화의 제목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지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거기서 헤어나지도 못하듯,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생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사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도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어둡다. 특히 두 남자 주인공인 효섭과 동우 모두 찌질하다 할까, 열등감에 빠져 있는 인물이다. 그 열등감이 엉뚱한 방향으로 표출된다. 효섭이 문인 모임에서 행패를 부리거나, 즉결심판 판사 앞에서 자신의 의사를 피력하는 것 모두 거기서 출발한 것으로 생각된다. 동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티켓다방 여자를 불러놓고 이야기나 하자고 하는 것 등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 영화에서 제일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민수가 효섭과 민재를 살해한 부분이다. 그가 두 사람을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살해할 동기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 역시 열등감에서 출발한 것일까?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티 없이 맑은 영혼을 가진 민재이다. 그런 민재가 마지막에 잔혹하게 살해당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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