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콩강 4,000개의 섬 시판돈의 돈콩으로

(2026-01-23) 동남아 횡단여행 (21)

by 이재형

다음 행선지를 어디로 할까 망설이다가 시판돈(Si Phan Don)으로 결정했다. 시판돈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 시판돈은 라오스와 캄보디아 접경 지역의 메콩강에 위치한 '4,000개의 섬'이라는 뜻을 지닌 군도 지역이다. 라오스에서도 가장 평화롭고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어 '시간이 멈춘 곳'으로 불리기도 한다.


태국과 라오스의 국경선을 따라 내려오던 메콩강은 캄보디아 국경 인근에서 폭이 최대 14km까지 넓어지며 수많은 섬과 모래톱이 형성되었다. 이곳은 아직 현대적인 개발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느린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어 휴식을 원하는 많은 여행자가 이곳을 찾고 있다. 수많은 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인구가 많은 섬은 돈 콩(Don Khong)인데, 행정 중심지이며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리조트 위주로 형성되어 있다.


돈 뎃(Don Det)은 작은 섬이지만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 불린다.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와 카페, 활기찬 분위기가 특징이다. 시판돈에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이곳이다. 돈 콘(Don Khone)은 돈 뎃과 프랑스 식민 시절 지어진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역사 유적과 자연 명소가 많아 관광하기에 좋다. 돈 콘에는 솜파밋(Somphamit, 리피*이라는 유명한 폭포가 있다. 이 폭포는 우리나라 지상파 TV에서도 여러 번 소개된 바 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오전 7시가량 되었다. 아직 피로가 덜 풀려 이곳에서 하루를 더 쉬고 싶은 유혹도 느낀다. 일단 밥부터 먹고 보자. 호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환타 한 캔으로 일단 허기를 달랬다. 이곳 팍세에서는 큰 호텔이면 시판돈행 밴을 운행한다. 호텔에 물으니 오늘은 차가 없고 내일 10시에 있다고 한다.

팍세의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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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세의 한국 식당

호텔을 나왔다.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니 시내에서 8km 떨어진 남부터미널에 가면 시판돈행 버스가 많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남부터미널로 가면 안 된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들어간다. 일단 여행자 거리로 갔다. 2km 거리인데 지나가던 툭툭이 10만 킵(약 7,000원)을 달라고 한다. 터무니없는 바가지 요금이다. 2~3만 킵이 정상 가격이다. 걸었다. 팍세는 벌써 세 번째이다. 그래서인지 마치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를 찾은 느낌이다.


여행자 거리에 그 많던 여행사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겨우 한 곳을 찾아갔는데, 특이하게도 직원이 60세가 조금 넘어 보이는 서양인이다. 돈 콩으로 가겠다고 하니까 돈 콘이 아니냐고 자꾸 되묻는다. 관광객들은 거의가 돈 뎃이나 돈 콘으로 가지 돈 콩으로 가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내가 돈 뎃과 돈 콘은 벌써 몇 번 가봤다고 하자 그제서야 납득을 한다. 나는 돈 뎃과 돈 콘은 두 번에 걸쳐 합계 10일 정도 머문 적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돈 콩으로 가려는 것이다.


여행사에서 돈 콩행 표를 끊었다. 11시 반경에 차가 이곳으로 픽업하러 온다고 한다. 그때까지 여기서 편하게 기다리면 된다. 멀리 버스 터미널까지 차를 타러 가지 말라고 하는 이유이다. 여행사 직원과 영어로 대화하는데, 뜻밖에 커뮤니케이션이 잘 된다. 이 사람 분명 영미권은 아니다. 영어로 대화할 때 제일 힘든 상대가 미국인, 그다음이 영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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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콩으로 가는 차를 기다리는 벌판
돈팅 부근의 시판돈 모습

이제 아침을 먹어야 한다. 여행사 길 건너편에 한국 식당이 보인다. 몇 년 전에도 이 집에서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동안 값이 많이 올랐다. 그때는 대부분의 음식이 8만 킵(약 5,500원) 이하였는데, 지금은 10만 킵 이하가 거의 없다. 떡라면 볶음을 먹었다. 너무 짜다. 인도에 나와 있는 좌석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내 나이 또래의 서양인이 길을 묻는다. 길을 가르쳐주니 고맙다고 하면서 일본인이냐고 묻는다. 한국인이라니까 반가운 얼굴로 작년에 한 달간 한국 여행을 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 사람과도 대화가 아주 잘 된다. 분명 영어권이 아니라 생각하며 물었더니, 이탈리아인이라고 한다. 나도 재작년 이탈리아에 여행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둘이서 한참 떠들었다. 오랜만에 해보는 대화였다.


시판돈행 밴이 왔다. 승객은 나를 포함 8명이었는데, 나를 제외하곤 모두 서양인들이다. 이곳에서 한국인을 만나기는 참 힘들다. 최근 한국인의 외국 여행은 급증했지만, 대부분 유명 관광지에 몰려 있다. 조금만 덜 알려진 곳에 오면 만나기 어렵다. 이에 비해 서양인들은 어느 구석구석에 가더라도 다 있다. 오지로 갈수록 동양인 여행객은 만나기 힘들다.


밴은 3시간 정도를 달려 어느 넓은 공터에 나 혼자만을 내려준다. 나머지 승객들은 전부 돈 뎃행이다. 운전사는 이곳에서 기다리면 누가 데리러 온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버린다. 쓰레기만 뒹구는 빈 공터라 어디 앉아 있을 곳도 없다.

메콩강 옆의 레스토랑

한참을 기다리니 검은색 밴이 오더니 나를 태워 돈 콩으로 들어간다. 돈 콩은 연륙교(Don Khong Bridge)가 건설되어 차를 타고 바로 들어갈 수 있다. 돈 콩으로 들어왔다. 돈 콩은 넓어서 섬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돈 뎃이나 돈 콘은 완전히 관광지화 되어 있어 상업 시설도 많고 경치도 좋지만, 이곳 돈 콩은 아주 투박스럽고 로컬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메콩강 옆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숙소를 정했다. 메콩강을 바라보는 2층 방인데 방 앞에는 넓은 마루와 나무 의자가 놓여 있어 쉬기 좋다. 이곳에서 2박을 하기로 했다. 짐을 풀고 마루의 나무 의자에 앉으니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온다. 해먹까지 있으면 금상첨화겠는데, 아쉽게도 없다.


저녁이 되었다. 이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메콩강을 낀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다. 비어 라오(Beerlao)를 반주로 볶음밥을 먹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메콩강 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새삼 이런 것이 '평화'인가 하는 마음이 절로 난다. 내가 지금껏 가본 곳 중에 최고의 힐링 장소를 말하라면, 나는 단연 이곳 시판돈을 꼽는다.

계속 앉아 있으면 좋겠는데, 어두워지자 갑자기 모기가 달려든다.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방으로 올라와 마루의 의자에 앉았다. 이곳은 모기가 거의 없다. 밤이 깊어지도록 이곳에 앉아 메콩강의 향기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