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12) 로마의 노예제와 AI

by 이재형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는 미국과 소련이 치열한 우주 경쟁을 벌이던 1960년대 초, NASA에서 계산원으로 일한 세 명의 흑인 여성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컴퓨터는 물론 계산기조차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라, 우주 탐사에 필요한 모든 수학적 계산을 이들 흑인 여성 계산원들이 손으로 직접 처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NASA에 컴퓨터가 도입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계산원들은 공포에 빠졌다. 자신들의 일을 컴퓨터가 대신하게 된다면 자신들은 실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때 흑인 여성 계산원의 리더격인 도로시 본이 FORTRAN(포트란) 교재를 가져와 계산원들에게 프로그램 기술을 배우라고 설득한다. 얼마 후 NASA에 컴퓨터가 들어오고, 계산원들은 모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 한층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다. 기계가 숙련 노동자의 자리를 차지하여 노동자를 내쫓는 이른바 "기계가 사람을 먹는" 사회 현상에 반발하여 노동자들이 대대적인 "기계 파괴" 운동에 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 사회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단기적으로는 노동자들의 우려대로 고용은 악화되고 노동자의 생활은 도탄에 빠졌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기계의 도입이 오히려 노동의 질을 높이고 노동자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였다. 이를 "러다이트 오류(Luddite Fallacy)"라 한다.

러다이트 운동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다. 당시 영국은 세계 각처에 식민지를 두고 있어서 기계에 의한 대량 생산을 받아줄 수요가 있어 가능했던 것이며, 식민지가 없었다면 노동 환경은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컸다는 것이다. 사실 식민지가 거의 없었던 18세기 네덜란드는 비슷한 상황에서 극심한 정체를 겪기도 하였다.


현재 AI가 빠른 속도로 인간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수많은 직업군에서 AI가 인간을 대체하고 있어 가까운 시일 내에 대량의 실업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나는 평생 연구자로서 살아왔다. 요즘 AI를 이용해 보면 정말 엄청난 효율을 실감한다. 자료의 탐색, 수집, 정리, 데이터 분석과 이를 위한 프로그래밍, 보고서의 교정에 이르기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므로, 노력의 절반 이하만 들여도 충분할 것 같다.


사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따른 인간 일자리의 위협에 대한 우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떠오르는 화두이다. 최근에만 하더라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 1964년 미국에서 발표된 "트리플 레볼루션(The Triple Revolution)" 보고서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컴퓨터와 자동화의 결합으로 인간의 노동력이 불필요하게 되어 고용이 극도로 악화될 것이라는 공포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이것이 고용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였다.

트리플 레볼루션

1970~80년대에는 사무 자동화와 ATM의 도입에 따른 고용의 공포가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좋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걸쳐 PC가 급속히 보급되었다. 이에 따라 많은 직업군이 위협받고 고용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큰 문제 없이 지나갔다. 오히려 노동의 질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평가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인터넷 혁명이 시작되어 이로 인한 고용 축소 및 불평등이 우려되었으나, 이 또한 고용 확대와 질적 향상으로 작용하였다는 평가가 대세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새로운 시스템이 고용을 악화시키고, 나아가서는 국가 경제 자체를 붕괴시킨 사례도 있다. 로마 제국 초기 정복 전쟁으로 수많은 노예가 로마시를 비롯한 인근 이탈리아 각 지역에 유입되었다. 당시 이탈리아 지방의 주된 산업은 농업과 광업이었다. 당시 건강한 남자 노예의 가격은 군인의 1년 치 연봉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다. 광산주와 농장주들은 자유민 대신 평생 공짜로 부려 먹을 수 있는 노예를 투입하였다. 한편 일반 자영 농가는 노예를 대량으로 투입하는 대농장인 라티푼디움(Latifundium)과 경쟁이 되지 않아 농토를 헐값에 팔고 자신의 터전을 떠났다.

말하는 도구- 로마의 노예

로마시에는 여러 개의 노예시장이 있었고, 수많은 노예들이 거래되었다. 그럼 어떤 노예들이 가장 비싸게 팔렸을까? 건강하고 잘생긴 청년, 아름다운 미녀, 용감한 전사? 모두 아니다. 가장 비싼 노예는 전문가들이었다. 로마군은 점령지에서 1순위로 전문가와 사회 지도층을 노예로 뽑았다. 이들은 로마로 팔려와 의료 및 보건, 교육 및 학술, 경제 및 경영, 행정 업무 등 다양한 고급 직종에 투입되었다. 그리스 출신은 철학과 예술, 이집트 출신은 천문학과 의학, 시리아 출신은 금융과 무역 업무에 많이 투입되었다. 세계의 인재들이 노예 신분으로 로마에 모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일반 로마 시민들은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 단순 일자리는 물론 고급 일자리까지 노예들이 다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로마시는 거대한 빈민굴이 되어 버렸고, 그 결과 로마의 소비 여력은 줄어들고 경제는 더 곤두박질쳤다. 로마에서 노예의 신분은 '말하는 도구(instrumentum vocale)'로서 주인의 자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열심히 일한다면 자유민이 될 수 있다는 보상이 있었기에 보통의 자유민보다 노동의 동기가 더 높았다.

고급 일자리를 차지한 로마의 노예들

이러한 점에서 로마의 노예는 현대의 AI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높은 업무 능력과 낮은 비용이라는 장점을 갖추고 있다. 일반 로마 시민들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노예와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였다. 당시 로마시의 인구는 100만 명 정도였는데, 노예가 40% 정도였다고 한다. 나머지 60만 명 중 20만 명이 빈민으로서 빵 배급(안노나, Annona)을 받았다. 빵 배급은 로마 시민권자(성인 남자)에 한정되었기에, 이들에게 딸린 식구를 감안한다면 자유민 거의가 빈민이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로마 도시 빈민들의 정치 성향이다. 이들은 현대적 표현을 빌리자면 극우적 성향을 띠었다. 그들은 시스템이 아니라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노예 개개인을 증오하였다. 자신들은 '로마 시민'이라는 우월감과 함께 외국인에 대한 심한 인종적 편견과 제노사이드적 성향을 보였다. 현대 미국의 러스트 벨트나 우리나라의 극우 세력 등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AI 혁명이 러다이트 운동의 뒤를 밟을지, 아니면 로마 제국 노예 시스템의 예를 따를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전자의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본다.

극우화된 로마 도시 빈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