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5) 할복(割腹), 셋푸쿠(切腹), 하라키리

by 이재형

오늘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일본 무사들의 "할복"(割腹)에 관한 글을 2개 보았다. 또 유튜브를 보다 보니 일본 영화 감상 동영상에 할복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말이 나온 김에 여기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우리는 보통 일본인들이 스스로 배를 가르고 죽는 것을 '할복'이라 표현한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무사들이 배를 가르고 죽는 행위는 절복(切腹, 셋푸쿠)이라고 해야 한다. 보통 셋푸쿠에는 격식이 있다. 셋푸쿠는 단순히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가 아니라, 무사로서의 명예를 지키고 책임을 완수하기 위한 엄격한 사회적 의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절차와 격식은 매우 까다롭고 정교하게 준비되어 있다.


셋푸쿠를 하는 자는 먼저 몸을 깨끗이 하고 흰 옷을 입는다. 바닥에는 흰 천을 깔고, 뒤에는 흰 휘장을 친다. 셋푸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는 가이샤쿠(介錯)이다. 가이샤쿠는 배를 가르는 행위가 극심한 고통을 동반하므로 뒤에서 목을 쳐주는 보조자이다. 당사자가 단도를 배에 찔러 그으면 가이샤쿠가 바로 목을 쳐준다. 어린아이가 셋푸쿠를 할 때는 단도 대신 부채나 나무로 된 검으로 배를 가르는 시늉을 하면 가이샤쿠가 목을 친다. 영화 <아이를 동반한 검객>(원제: 새끼 딸린 늑대) 시리즈 주인공인 오가미 잇토(拝一刀)의 직업이 바로 가이샤쿠닌(介錯人)이었다.

절복(切腹, 셋푸쿠)의 광경

정식 셋푸쿠에는 가이샤쿠 외에도 여러 가지 복잡한 격식이 있다. 그러면 이러한 격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배를 가르면 무엇이라 해야 하나. 전장이나 기타 긴박한 상황에서 무사가 제대로 격식을 갖추지 못하고 배를 갈라 자결하더라도 셋푸쿠라 인정해 준다. 셋푸쿠에는 명예로운 죽음이란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반드시 가이샤쿠는 있어야 한다.

패장의 절복(切腹, 셋푸쿠)

그럼 무사가 아닌 일반 백성이 배를 갈라 자결하는 것은 무엇이라 하나. 그들의 자결은 아무리 명예스러운 죽음이라 하더라도 셋푸쿠란 표현은 쓰지 않는다. 무사가 아닌 자는 애초에 ‘명예’라는 것이 있다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민의 경우에는 그냥 배를 갈랐다는 의미로 복절(腹切, 하라키리)이라고 한다. 하라키리란 말은 그냥 배를 가르고 죽었다는 의미로, 무사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것을 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라키리는 상대적으로 거친 표현이다.

아코성 47인의 무사 절복(切腹, 셋푸쿠) 장면

그럼 할복(割腹)은 무엇인가? 이는 한자 뜻 그대로 그냥 "배를 가르는 행위"이다. 배를 갈라 자결하는 행위 뿐만 아니라 수술을 위해 배를 가르는 해부학적 행위도 포함한다. 우리나라의 글에서 발견되는 "할복"이란 용어는 거의가 셋푸쿠, 즉 절복을 의미한다.


셋푸쿠는 스스로 결단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의 요구나 명을 받고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주가 패배한 영주에게 셋푸쿠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으며, 또 영주 등 권력자가 죄를 지은 자신의 가신에게 셋푸쿠를 명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대개 “너 하나 죽음으로 모든 것을 끝내자”라는 제안이다. 즉 가족 등에게는 더 이상의 죄를 묻지 않고, 당사자가 죽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짓겠다는 의미이다.

가신에게 절복(切腹, 셋푸쿠)를 명하는 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