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9) 동남아 횡단여행 (16)
어젯밤 늦게 도착해 하루 정도 쉴까 생각했지만 무이네에서 많이 쉬었다. 오늘은 오토바이를 렌트해서 꾸라오중 섬(Cù Lao Dung)에 갈 예정이다. 꾸라오중 섬은 하우강 한가운데 있는 섬으로, 동서 길이가 거의 40km에 이르는 길쭉한 형태이며 인구도 6만여 명(현재 추산 약 7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지역은 메콩 델타인데, 하우강은 또 어떤 강인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우강(Sông Hậu)은 메콩강(Mekong River)의 거대한 줄기 중 하나이다. 하우강과 메콩강은 별개의 강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혹은 몸통과 가지의 관계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티베트 고원에서 시작된 메콩강은 중국, 미얀마, 라오스, 태국을 거쳐 캄보디아 프놈펜에 도달한다. 이곳에서 메콩강은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이것이 메콩강 하류 시스템의 시작이다. 동쪽 줄기는 메콩강 본류로서 베트남으로 들어와 띠엔강(Sông Tiền)이 되며, 서쪽 줄기는 하우강이 된다. 껀터와 속짱 앞을 흐르는 강이 바로 하우강이다.
꾸라오중(Cù Lao Dung)은 메콩 델타의 하우강 하구에 형성된 거대한 섬이자 하나의 현(District)이다. 메콩강이 실어 나른 비옥한 토양 덕분에 섬 전체가 거대한 정원처럼 푸르다고 한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리적 특성 덕분에 풍부한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으며, 섬의 끝부분에는 광활한 망그로브 숲이 펼쳐져 있다. 섬 전체가 비옥한 과수원지대로서, 망고, 용안(Longan), 자몽 등 열대 과일이 지천이라 한다. 대규모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아 메콩 델타의 전형적이고 평화로운 어촌 및 농촌 마을의 일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아침은 버스 터미널 근처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먹었다. 분싸오(Bún xào)라고 하는 일종의 비빔 쌀국수인데 맛이 괜찮았다. 호텔에 오토바이 렌트를 부탁했더니 아주 낡은 것을 가져왔다. 호텔에서 잡역을 하는 노령의 직원이 소개한 모양인데, 할 수 없이 그대로 빌리기로 했다.
꾸라오중 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이응아이 선착장(Bến phà Đại Ngãi)으로 가야 한다. 이곳 호텔에서 30km가 조금 넘는 거리인데 가기 위해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국도를 통해 가는 방법으로 가장 짧은 길이지만 대형 차량이 많이 다닌다고 한다. 이 길은 제외했다. 두 번째는 지방도인데 대형 차량은 없지만 오토바이가 많이 다닌다고 한다. 세 번째는 완전한 로컬 도로로서 메콩 델타의 논과 수로를 통과하는 길이다. 지방도와 로컬 도로를 섞어서 가기로 하고, 이를 위해 내비게이션에 중간 기착지를 두어 군데 설정했다.
호텔을 출발하여 속짱(Sóc Trăng) 시내를 빠져나간다. 인구 20만의 도시라는데 꽤 넓다. 자동차보다 오토바이가 많은 도시다. 이제는 오토바이 무리에 휩쓸려 달리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내비게이션은 선착장까지 1시간이면 간다고 하지만, 두 시간 정도로 넉넉히 잡고 구경이나 하면서 느긋하게 가기로 했다.
로컬 도로로 들어섰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이라 차는 거의 다니지 않고 오토바이도 띄엄띄엄 지나간다. 주위는 온통 바나나 혹은 코코넛 농장이다. 코코넛 나무가 길 양쪽 가로수로 줄지어 서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가끔 바나나 나무 가로수가 나타나기도 한다. 바나나는 나무가 아니라 풀이다. 그런 바나나 나무가 계속 가로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다 보니 큰 사원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니 먼저 연못 위에 있는 좌불상이 시선을 끈다. 연못과 어우러지는 아주 멋진 불상이다. 내부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라 절을 새로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메르 형식의 사찰인데 생각만큼 화려하지는 않다. 기본적으로는 크메르 양식에 베트남적인 특징이 가미된 느낌이다. 아무런 설명이 없어 어떤 사원인지 몰랐는데, 이 글을 쓰면서 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18세기 후반에 세워진 솜 롱 사원(Chùa Som Rong)이라고 한다.
다시 코코넛 농장 사이 도로를 달린다. 가끔 길 옆에 코코넛 껍질 무더기가 보이는데, 얼핏 보면 마치 해골 무더기 같다. 한참을 가다 보니 길가 큰 차양 밑에서 아주머니들이 모여 코코넛 껍질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어항 근처에서 아낙들이 모여 생선을 손질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사진을 찍어도 좋으냐고 물으니 모두 깔깔 웃으며 찍으라고 한다.
구글 맵은 더 좁은 길로 안내한다. 지금까지는 계속 코코넛과 바나나 농장만 지나왔는데 이제는 논들도 보인다. 작년에 쩌우독(Châu Đốc)에서는 지평선이 보이는 광막한 넓이의 논들을 보았는데, 여기는 논과 농장이 섞여 있어 그렇게 넓은 평야는 볼 수 없다. 곳곳에 농로와 같은 좁은 길이 있고 수로가 지나간다.
논 사이로 난 농로는 폭이 1m 남짓이다. 구불구불한 데다 시멘트 포장이 훼손된 곳이 많아 위험을 느낀다. 까딱 잘못하면 논으로 굴러떨어질 것 같다. 등에 진땀이 난다. 주위에 집들이 들어서 있는데 저택이라 불러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좋은 집이다. 거의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구글 지도가 안내하는 대로 계속 갔더니 막다른 길이다.
다시 돌아 나왔다. 헛걸음을 했고 위험도 느꼈지만 기분은 최고다. 이렇게 메콩 델타의 속살을 가까이서 볼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계속되는 수로와 코코넛, 바나나 농장, 그리고 논들. 이런 풍경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우리나라 논은 색깔이 모두 같지만 여기는 논마다 다르다. 한쪽 논에서는 누렇게 익은 벼를 수확하고, 그 옆에서는 모내기를 한다. 수확이 끝나 누런 밑동만 남은 논이 있는가 하면, 모내기를 기다리는 듯 물만 출렁이는 빈 논도 있다.
최고의 기분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70대 중반에 들어서는 이 나이에 자꾸 이런 모험을 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