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시판돈! 태국으로

(2026-01-29) 동남아 횡단여행 (27)

by 이재형

오늘은 시판돈(Si Phan Don)을 떠나 태국으로 가는 날이다. 당초 방콕(Bangkok)으로 가서 며칠 관광을 한 후, 아유타야(Ayutthaya)와 수코타이(Sukhothai)를 거쳐 치앙마이(Chiang Mai)로 가려 했으나, 방콕의 복잡한 거리가 내키지 않아 바로 아유타야로 가기로 했다. 팍세(Pakse)와 제일 가까운 태국의 도시는 우본랏차타니(Ubon Ratchathani, 이하 우본)인데, 일단 그곳까지 가서 바로 아유타야로 가든지 아니면 그곳에서 숙박을 하든지 결정하기로 했다.


오전 10시 반에 배를 타고 출발했다. 나까상(Nakasang)에서 밴으로 팍세에 가서 그곳에서 국제버스를 타고 우본으로 가게 된다. 출발하기 전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려 했으나 일이 좀 꼬이는 바람에 식사를 못했다. 나를 태운 롱테일 보트(Long-tail boat)는 물살을 가르며 나까상을 향해 달린다. 이곳을 다시 찾을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여유 있고 평화롭게 보낸 닷새간이었다.


나까상 버스 터미널에 가니 팍세 국제버스 터미널로 가는 차는 12시에 출발한다고 한다. 시간이 어중간하여 도넛 2개로 아침 겸 점심을 때웠다. 밴이 출발했다. 이 차를 탄 사람들은 모두 우본으로 가는 사람들이다.


밴은 두 시간 반을 달려 팍세 국제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말이 좋아 국제버스 터미널이지 낡은 사무실 하나와 버스가 몇 대 주차할 수 있는 공터가 전부였다. 식사를 했으면 좋겠는데, 우본행 버스가 곧 출발한단다. 버스는 한 시간 정도를 달린 끝에 총멕(Chong Mek) 국경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본 라오스 국경 사무소 가운데 가장 잘 지은 건물이었다. 팍세에 사는 돈 꽤나 있는 사람은 우본에서 쇼핑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Vientiane)을 비롯한 라오스 중북부의 주요 도시는 메콩강을 국경으로 태국과 마주 보고 있다. 여러 도시에서 라오스와 태국을 잇는 '타이-라오 우정의 다리(Thai–Lao Friendship Bridge)'가 건설되어 있다. 라오스와 태국은 경제적으로 현격한 차이가 난다. 그래서 라오스에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은 태국에서 당일치기 쇼핑을 즐긴다.


국경은 쉽게 통과했다.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넘어오니 완전히 저개발 지역에서 선진국으로 이동한 느낌이다. 라오스 쪽 도로는 훼손되어 형편없었지만, 태국으로 넘어오니 깨끗하게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에 선명한 차선이 그어져 있다. 버스의 승차감도 한결 좋아졌다. 우본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우본에서 아유타야로 가는 방법에 대해 인공지능에게 물으니, 기차와 버스 두 방법이 있는데 기차를 타라고 강력히 권고한다. 하루 종일 먹은 것이라고는 도넛 두 개뿐이라 허기가 진다. 터미널에 내리면 먼저 밥부터 먹어야겠다. 우본랏차타니 버스 터미널에서 기차역까지는 12km 정도 되는데 오후 8시 반에 마지막 기차가 있다고 한다. 시간은 충분하다.

오후 7시쯤 우본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터미널 직원이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아유타야로 간다고 하니까 바로 앞에 있는 버스를 타라고 한다. 잠시 망설였다. 지금 기차역까지 가는 것도 번거롭고, 또 버스도 상당히 좋아 보인다. 그래, 버스로 가자. 서둘러 ATM에서 현금을 인출하여 버스표를 끊었다.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다.


사실 기차 대신 버스를 선택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인공지능(제미나이)에게 물으니 내가 타야 할 기차에는 2등 침대 에어컨 좌석과 2등 침대 선풍기 좌석이 있는데 꼭 에어컨 침대를 선택하라 한다. 다만 에어컨이 너무 강하므로 꼭 추위에 대비하라 한다. 그럼 침대 선풍기는 어떠냐고 물으니, 창문을 열고 운행하기 때문에 시끄럽고 디젤기관차 매연을 다 마셔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너무 추운 침대 에어컨도 싫고, 매연을 마셔야 하는 침대 선풍기도 싫어 선뜻 버스를 선택한 것이었다.


내가 버스에 오르자마자 버스는 바로 출발했다. 2층 버스인데, 내 자리는 2층 맨 앞 좌석이다. 그런데 출발하고 보니 에어컨이 너무 강하다. 일단 좌석 위에 있는 에어컨 송풍기를 모두 닫았는데도 마치 냉동고에 들어온 느낌이다. 동남아의 버스들은 보통 냉방을 과도하게 한다. 그렇지만 이 정도까지 냉방을 심하게 하는 버스는 처음이다. 패딩을 가져오긴 했지만, 배낭과 함께 짐칸에 들어가 있다.

반팔 티셔츠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춥다. 나눠주는 모포로 몸을 감쌌지만 추운 건 여전하다. 급하게 서두르느라 밥도 못 먹어 허기가 진다. 정말 춥고 배고프다. 거기다가 버스는 휴게소에도 들르지 않는다. 이 상태로 9시간을 가야 한다니 눈앞이 캄캄하다.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니 모두 추워서 옷을 잔뜩 껴입고 웅크리고 간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추워하는데 에어컨을 강력히 틀고 가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간중간에 차장에게 너무 춥다고 에어컨을 꺼달라고 했지만, 들은 척 만 척이다. 인공지능에게 태국의 버스는 왜 이렇게 강한 냉방을 하고 달리는지 물어보았다. 태국은 열대 나라라 에어컨을 강력하게 켜는 것이 승객에 대한 예의이며, 또 자신의 차의 성능이 좋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승객들도 버스가 더운 경우에는 심하게 항의하지만, 너무 춥다고 불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다.


밤 12시가 넘어서 버스는 작은 휴게소 식당 앞에 선다. 이 버스도 식사가 제공되는 모양이다. 국수 한 그릇을 먹었다. 조금 살만하다. 버스는 다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