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혈앵무를 서로 차지하려는 정도 무림인들의 추악한 탐욕
1970년대 초반까지 큰 인기를 얻었던 홍콩 무협 영화는 단조로운 스토리 전개와 구태의연한 대결 구도로 영화 팬들이 점점 식상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영화사들은 단순한 무협 일변도에서 벗어나 미스터리, 공포, 섹스 등의 요소를 도입하였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혈앵무>(원제: 血鸚鵡)도 기본적으로는 공포 무협 영화에다 미스터리, 블랙 판타지, 섹스 등의 요소를 더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1981년 홍콩에서 제작되었다.
아주 오랜 옛날 마왕은 10만 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13 마신의 피를 한 방울씩 모아 혈앵무를 만들었다. 누구나 혈앵무를 가지면 3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혈앵무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태평 국왕은 황제의 생일을 맞이하여 선물로 13개의 보물을 준비하였다. 그런데 보물을 황궁으로 운반하기 전날 누군가가 보물을 모두 훔쳐가고 말았다. 태평 국왕은 왕부의 총관인 곽번에게 보물을 찾아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보물을 찾아나선 곽번 앞에 돌연 붉은 광채가 나타나더니, 자신은 혈앵무이며 세 가지 소원을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한다. 곽번은 잃어버린 보물을 찾아달라고 말한다. 그러자 13상자의 보물은 돌아오고, 곽번은 그것을 왕에게 바쳤다.
그때 사람이 달려와 곽번의 아들이 낙마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곽번은 혈앵무에게 아들을 살려달라고 부탁하고, 반응이 없자 그는 칼로 관 뚜껑을 열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곽번의 아내는 죽은 아들이 살아날 리가 없다면서 그만두라고 하지만, 곽번은 계속 관 뚜껑을 열려고 한다. 그러자 곽번의 아내는 곽번을 칼로 찔러 죽인다. 갑자기 일어난 괴이한 변에 놀라 태평 국왕이 죽고, 곽번의 아내도 자살한다. 그리고 보물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와 함께 평화의 시대는 끝나고 어지럽고 혼란한 시대가 시작되었다.
엽정봉이라는 협객이 길을 가는데 괴한들이 습격해온다. 엽정봉은 괴한들을 모두 해치우고 습격한 이유를 묻자, 그가 혈앵무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혈앵무를 찾아 보물을 차지하려고 눈이 뒤집혀 있었다.
엽정봉이 다시 길을 가려는데, 근처에 있던 무덤 옆에 있는 관에서 한 인물이 벌떡 일어선다. 엽정봉이 누구인가 묻자, 그자는 자신은 죽었지만 아직 죽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만약 혈앵무를 찾는다면 보물을 차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때 한 검객이 살인자라고 소리치며 엽정봉을 공격해온다. 그는 무서운 고수였다. 엽정봉과 검객 사이에 치열한 결투가 벌어졌지만 결국 승부를 가리지 못한다. 엽정봉이 사실을 말하자 검객은 오해를 풀고 두 사람은 친구가 되기로 한다. 검객의 이름은 철흔이며, 그는 관청의 수사관이라고 한다.
엽정봉과 철흔은 시신을 관청으로 운반하였다. 관청에서는 본격적인 부검이 시작되었다. (부검 장면이 필요 이상으로 길고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보는데 정말 역겨웠다. 도중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부검 결과 시신은 독살되었다고 판명되었다. 이때 바깥에서 인기척이 난다. 엽정봉과 철흔은 급히 밖으로 뛰쳐나가는데, 그때 혈앵무가 나타나고 철흔은 독에 중독되어 죽는다. 철흔은 죽어가면서 자신의 시신을 국경 밖으로 옮겨 묻어달라고 부탁한다.
엽정봉은 철흔의 관을 들고 여행을 떠난다. 엽정봉이 객잔에 들어가자 한 불량배가 관이 보기 싫다면서 시비를 걸어온다. 엽정봉이 불량배와 싸우고 있을 때 혈앵무가 나타나 불량배를 모두 죽이고 사라진다. 그런 뒤 객잔에서 기르고 있던 소마신이라는 앵무새가 죽는다. 엽정봉이 주인에게 물으니, 그 앵무새는 앵무루라는 기루에 있는 기녀에게 얻었다고 한다. 기녀의 이름은 혈노(血奴)라고 한다.
엽정봉은 앵무루로 혈노를 찾아간다. 엽정봉 앞에 나타난 혈노는 기이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몸 왼쪽에는 하늘하늘한 옷을 걸치고 있지만, 오른쪽은 완전 나체 차림이다. 혈노는 엽정봉을 유혹한다. 엽정봉이 철흔의 몸에서 나온 혈석을 보여주자 혈노는 그것을 삼키고 갑자기 발광하기 시작한다. 엽정봉이 그녀를 제압하자, 그녀는 겨우 진정한다. 엽정봉은 혈노에게 어머니가 있고 그녀의 이름이 이대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엽정봉이 혈노에게 이대낭에 대해 물으니, 그녀는 공포스러운 반응을 보이며 마녀라고 대답한다.
얼마 후 두 관헌이 찾아와 엽정봉에게 관속에 무엇이 들어있냐고 물으며 관을 열어보라고 한다. 관헌 한 명이 관을 열고 손을 넣어 시신을 만지니 갑자기 팔이 썩어버린다. 그 관헌은 놀라 스스로 자신의 팔을 자르고 죽는다. 관헌의 죽음을 확인한 엽정봉이 다시 돌아오니 관 속에 시신이 보이지 않는다. 발자국이 보이길래 따라가니 나머지 관헌의 시신이 쓰러져있다.
관헌들이 달려와 기방에서 검시가 시작되었다. 기방의 주인이 항의하자 관헌은 그를 죽여버린다. 시신에서는 칠성당의 칠성절명침이라는 독침이 발견되었다. 검시관이 이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관헌의 우두머리인 위칠낭이 이에 대해 추궁을 한다. 그러자 검시관은 자살해버린다.
관헌들이 앵무루에 철흔의 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달려온다. 위칠낭이 부하를 시켜 관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엽정봉이 누워있다. 우두머리가 왜 그 속에 있느냐고 물으니, 엽정봉은 이곳에는 모두들 자신을 죽이려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벽에서 인기척을 느낀다. 그들은 옆방으로 달려가지만 독에 중독되어 모두 쓰러진다. 그때 황실 호위대라는 패를 찬 의문의 여자가 엽정봉을 구해주고 사라진다.
무삼야란 인물이 자객들에게 은자 천 냥을 주고 혈노를 납치한다. 그러나 도중에 위칠낭이 자객들을 습격하고, 그 틈에 엽정봉이 혈노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위칠낭은 무삼야의 손에 죽는다. 엽정봉이 무삼야에게 왜 혈노를 데리고 가려느냐고 묻자, 그는 태평안락 부귀왕국 사건의 진상을 알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혈노는 태평왕국의 왕의 딸이었다. 태평 국왕은 붉은 박쥐로 만든 강력한 최음제를 먹고 변태적인 행동을 하는데, 그즈음 딸이 태어났다. 그런데 갓난딸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공주는 신분을 표시하는 구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구슬을 혈노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 이대낭이라는 노파가 무삼야를 공격하며, 치열한 결투 끝에 그녀는 죽는다.
무삼야는 혈노의 방으로 들어가는데, 그곳에는 많은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때 한 중년 여자가 나타난다. 무삼야는 그녀를 보자 정체를 알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과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혈노가 가지고 있는 옥패는 태평왕이 딸에게 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부하 자객들을 시켜 혈노를 잡아와 인질로 삼는다. 그러나 중년 여자는 암기를 던져 자객은 물론 혈노까지 쓰러뜨려버린다.
무삼야와 중년 여자 사이에 결투가 시작된다. 엽정봉도 뛰어들어 쓰러진 혈노를 돌본다. 결투를 벌이던 중년 여자는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진다. 무삼야는 여자를 찾기 위해 방을 뒤지는데, 갑자기 벽이 열리면서 그곳으로 빨려들어가 버린다. 그곳은 독사가 득실거리는 동굴이었다. 무삼야는 독사를 피해 도망치고 있는데, 어떤 괴인이 사람 고기를 뜯고 있다. 괴인은 무삼야를 보자 갑자기 공격을 가해 그의 허벅지 살을 뜯어먹는다. 무삼야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독사 떼가 무삼야를 공격한다.
엽정봉도 동굴 안으로 끌려온다. 엽정봉은 혈노를 구출해 동굴을 나가려다 중년 여자의 공격을 받고 아래쪽 구멍으로 떨어진다. 바닥에서 일어나자 잃어버렸던 보물이 눈에 들어온다. 엽정봉은 혈노와 함께 빠져나갈 구멍을 찾던 중 동굴 벽이 열리면서 혈노가 끌려들어간다. 헤어진 두 사람은 서로를 찾기 위해 동굴 안을 헤맨다. 동굴에는 곳곳에 거울이 장치되어 있어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 혈노는 옷을 벗어 지나온 길을 표시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헤매고 있는 엽정봉에게 시체 먹는 괴인이 습격해온다. 엽정봉이 그를 칼로 찔러 죽이자, 내장에서 수많은 벌레와 뱀과 함께 악취가 풍겨 나온다. 엽정봉은 헤매다가 석단 위에서 보물을 발견한다. 거기에 접근하자 갑자기 붉은 빛 덩어리가 공격해온다. 그와 함께 중년 여자가 공격해 오는데, 그는 혈앵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붉은 조명등에 불과하였다고 말한다. 엽정봉은 결투를 벌이던 중 천장에서 쇠창살이 떨어져 갇힌다.
창살 안에서 불길이 솟아오른다. 엽정봉은 나갈 수 없다. 엽정봉은 여자에게 죽기 전에 알고 싶다면서 혈앵무가 무엇이며, 혈노와 어떤 관계냐고 묻는다. 그러자 여자는 자신은 태평 국왕의 왕비이며, 남자는 왕실 총관이라고 한다. 그녀는 왕실 총관을 죽이는 척하면서 황제에게 바칠 선물을 가로챘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조사하러 나온 철흔을 죽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젠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한다.
이때 누군가가 그녀에게 공격해온다. 그는 죽은 줄 알았던 철흔이었다. 철흔은 죽지 않았다. 엽정봉과 계획을 짜 사건 조사를 위해 죽은 척했을 뿐이었다. 철흔은 치열한 결투 끝에 총관인 무삼야를 죽인다. 이때 왕비가 기관을 작동시켜 쏟아져 나온 화살이 철흔의 몸을 관통한다. 왕비도 죽는다. 철창 속의 불길은 더욱 거세진다.
이때 천장 위쪽 구멍에 하늘이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서 밧줄이 내려온다. 엽정봉이 밧줄을 잡고 올라가니 밧줄 끝에는 앵무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엽정봉은 앵무새에게 네가 나를 구했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뒤에서 "그저 단순한 앵무새일 뿐"이라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돌아보니 그곳엔 혈노가 서있었다.
이 영화는 미스터리 공포 무협 영화인데,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괴기스럽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가 너무 복잡하다. 사건을 자꾸 수수께끼로 끌고 가기 위하여 매번 의문의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가 너무 복잡해지고, 결국은 스스로 만든 미스터리를 스스로 감당을 못한다.
추리극에서 중요한 것은 관객이나 독자에게 계속 의문의 사건을 제공하면서도 결말에 가서는 그런 모든 의문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소설이나 영화가 완성도를 갖는 것이다. 그런데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은 의문의 사건을 계속 일으켜 관객의 의문과 궁금증을 증폭시키지만 나중에 가서 그 사건이 일어난 이유와 원인에 대해 설명을 못한다. 즉 스토리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도 그러한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공포 영화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운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가장 역겨운 것은 시체를 부검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극히 혐오스럽고 장시간 동안 보여주고 있어서 영화를 보기가 상당히 불편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 다리뼈를 뜯어 먹고 있는 괴인 등 여러 엽기적인 장면이 있어 영화를 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