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2) 동남아 횡단여행 (20)
버스는 밤새 달린다. 호찌민을 출발한 지 11시간이 지난 새벽 6시경에 콘툼(Kon Tum)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날이 뿌옇게 밝아온다. 이제 라오스 팍세(Pakse)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팍세행 버스는 터미널 안에서 타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출발하여 이곳을 지나가는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정류장을 찾아야 한다.
먼저 터미널 옆 식당에서 분짜(Bún chả)로 해장을 했다. 베트남에 와서는 식사를 거의 국수로 하고 밥은 가끔 먹는다. 식사 후 팍세행 버스 타는 곳을 물어보았으나,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 전달이 어렵다. 여행사나 호텔이 있으면 티켓을 부탁하면 되는데, 아무것도 안 보인다. 이른 새벽이라 사람들도 별로 다니지 않아 물어보기도 쉽지 않다. 겨우 물어물어 정류장을 찾았다. 정류장 옆 노상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버스를 기다린다.
팍세에 도착한 다음이 문제다. 팍세는 이전에 두 번이나 찾았던 곳이라 특별히 갈 곳도 할 것도 없다. 합해서 10일 가량을 머물렀기 때문에 시내는 물론 주위도 웬만한 곳은 다 둘러보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중간 경유지에 불과하다. 팍세에서 남쪽으로 가서 시판돈(Si Phan Don)으로 갈까, 아니면 북쪽으로 사바나켓(Savannakhet)이나 타켁(Thakhek)으로 갈까. 이번 여행은 정확히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떠났기 때문에 매번 어디로 갈지 선택에 고민을 한다.
오전 8시경 팍세행 버스가 오길래 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슬리핑 버스가 아니고 완전 로컬 버스이다. 좌석은 우리나라 1970년대 시외버스 같다. 이걸 타고 10시간이나 간다고? 어쩔 수 없다. 버스는 출발하더니 조금 과장하면 시내버스 정도로 자주 정차한다. 버스 뒷부분은 완전 짐칸이다. 버스 아래쪽 짐칸과 좌석 뒷부분은 모두 짐이다. 택배차 겸용이라 생각하면 된다. 동남아의 로컬 버스들은 전부 이와같이 택배 기능을 겸용한다.
콘툼에서 팍세까지는 약 360km이다. 차로 7시간 반 거리인데 이 버스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물론 국경 통과 시간도 고려해야 한다. 버스 요금을 45만 동이나 받는다. 버스는 많은 정류장을 들른 후 2시간이 지나 국경 사무소에 도착했다. 이 국경은 베트남 측 보이(Bờ Y), 라오스 측 푸끄아(Phou Keua) 국경이라 한다. 그동안 베트남-라오스 육로 국경은 10번 정도 통과해 봤는데, 이 국경은 처음이다.
국경마다 통과 방법에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짐을 모두 직접 휴대하고 통과하느냐 아니면 버스 안에 두고 통과하느냐의 차이다. 짐을 직접 휴대하고 통과하는 경우는 상당히 귀찮다. 특히 슬리핑 버스를 타는 경우 장시간 여행할 때 여러 짐을 헤질러 놓은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다시 정리하여 짐을 메고 출입국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여긴 다행히 짐은 버스와 함께 통과하고, 나는 몸만 통과하면 되었다.
라오스 입국 절차 줄을 서 있는데, 앞에 선 젊은이가 지폐를 몇 장 끼워 넣은 자신의 여권을 보여주면서 나보고도 여권에 돈을 끼워 넣으라는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여권에 돈을 끼우고 있다. 돈을 끼우고 싶어도 라오스 돈(Kip)이 없다. 내 차례가 되어 여권을 제출하니 직원이 여권을 살펴보더니 그냥 입국 도장을 찍어주고 통과하라고 한다.
보통 출입국 절차에 거의 2시간 이상 걸리는데 여기선 30분 정도에 모두 끝났다. 라오스에 들어섰다. 베트남과 라오스는 현격한 수준 차이가 난다.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은 산악 지대에 위치해 있는데 베트남 쪽 도로는 비교적 포장이 잘 되어 있지만 라오스 쪽은 엉망이다. 비포장 구간이 많으며, 포장도로도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이곳의 비포장도로는 상상을 초월한다. 차가 덜컹거리는 정도가 아니다. 버스가 전복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이다.
이런 험한 산악도로 때문에 시간은 하염없이 걸린다. 그뿐만 아니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화물을 배달해 주고 또 새로운 짐을 싣는다. 이렇게 버스는 털털거리며 쉬엄쉬엄 달린다. 버스가 간이 휴게소 같은 곳에 선다. 오후 2시가 되었다. 별로 식욕도 없어 간단히 소변만 보고 버스에 타고 앉아 있으니까 운전사가 내리라고 손짓한다.
이곳 동남아에는 버스비에 밥값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 버스도 그런 모양이다. 나를 포함해 승객 4명이 한 테이블에 앉았는데, 밥과 함께 반찬이 하나씩 차례로 나오는데 예상외로 아주 진수성찬이다. 반찬이 7~8가지나 되는데 어느 것이나 모두 맛있다. 특히 돼지고기 볶음과 민물생선찜이 아주 좋았다. 여행을 떠나온 이후 최고의 식사였다.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버스비 45만 동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괜찮다. 식사비로만 30~40만 동을 지불한다고 하더라도 조금도 아깝지 않다.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승객을 내리고 다시 태우고, 짐을 배달하고 새로 싣고 하며 달린다. 나도 바깥 경치를 구경하다가 이 글을 쓰다가 하면서 가니까 별로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미 해가 지려 한다. 팍세를 80km 앞둔 조그만 마을에 버스가 주차하더니 움직일 줄 모른다. 벌써 출발한 지 거의 12시간이 지났다. 아마 버스가 뭔가 탈이 난 것 같다. 하긴 그렇게 많은 짐과 승객을 싣고 그 험한 길을 달려왔으니 탈이 안 나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정도이다.
오늘은 밝을 때 팍세에 도착하면 팍세에 묵지 않고 남이든 북쪽이든 떠날 예정이었다. 이제 시간상으로 그건 불가능하게 되었다. 별수 없이 오늘은 팍세에 묵고 내일 떠나야겠다. 그러고 보니 라오스 돈도 한 푼도 없다. 팍세가 그래도 큰 도시니까 여기서 돈도 인출하고 필요한 준비도 해야겠다. 그런데 버스가 탈이 나도 단단히 난 것 같다. 이미 버스에 승객은 나밖에 없다.
거의 3시간을 기다린 끝에 픽업트럭이 와서 나를 팍세에 데려다주었다. 팍세 시장이나 터미널 둘 중 아무 곳에나 내려달라고 했다. 두 시간쯤 지나 팍세 버스 터미널이라면서 내려주는데, 내가 알고 있는 터미널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터미널은 시내 한복판에 있는데, 여긴 주위에 아무것도 없다. 떠나려는 픽업 기사를 잡아 팍세 시내까지 데려다주어야 한다고 엄중히 항의하였다. 결국 그들은 나를 시내까지 데려다주었다.
벌써 밤 10시가 넘었다. 팍세 시내이긴 하나 내가 아는 중심지는 아니다. 거리에 사람은 보이지 않으며 차량도 아주 가끔 다닌다. 먼저 현금부터 인출해야 한다. 현재 라오스 돈은 한 푼도 가지고 있지 않다. ATM을 찾아 돈을 인출하려 하니, 이게 무슨 일? 우리은행 전산 장애로 환전이 불가능하단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이렇게 자꾸 꼬이는지 모르겠다.
가까운 호텔에 들어가 카드로 결제했다. 방에 들어가 시간을 보니 밤 11시, 속짱을 출발한 지 37시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근처에 식당도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콜라 한 캔을 마시고 샤워를 하며 피로를 푼다. 너무 피곤했던지 잠도 잘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