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형 국가 조선, 경쟁형 국가 일본
역사 기록이나 역사 유적, 유물 등을 보면 임진왜란 무렵인 16세기 말경에는 군사, 경제, 산업, 기술 등 전반적인 면에서 일본이 조선을 앞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나 예술 같은 것은 각 나라의 독특한 특징이 있기 때문에 누가 더 낫다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굳이 일본이 조선에 비해 뒤떨어졌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성리학이라든가 국가 통치 철학, 행정 체계나 법률 같은 분야에서는 조선이 앞섰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임진왜란 무렵 일본은 사실상 "하나하나가 국가라 할 수 있는 200~250여 개의 영지(다이묘 영지)"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에, 거창한 국가 통치 철학이니 정교한 법률 체계 같은 것은 상대적으로 필요성이 낮았다.
그러면 조선이 일본에 뒤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조선은 '관리형 국가 체제'였고, 일본은 '경쟁형 국가 체제'였기 때문에 그 차이로 인해 국력의 차이가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관리형 국가와 경쟁형 국가란 말은 다른 말로는 '조직형 국가'와 '시장형 국가'로 표현할 수 있다.
조선은 중앙 집권제 국가였기 때문에 조선이라는 국가 전체를 하나의 조직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일본이라는 큰 틀 안에서 '번'이라는 작은 국가들이 서로 경쟁하는 체제였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조선이 모든 부품부터 조립까지 모두 담당하는 하나의 거대 자동차 제조업체라고 한다면, 일본은 여러 소재와 부품을 만드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자동차 제조업이라는 큰 시장 안에서 경쟁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선은 '조직', 일본은 '시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면 조직과 시장 가운데 어느 쪽이 효율적일까? 그에 대해서는 일의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조직은 수많은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각 부분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어느 부서가 어떤 업무를 어느 정도 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므로 업무를 효율적으로 분배하여 조직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즉, 관리가 잘 이루어지면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단점도 있다.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각 부서가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는 이른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발생하고, 또 조직 구성원들이 조직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이른바 '대리인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의 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관리자에 의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조직은 금방 부패해지고 바닥으로 추락하고 만다.
이에 비해 시장은 탐색 비용 혹은 거래 비용의 발생이라는 단점이 있다. 시장에 참여한 수많은 작은 조직은 서로를 속속들이 모른다. 이를 알아야 적절히 업무를 나눌 수 있는데, 서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그 반면 장점도 많다. 시장에 들어와 있는 많은 작은 조직은 각자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은 조직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이 일치한다. 그러므로 누가 관리를 하든 않든 항상 최선을 다한다. 즉, 시장에서는 관리자나 감시자가 없더라도 시장에 참가한 작은 조직들은 저마다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차이가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갈랐다. 조선은 유능한 관리자(왕 혹은 최고위급 관리)에 의해 효과적인 국가 관리가 이루어질 때 나라가 번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상 유능한 관리자만 있을 수 없다. 무능하거나 사복(私腹)을 우선하는 관리자가 나오면 그 관리 체계는 금방 무너진다. 관리 체계가 한번 무너지면, 다음에 유능한 관리자가 나오더라도 이를 되돌리기는 힘들다.
이와 반대로 일본은 이러한 관리 체계가 필요 없었고, 그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런 가운데 각 번은 서로 죽지 않으려고, 그리고 서로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 필사적으로 뛰었다. 그런 가운데 분쟁이나 전쟁 같은 불필요한 소모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활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경쟁자보다 앞서기 위해 선진 문물도 적극 받아들였다.
알기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조선은 지방의 수령을 조정에서 임명하여 보냈다. 왕과 고관들이 유능하고 조정의 기강이 서 있을 때는 유능한 인물을 수령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임명 후에도 그 수령이 고을을 잘 다스리는지 끊임없이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나라 전체의 성과가 클 수 있다. 그러나 관리 체계가 붕괴되는 경우, 고을 수령은 나라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사복을 채우려 한다. 자신은 얼마 뒤 그 지방을 떠난다. 그러므로 뒷일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백성에 대해 약탈에 가까운 무자비한 수탈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럴 경우 백성들은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
반면 일본은 지방을 다스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영주가 바로 사실상의 왕이다. 그곳에 사는 백성들도 자신의 자산이다. 일본에서도 적지 않은 지방에서 수탈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지나쳐 약탈이 되어버리면 그 지역의 경제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즉, 과도한 수탈은 영주 자신에게 손해로 돌아온다. 그래서 영주들은 백성이 최소한 살아갈 수 있도록은 해 준 것이다. 즉 지속가능성을 꺾어버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각각의 영주가 다스리는 지역이 좁다 보니 영주는 자신이 거느리는 관리의 부패를 좀 더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사극을 보면 왕이나 고위 관리들이 "백성은 하늘이다"라든가, 백성이 잘 살 수 있도록 정사를 돌봐야 한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러나 일본 사극에서는 그런 말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모두들 영주 집안의 번영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한다. 조선은 대의명분은 훌륭했지만 그를 뒷받침할 관리에 실패했다. 이에 비해 일본은 250여 개의 작은 나라들이 '생존'이라는 원초적 본능에 의지해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 왔기 때문에 조선을 추월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럼 왜 조선은 중앙집권제라는 관리 시스템을, 일본은 소국의 각축이라는 경쟁 시스템이 자리잡았는가? 여기에는 지정학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였다. 조선은 물론 이전의 신라, 고려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국가들은 대륙과 바다로부터 끊임없는 외침에 시달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가의 에너지를 총집결할 수 있는 중앙집권제가 불가피하였다. 이에 비하여 일본은 외침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바다라는 거대한 천연의 해자가 있었다. 일본은 바다 덕택에 외부로부터의 위험을 느끼지 못하였으며, 그런 환경 속에서 열국들이 패권을 다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