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파 왕국의 유적을 찾아서

(2026-01-11) 동남아 횡단여행 (7)

by 이재형

어제는 꾸이년의 남북 해변 지역을 둘러보았다. 오늘은 내륙으로 들어가 참파 왕국의 유적들을 둘러보려 한다. 지난번 참파 왕국에 대해 잠깐 언급하였는데, 꾸이년과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설명하겠다.


참파 왕국은 2세기경부터 19세기(1832년)까지 지속된 해상 강국이었다. 초기에는 다낭 인근을 중심으로 번성했으나, 북쪽 베트남 국가가 강력해지면서 압박을 받아 11세기경 수도를 남쪽인 비자야(현재의 꾸이년 일대)로 옮겼다. 이때부터 비자야는 약 500년 동안 참파의 정치, 경제, 종교적 중심지였다. 이때부터 꾸이년의 티나이 항은 동남아시아 해상 실크로드의 주요 기착지로, 중국, 인도, 아랍의 상인들이 교류하던 국제적인 항구로 기능하였다고 한다.


첫 번째 방문지는 반잇 참탑(Tháp Bánh Ít)이다. 20~30분 정도 복잡한 꾸이년 시내를 빠져나가니 교통량이 거의 없는 교외 도로가 이어진다. 포장도 아주 잘 되어 있어 달리기도 좋다. 문제는 구글 지도이다. 오토바이에 스마트폰 홀더가 없어 조끼 윗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넣고 소리를 들으며 운전한다. 베트남에는 회전교차로가 많다. "몇 시 방향으로 진행하세요"라면 알기가 편한데, 구글 지도는 꼭 "몇 번째 출구로 나가세요"라는 멘트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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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몇 번째 출구가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는 거다. 직진하는 경우는 대개 다섯 번째 출구로 나가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경우 다 그런 것도 아니다. 그래서 회전교차로가 나오면 구글 지도는 거의 무용지물이다. 길을 잘못 들어 다시 정정하여 진행한 경우가 몇 번인지 모를 정도였다.


넓은 도로로 가다가 좁은 마을 길로 들어선다. 시멘트 포장된 좁은 길을 몇 번이나 굽이쳐 가니 나지막한 언덕 위에 반잇 참탑이 나온다. 넓은 주차장에 주차된 차는 한 대도 없다. 방문객은 나 혼자인 것 같다. 이 탑은 11세기 말에서 12세기 초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며, 참파 유적 중에서도 보존 상태가 매우 뛰어나고 규모가 큰 복합 단지이다. 반잇 참탑은 각기 다른 기능과 형태를 지닌 네 개의 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탑은 동산 꼭대기에 있다. 완만한 산길을 올라가니 높이가 10미터 조금 못 되는 탑이 있고, 산 저 위쪽에는 상당히 높은 탑이 있다. 탑은 어제 보았던 다른 탑들과 마찬가지로 적황색의 황토 벽돌로 만들어졌다. 위쪽의 큰 탑이 볼만한데 올라갈 엄두가 안 난다. 작은 탑을 둘러보고 뒤쪽으로 돌아가니 위쪽 큰 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이 정도면 올라갈 만하다. 계단이 상당히 가파르고 난간이 없어 위험하다. 동남아의 역사 유적에 가면 거의가 계단 경사가 가파르고 난간이 없다. 그래서 여간 위태해 보이지 않는다. 이 계단도 30도가 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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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올라가서 보니 정말 멋진 탑이다. 높이가 높을 뿐만 아니라 아래쪽 면적도 넓다. 탑 안으로 들어가니 불상 같은 것이 모셔져 있고 제상이 차려져 있다. 팔이 여섯 개인 것을 보니 아마 힌두교의 시바 신인 것 같다. 참파 왕국은 힌두교와 불교 모두를 믿었다고 한다. 탑이 있는 곳은 동산 꼭대기이기 때문에 저 멀리 꾸이년 시가지와 바다가 보인다.


다음은 칸띠엔 참탑(Tháp Cánh Tiên)이다. 반잇 참탑을 나와 구글 지도가 이끄는 대로 30분 정도를 달렸다. 좁은 시골길을 몇 번이나 이리저리 굽어 갔기 때문에 위치가 어디쯤인지는 짐작도 안 된다. 가다 보니 시골길 한 모퉁이에 칸띠엔 참탑이 나온다. 매표소가 있지만 직원은 보이지도 않는다. 여기도 방문객은 나 혼자.


'칸띠엔 참'이란 '요정의 날개'라는 뜻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외벽에 섬세한 조각이 들어가 있다. 탑은 넓고 평평한 농장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멀리서도 잘 보인다. 이곳도 찾는 사람은 없지만 탑 안에는 신이 모셔져 있고, 제상이 차려져 있다. 이 탑은 과거 비자야 성의 중심부에 위치했던 상징적인 건축물이라 한다.

다음은 도반 성터 및 호앙데 성이다. 이 성은 과거 참파 왕국의 수도였던 비자야 성의 흔적이라고 한다. 칸띠엔 참탑에서 5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많은 건축물을 기대했지만, 그야말로 흔적만 남아 있다. 극히 일부의 성곽 흔적과 구조물 받침대만 넓은 공터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정자처럼 생긴 건물이 있는데 과거의 유적인지는 모르겠다. 정자 사방에는 큰 忠자가 새겨져 있다.


다음은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 텁탑 사찰(Chùa Thập Tháp)이다. 도반 성터를 나와 시골 마을 길을 4킬로 정도 가니까 나온다. 여긴 들어가는 순간 역사 유적인가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높이 2~3미터의 작은 여러 개의 탑이 있긴 한데, 주위는 최근에 조성한 정원 같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고급 음식점처럼 보이기도 한다. 알고 보니 무너진 참파 탑의 벽돌을 사용하여 지어진 사찰이라고 한다. 정원의 오래된 나무는 볼만하다.


이로써 오늘 계획한 곳은 모두 둘러보았다. 여기서 꾸이년까지 거리는 약 30킬로이다. 쉬엄쉬엄 가더라도 한 시간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구글 지도 탓에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어 꽤 시간이 걸렸다. 내일은 꾸이년을 떠나 무이네로 가려고 한다. 베트남 시외버스 예약 앱을 검색하니 꾸이년에서 무이네로 가는 버스가 없다. 확인을 위해 꾸이년 버스 터미널로 가 봤으나 역시 없다. 아무래도 무이네 아래쪽에 있는 판티엣으로 가야 할 것 같다.


호텔에 돌아오니 5시. 어제에 이어 또 근처 카페에 갔다. 나는 한국에 있으면서 내 자의로 카페에 가 본 적이 없다. 베트남에 와서 이렇게 카페를 이용해 보니 의외로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