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10) 베트남의 "아저씨"

by 이재형

베트남 여행을 하면서 대부분의 의사소통은 번역기를 통해 한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많은 이들이 나를 '엉클(Uncle)' 혹은 '삼촌'이라 호칭한다. 20대 정도의 젊은이가 나를 그렇게 부르면,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보다 기분이 좋다.


베트남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단연 호찌민이다. 그들은 호찌민을 보통 '호 아저씨'라고 번역하여 부르곤 한다. 아저씨, 엉클, 삼촌은 서로 일맥상통하므로 베트남인이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나쁜 뜻은 아닌 듯하다. 영어 번역기로는 'Uncle', 한국어 번역기로는 '삼촌'으로 번역되니, 아마 베트남어의 존칭을 그렇게 번역한 모양이다.

베트남인에게 '아저씨'가 어느 정도의 존칭인지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았다. 베트남은 우리나라에 비해 존칭이 훨씬 세분화되어 있고 엄격하다고 한다. 그중 '박(Bác)'은 자신의 아버지보다 연배가 높은 어른에게 존경과 친밀함을 담아 사용하는 호칭이다. 번역기가 이 '박'을 'Uncle'이나 '삼촌'으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짐작되는 바가 있어 인공지능에게 '박'이 한자 '백(伯)'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지 물었더니 맞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호찌민을 부를 때는 '박 호(Bác Hồ)'라고 한다. 나는 그동안 아주 예의 바른 친구들만 만났던 것 같다.


베트남어의 호칭 체계는 유교적 가치관과 한자 문화권의 영향을 깊게 받아, 우리말과 유사한 경우가 많다. 베트남어 호칭은 상대와의 상대적인 나이와 성별, 사회적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인칭 대명사' 역할을 겸한다고 한다.

1. 조부모 및 고령자 세대: 주로 나이가 지긋한 어른이나 조부모 항렬에게 사용하는 호칭

옹(翁): 할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뻘의 남성 어른

바(婆): 할머니, 혹은 할머니뻘의 여성 어른


2. 부모 및 숙부 세대: 자신의 부모님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은 연배의 어른에게 사용하는 호칭

박(伯): 부모보다 나이가 많은 남녀 어른

추(叔): 부모보다 나이가 적은 남성 어른

코(姑): 부모보다 나이가 적은 여성 어른

디(姨): 이모, 혹은 어머니의 자매뻘 여성

카우(舅): 외삼촌, 혹은 어머니의 형제뻘 남성


3. 형제 및 동년배 세대: 자신과 비슷하거나 약간의 차이가 나는 상대에게 사용하는 가장 빈번한 호칭

안(兄): 오빠 혹은 형, 자신보다 나이가 약간 많은 남성

치(姊): 언니 혹은 누나, 자신보다 나이가 약간 많은 여성

엠(兒): 남녀 구분 없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


4. 하급자 및 자녀 세대

콘(兒/子): 자녀, 혹은 자녀뻘의 어린아이

차우(孫): 손주, 혹은 조카뻘의 손아랫 사람 호칭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에서 나이를 아주 중시한다. 그래서 사람을 처음 만날 때는 상대방의 나이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한국인의 습성은 외국인들을 당황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양인들은 상대방의 나이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가까운 일본조차 사회 관계에서 상대방의 나이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는 유독 나이에 민감한 우리나라 사람은 국제적으로도 좀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 이상으로 상대방의 나이를 중시한다. 그래서 베트남인은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상대의 나이를 묻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결례가 아니라, 상대를 'Anh(형)'으로 부를지 'Chú(삼촌)'로 부를지 정확한 호칭을 정하기 위한 예의의 절차이다.


우리나라와 마친가지로 베트남어에서도 '나(I)'를 뜻하는 단어가 상대에 따라 변한다. 만약 상대가 나를 ‘박’이라 부른다면 부른다면, 나는 나를 지칭할 때 ‘토이’(나) 대신 ‘박’(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관례라 한다. '형(兄)'이 베트남에서 'Anh'으로 발음되는 등 발음이 원형에서 변형된 경우가 많으나, 그 근본적인 위계 질서는 한자 문화권의 그것과 일치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