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3) 동남아 횡단여행 (9)
아침이 되자 커튼을 치지 않은 창문에서 햇빛이 들어온다. 리조트가 산 중턱에 위치한 데다 방이 23층이라 아래쪽 전경이 훤히 보인다. 방이 넓고 깨끗하고, 바깥 경치까지 좋아 아주 만족스럽다. 이곳에 3박을 예약하였는데, 5박 정도 더 연장하고 싶다.
창으로 다가가니 남중국해(South China Sea)의 푸른 바다가 멀리 펼쳐진다. 이 바다를 베트남에서는 동해(Biển Đông), 중국에서는 남해(Nánhǎi), 필리핀에서는 서필리핀해(West Philippine Sea), 그리고 국제 표준으로는 사우스차이나해(South China Sea) 라고 부른다. 우리는 일본식 명칭인 '남지나해(南支那海)'라는 표현을 써왔다.
나는 우리의 동해를 국제 표준 바다명으로 하자는 사람들의 주장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어떻게 한 나라에서 방향을 표시하는 이름이 국제 표준 해양명이 될 수 있나. 한국해, 조선해, 코리아해, 동한국해, 고려해 모두 좋다. 그러나 동해만은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세계에는 20개가 넘는 '동해'가 있다고 한다. 동해를 국제 표준 바다명으로 하자는 주장에 어떤 외국인이 동의하겠는가?
밖에 나가기 싫어 어제 사 온 빵과 콜라로 아침을 때웠다. 아침을 먹고 침대에서 뒹굴거리기도 하고 창문 옆의 소파에 누워 글을 쓰면서 유튜브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시간이 나도 모르게 빨리 지나간다. 1박 16,000원으로 이런 호사를 다시 누려보지는 못할 것 같다.
어제 제미나이가 이곳 음식값이 무척 비싸다고 하여 신라면을 5개 사 왔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리조트 안에 소형 매점과 음식점이 많은데, 가게 모습을 보니 그렇게 비싸 보이지는 않는다. 라면을 괜히 사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최근 1년 동안 라면을 먹어본 적이 없었으니, 오랜만에 별식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라면을 사 왔지만 끓일 그릇이 없다. 방에 인덕션은 있으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전자레인지를 테스트해보니 이건 가동이 된다. 제미나이에게 전자레인지로 라면을 끓여도 되냐고 물으니 오히려 그게 더 맛있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라면을 끓일 그릇이 없다.
12시 가까이 되어 산책 겸 밖으로 나왔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리조트이다. 객실이 3천 실이 넘는다고 한다. 4개의 고층 빌딩이 있고, 그 가운데는 풀과 정원이 있다. 물에 들어가기엔 좀 차가운 날씨라 수영을 하는 사람은 없고 일광욕을 하는 사람이 몇 명 보인다.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바다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풀이 또 하나 있다.
옆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리조트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리조트의 위치는 해발 200미터가량 되어 보인다. 이용객들이 걸어 올라가기에 부담스러운 거리라 위까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리조트 아래 해변은 리조트의 프라이빗 비치이다. 바다에 들어가긴 차가운 날씨라 일광욕을 즐기는 서양인들이 몇 명 보일 뿐이다. 파도도 제법 강하다. 비키니를 입은 한 서양 여성이 용감하게 바다로 들어가더니 금방 나온다.
다시 리조트로 올라왔다. 라면을 끓일 그릇을 사야 하는데 조그만 가게에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제미나에게 어떤 그릇을 사야 하느냐고 물으니 도자기 그릇이나 전자레인지용 플라스틱 그릇을 사라고 한다. 몇 군데 가게를 들렀지만 그런 걸 파는 곳은 없다. 다시 제미나이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으니 컵라면을 사서 그 용기를 이용하라고 한다. 인공지능은 역시 머리가 좋다.
가게 옆에 식당이 보인다. 들어가니 손님이 하나도 없던 식당에서는 나를 아주 반갑게 맞는다. 아주 미안하지만 국수 그릇을 한 개 팔 수 없느냐고 물었다. 가게 주인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더니 적당한 크기의 사기그릇 하나를 건네준다. 이로써 문제 해결. 인공지능보다 내 머리가 더 좋다. 계란도 몇 개 샀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계란 라면은 아주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