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의 멸망

by 이재형

기원전 4~5세기부터 시작된 로마제국(공화정 포함)의 팽창은 2세기 트라야누스 황제 때 그 절정을 이루었다. 당시 영토 면적은 약 500만 평방킬로미터로 북쪽으로는 브리타니아, 남쪽으로는 사하라 사막 북단, 서쪽으로는 대서양 연안에서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까지 이르렀다. 인구 규모는 약 6,000만~1억 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러한 제국의 팽창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강력한 군대였다. 로마군의 침공에 장애물은 없었다. 거대한 덩치의 야만족들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로마군을 공격했지만, 그들은 훨씬 적은 수의 로마 군단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브리타니아에서는 7~8만 명의 전사들이 2만 명의 로마군과 정면으로 맞섰지만, 그들은 전멸하였다. 로마군은 그만큼 강력했고, 정예 중의 정예병들이었다. 그런 로마 군대가 최고의 정점에서 불과 100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로마제국은 30여만 명 이상의 상비군을 보유하였다. 고대 사회에서 이 정도의 병력을 보유한다는 것은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후 천년 이상이 지난 중세 시대, 유럽의 강국이었던 잉글랜드나 프랑스가 전쟁에서 동원할 수 있었던 군대가 많아야 2만 명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은 상비군도 아니었다. 전쟁 때 급히 조달한 병력이 대부분이었다.


로마는 군대의 힘을 바탕으로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결국 군대 때문에 스스로 무너졌다. 원래 군대는 “돈 먹는 하마”이다. 대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주력 산업이 농업이었던 고대 사회에서 수십만의 상비군을 보유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면 로마는 초기에 어떻게 30만 상비군을 양성했는가?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벌 이후 로마는 급속히 영토를 확장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점령지에서 물자와 노예를 약탈해 왔다. 군대에 막대한 돈이 투입되었지만, 군대는 그 이상의 전리품을 로마로 가져온 것이었다. 즉 이 시기의 로마군은 재물을 벌어들이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병력의 유지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2세기 초 트라야누스 황제 때 로마는 최대로 영토를 넓힌 이후 그 상태에서 멈추었다.


이후 로마는 새로운 전리품이 끊긴 대신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늘어났다. 비대해진 로마군은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였다. 황제들은 군대의 비위를 맞추어야 했다. 그들은 군대로부터 충성을 받기 위해 아낌없이 군대에 돈을 풀었다. 속주로 편입된 지역에서 많은 세금을 걷기도 했으나, 그것으로는 도저히 군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로마 내부적으로는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로마는 주변 지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과 기술이 발달하였다. 따라서 공화정까지만 하더라도 로마는 뛰어난 품질의 물자를 수출하고 식량 등 기본 물자를 수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제국의 영역이 커지자, 로마의 산업이 갈리아, 게르마니아, 히스파니아 등으로 이전하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요즘 용어로 표현한다면 로마는 “산업 공동화”의 처지에 빠져 버린 것이었다. 로마의 생산량, 그러니까 GRDP가 현저히 낮아지게 된 것이다.


당시 로마 시는 인구 100만의 초거대 도시였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무엇을 해서 먹고살았나? 산업이 무너진 상황에서 시민들은 돈 벌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이 도시 빈민, 즉 프롤레타리아화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빈곤은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나고, 이것은 곧 폭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 로마 정부는 이들 빈곤층에게 무상 빵 배급을 실시했다. 그런데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다른 무슨 일로 이들의 관심을 돌려야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대형 이벤트, 즉 유희였던 것이다. 로마 정부나 유력자들은 이전에 소개한 바 있는 대규모 전차 경주(루디)나 검투사들의 시합 무네라를 앞다퉈 개최하게 된 것이었다. 가난한 로마 빈민들은 정부가 배급하는 빵을 먹고, 정부와 유력자가 주최하는 각종 경기를 보며 열광하면서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이러한 현상을 “빵과 서커스”라 표현하며 개탄하였다.


고대나 현대를 막론하고 어느 시대에나 일반 사람들의 소득획득은 거의가 일을 통한 노동에서 얻어진다. 그런데 이미 산업이 공동화되어버린 로마에서는 시민들이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없었다. 로마 정부가 아무리 속주나 점령지로부터 돈과 재물을 가져온다 한들, 이를 시민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분배 루트가 끊어져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로마 정부는 군대의 유지를 비롯한 막대한 재정 수요를 어떻게 채웠을까? 로마의 최대 수출품은 “정치”였다. 로마는 자신들이 점령한 속주에 로마식의 통치 방법, 행정 시스템, 법률 및 제도, 사회 인프라 등을 수출하고, 대신 속주로부터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인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한계에 이르렀다. 군사비 지출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로마의 재정 지출 총액에서 군사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70~80%에 이르렀다고 한다. 나머지 20~30%의 돈으로 빈민에 대한 급식, 인프라의 건설 및 관리 등 국가 운영에 필요한 부문에 지출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황제들은 군대를 달래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풀었다. 연봉을 올리고, 황제 즉위 기념 하사금, 황실 경사 축하금, 근위대 특혜, 전역 보상금 등 각종 명목으로 돈을 풀었다.


이래서는 아무리 속주로부터 가렴주구식으로 세금을 징수한다고 해도 지출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악성 주화의 발행이었다. 은의 함량을 현저히 낮춘 화폐를 발행하였는데, 이는 오히려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인플레이션으로 실질 소득이 줄어든 군대는 강력히 반발하였다. 초기에는 군인이 인기 직업이었으나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 매력도 떨어졌다. 많은 정예병들이 군에서 이탈하고, 그 뒤를 값싼 미숙련 병사들로 채웠다.


이렇게 최강의 무력을 자랑하던 로마군은 서서히 무너져 내려, 3세기경에 들어서자 누구도 로마군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바리안들이 로마를 위협하는 일이 일상화되어 버린 것이었다. 로마군의 몰락과 함께 로마 재정도 급속도로 위축되었다. 이전과 같이 속주로부터 체계적으로 돈과 물자를 조달하는 방식이 점점 어렵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한번 붕괴된 로마의 산업은 다시 회생할 수 없었다.


로마의 농토는 과일을 생산하는 거대 농장과 귀족의 별장으로 바뀌었다. 로마의 식량 자급률은 거의 바닥을 헤매었다. 모든 식량을 해외로부터 수입하다시피 하였는데, 수송에 문제라도 생기면 당장 식량 보급이 끊겨 버렸다. 그러면 이것은 바로 빈민들의 폭동으로 연결된다. 그렇게 하여 내리막길을 걷던 로마제국은 5세기에 이르러 마침내 멸망하고 만다.


일반적으로 “제국의 멸망”이라 한다면 어떤 장엄함이나 비장감을 느끼는 것이 보통이다. 마치 초신성이 대폭발을 하듯이 외부 혹은 내부의 대충격으로 화려하게 산화하는 것이 사람들의 상상이다. 그러나 로마는 다르다. “언제 멸망했는지조차도 모르게 그냥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계속 내리막을 걷던 대제국이 어느샌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로마제국의 멸망은 무력에 의한 초거대 제국의 형성과 그것을 가져온 체제의 본질적 한계로 스스로 무너져 버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로마제국의 멸망은 현대의 어느 나라의 앞날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