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 경주인 루디(Ludi)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하였지만, 또 하나 로마인들을 열광시킨 스포츠가 바로 검투사(글래디에이터)들의 목숨을 건 시합인 ‘무네라(Munera)’였다. 무네라는 절대적 인기에서는 루디에게 뒤지지만 정치적 영향력과 상징성 면에서는 오히려 루디를 능가하였다. 루디가 국가적 축제였던 데 비해 무네라는 다양한 개최자가 자신의 정치적 역량과 부를 과시하는 장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패배한 검투사의 생사에 대해 관중들의 의사가 반영된다는 점에서 서민들은 그것을 자신의 권력으로 착각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무네라는 목숨을 건 위험한 경기인만큼 검투사들은 대부분 전쟁 포로나 노예, 또는 사형 선고를 받은 범죄자들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명예와 돈을 노리고 자원한 자유민의 비율도 상당하였다. 이들은 사회적 권리가 박탈된 천민 취급을 받았지만, 뛰어난 실력을 갖춘 검투사는 대중적인 인기와 함께 막대한 부를 누리기도 하였다.
미국 드라마 <스파르타쿠스>에서 보듯이 이들은 ‘루두스(Ludus)’라는 훈련소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검투사단의 주인이자 매니저인 라니스타는 검투사를 사고팔거나 경기에 투입하여 수익을 얻었다.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모든 시합이 한쪽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검투사를 양성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라니스타는 자신의 '자산'이 쉽게 죽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경기에 패배한 검투사가 항복 의사를 표시하면 경기를 주최한 편집인(Editor)이 관중의 반응을 살핀 후 생사 여부를 결정했다. 검투사가 죽으면 에디터가 몸값의 수십 배에 달하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여야 하였기 때문에, 주최 측 역시 가능한 한 검투사가 죽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검투사들의 시합에도 심판이 있었다. 이들은 가능한 한 검투사들이 치명상을 입지 않도록 경기를 운영하였다.
초기에는 패배한 검투사가 시합에서 사망하는 비율이 약 10% 내외였다고 한다. 그런데 점차 관중들이 자극적인 시합을 원하게 되어 2~3세기경에는 패배자의 25% 정도가 사망하였다고 한다. 상대를 반드시 죽여야 끝나는 시합이 있는데, 이를 ‘무네라 시네 미시오네(Munera sine missione)’라고 한다. “석방 없는 경기”라는 뜻이다.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인명 손실이 너무 크다고 하여 이를 금지하였으며, 이후에는 황제의 허락이 있을 때에만 극히 예외적으로 열렸다고 한다.
이 검투사 시합 무네라가 큰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로마 전역에 100개 이상의 루두스가 운영되었다. 로마 시에서는 콜로세움 근처에 4개의 거대한 국영 루두스를 설치하였다. 루두스의 운영자인 라니스타는 검투사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전문 트레이너를 비롯하여 무기 제작자, 요리사, 그리고 최고 수준의 의사들을 상주시켰다. 스파르타쿠스는 카푸아의 사설 루두스에 속해 있었다.
드라마 <스파르타쿠스>에서는 동료들끼리 시합을 벌이는 장면이 종종 나오지만, 실제로는 같은 루두스에 속한 선수들끼리 시합을 붙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동료들끼리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만약 서로 봐주기라도 하면 관중의 분노를 사 둘 다 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승리한 검투사에게는 상금이 지급되었다. 검투사의 신분에 따라 배분되는 금액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비록 노예나 포로라 할지라도 상금의 일부를 받았다. 자유민으로서 검투사로 입단한 경우는 약 25%, 노예나 전쟁 포로의 경우에도 20%의 상금이 분배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스타급 검투사들은 팬이나 귀족 후원자들로부터 고가의 보석, 토지, 현금 등을 선물로 받기도 하였다.
시합에서 승리하면 열광한 관중들이 승리한 검투사를 향해 보석이나 돈을 던졌다. 이 돈은 대부분 검투사가 모두 가졌다고 한다. 이 외에도 귀족이나 팬들이 보내는 후원금이 있었는데, 이 돈 역시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검투사들이 가졌다.
노예나 포로 출신의 검투사에게 부여되는 최고의 상은 “은퇴하여 자유민으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검투사는 자신의 의지만으로 은퇴를 결정할 수 없었다. 은퇴는 철저히 실력과 경력, 주최측의 자비에 의해 결정되는 최고의 ‘보상’이었다.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검투사에게는 황제나 경기 주최자가 ‘루디스(Rudis)’라는 목검을 하사하였다. 이는 검투사 신분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민으로서의 권리 회복을 상징하는 가장 영예로운 징표였다. 은퇴하여 자유를 얻은 검투사들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대우를 받으며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UFC에 여자 선수들이 있듯이 로마 시대에도 여자 검투사, 즉 ‘글라디아트릭스(Gladiatrix)’가 있었다. 이들의 시합은 일종의 ‘특별 경기’라 할 수 있는데, 많은 시민의 호기심 대상이었다. 대부분 노예나 전쟁 포로 신분이었으나, 자극과 명예를 쫓아 스스로 경기장에 뛰어든 귀족 가문의 여성들도 있었다고 한다.
로마 시대에는 무네라가 인기 절정의 스포츠였으므로 여러 걸출한 스타 검투사들을 배출하였다. 그중 최고의 검투사라면 단연 ‘플람마(Flamma)’를 꼽을 수 있다. 2세기경에 활약하였던 그는 총 34번의 경기를 치러 21승 9무 4패를 기록하였다. 검투사들은 10회 이상의 시합을 갖기가 어렵다. 5회를 넘기면 베테랑으로 인정받았으며, 10회 이상은 “살아있는 전설”로 통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무려 34번의 경기를 가져 거의 3분의 2 정도의 승률을 기록하였다는 것은 검투사로서 전무후무한 대기록일 것이다. 그는 4번이나 루디스 제안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전사로서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런데 플람마의 전적을 까마득히 추월하는 한 명의 천재적인 검투사가 있었다. 그는 바로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와의 결투에서 패배하여 죽는 코모두스 황제였다. 코모두스에 비한다면 플람마의 전적 따위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코모두스는 스스로 검투사라 자칭하면서 수많은 검투 시합에 나섰다. 플람마는 34전 21승을 기록하였지만, 코모두스는 735전 전승을 기록하였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시합 횟수가 1,000번이 넘는다고도 한다. 그는 그 많은 검투 시합을 벌이면서도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영화와 달리 역사적으로 그는 경기장에서 패배한 적이 없으며, 침소에서 암살당했다. 그는 승리할 때마다 국가 재정에서 스스로에게 막대한 상금을 지급하였다. 이로 인해 로마 재정이 거의 바닥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그러면 코모두스는 어떻게 이렇게 검투사로서 찬란한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나? 그는 시합에서 자신은 아주 날카롭고 좋은 칼을 든 대신, 상대방에게는 끝이 뭉툭한 연습용 무기나 나무 칼을 들고 싸우도록 했다. 그리고 상대는 싸우다가 잘못하여 황제에게 상처를 입히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물론 루두스 전체가 무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상대들은 최선을 다해 져주는 연기를 하여야 하였다. 그리고 코모두스는 주로 허약한 죄수나 장애인들을 시합 상대로 골랐다.
검투 시합은 반드시 사람들 간의 시합만이 아니었고, 맹수들을 상대로 한 시합도 있었다. 이때 코모두스는 방어 장치가 완벽한 높은 연단에서 맹수들을 향해 활을 쏘아 승리를 가져왔다. 그래서 그의 승리는 귀족들이나 군인들로부터는 물론 일반 시민들로부터도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코모두에 대한 좀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s://blog.naver.com/weekend_farmer/223178414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