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30) 동남아 횡단여행 (28)
새벽 4시 가까이 되어 버스는 나를 아유타야에 내려준다. 그런데 이 버스는 방콕행이라 아유타야 시내가 아니라 국도변에 내려준다. 구글 지도를 확인하니 아유타야 시내까지는 35km 정도 된다. 버스에서 내렸지만 시간이 너무 일러 시내까지 갈 교통수단이 없다. 어쩔 수 없이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모기가 사정없이 문다. 최근 몇십 년 동안 이렇게 많이 모기에 뜯기기는 처음이다.
오전 5시가 되어 겨우 차를 잡아 아유타야 시내에 들어와 역사공원 부근의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방에 들어오니 오전 6시, 어제 오전 10시에 시판돈 숙소를 출발했으니 20시간에 걸쳐 여기까지 이동한 것이었다. 그동안 먹은 것이라고는 도넛 두 조각과 국수 한 그릇뿐이었다. 이 나이에 이렇게 무리해도 괜찮나 한편으론 걱정도 된다. 샤워를 하고 잠에 떨어졌다.
잠에서 깨니 오전 10시 가까이 되었다. 피로가 많이 풀린 느낌이다. 잠들기 전에는 오늘 하루 쉴까 생각했으나, 자고 나니 활동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을 먹으러 나가기 귀찮다. 어제 휴게소에서 산 과자 몇 개로 대충 아침을 때웠다.
오후 1시쯤 되어 역사공원을 둘러보러 나왔다. 아유타야에 대해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태국은 13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약 700년 동안 시암(Siam) 왕국이라 불리었다. 시암은 동남아시아의 중심부인 차오프라야강 유역을 중심으로 번영하였으며, 여러 왕조를 거치며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하였다.
시암의 역사는 크게 네 개의 주요 시기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수코타이 왕조(1238년~1438년)로서, 태국 민족이 세운 최초의 통일 국가이다. 두 번째는 아유타야 왕조(1350년~1767년): 400여 년간 지속된 시암의 황금기이다. 그러나 1767년 버마(현재의 미얀마)의 침공으로 멸망하며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이후 톤부리 왕조(1767년~1782년) 및 라타나코신 왕조(1782년~현재)가 방콕을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아유타야는 바로 두 번째 왕조인 아유타야 왕조의 수도였다. 당시 아유타야는 운하로 둘러싸인 난공불락의 요새이자, 전성기에는 유럽과 아시아 각국에서 상인과 사절단이 몰려드는 국제적인 대도시였다.
제미나이와 구글 지도를 이용하여 주요 4개 유적을 둘러보는 동선을 계산하니 5km 정도 된다. 제미나이는 자전거를 대여하여 돌아다니라고 한다. 그러나 자전거는 편하기는 하나 거추장스럽다. 5km 정도라면 걷기로 한다. 역사공원 입구까지 1km가 조금 넘는데, 땡볕이 내리쬐어 무지하게 덥다. 태국은 베트남이나 라오스보다 월등히 더 덥다. 우리나라 한여름 더위보다 더하다.
첫 번째는 왓 마하탓 (Wat Mahathat)이다. 역사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벌써 지친다. 걷기가 힘들다. 역사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아유타야에서 가장 유명한 왓 마하탓이 위치해 있다. 입장료는 80바트(단독 구매 시)이며, 주요 6개 유적지를 묶은 통합권은 300바트 정도이다. 꽤 비싸지만 중국 여행에서 단련이 되어 이 정도론 눈도 깜빡 않는다.
상상보다 훨씬 뛰어난 유적지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후 방치되었다고 하지만, 옛날의 웅장했던 사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4세기에 건립된 이 사원은 왕실의 주불전이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보리수 뿌리에 감싸인 불두(佛頭)'이다. 버마군이 불상의 머리를 모두 잘라버렸는데, 떨어진 머리 하나가 보리수 뿌리에 감겨 자연스럽게 들어 올려진 모습이다. 이는 아유타야의 비극과 생명력을 동시에 상징한다. 아유타야 왕조의 찬란했던 문명을 짐작할 수 있는 멋진 사원이다. 사원의 유적지는 상당히 넓다. 둘러보면서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렇지만 너무 덥다. 더워서 발걸음을 옮기기 힘든 정도라 아무리 좋은 유적지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음은 왓 랏차부라나 (Wat Ratchaburana)로서, 메인 도로를 사이에 두고 왓 마하탓과 마주 보고 있다. 왓 랏차부라나 역시 왓 마하탓과 같은 크메르 양식의 사원이기는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왓 마하탓은 조금 떨어져 감상하는 유적이라면 왓 랏차부라나는 직접 탑에 오르는 등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유적이다. 이 사원은 15세기 초, 왕위를 놓고 싸우다 죽은 두 형제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중앙의 거대한 옥수수 모양 탑인 '프랑(Prang)' 내부로 들어가 벽화를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57년 이 탑의 지하 복실에서 엄청난 양의 황금 보물이 발견되어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다음은 왓 프라 씨싼펫 (Wat Phra Si Sanphet)이다. 왓 랏차부라나에서 공원 안쪽으로 1km 남짓 떨어져 있다. 걷자니 정말 덥고 힘이 든다. 자전거를 렌트해야 했다는 후회가 든다. 가는 도중 라자망갈라 공과대학교(RMUTSB)가 보인다. 하도 덥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비싼 통합권까지 끊은 마당에 본전은 찾아야 한다.
겨우 왓 프라 씨싼펫에 도착했다. 포기 않고 오길 잘했다. 이곳은 과거 왕실 전용 사찰로, 세 명의 국왕 유해를 안치한 세 개의 거대한 종 모양 체디(불탑)가 나란히 서 있다. 정말 웅장하고 아름다운 탑이다. 이들 외에도 크고 작은 탑과 건물의 유적이 마치 미로처럼 흩어져 있다. 이 사찰은 아유타야 왕궁 안에 있던 가장 중요한 사찰로, 방콕의 '왓 프라깨우'와 같은 위상을 가졌다. 승려가 거주하지 않는 순수 왕실 전용 사원이었다고 한다. 세 개의 체디는 아유타야 역사공원을 상징하는 최고의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다리는 천근만근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걸었다. 왓 프라 씨싼펫을 남김없이 돌아보고 나오니 정말 더 이상 못 걷겠다.
사원을 나오니 마침 매점이 보인다. 펩시콜라 중간 병 하나를 사서 그늘에 앉아 마시니 좀 정신이 돌아온다. 이젠 정말 아무리 통합관람권이 아까워도 도저히 더 이상 못 걸어 다니겠다. 거의 30분을 앉아 쉬었다. 이제 그만 호텔로 돌아가자. 호텔에 들어서면 당장 풀에 풍덩 뛰어들고 싶지만 수영복을 가져오지 않았다.
왓 프라 씨싼펫 구역을 빠져나오니 바로 옆에 탑들이 즐비한 유적지가 보인다. 바로 위한 프라 몽콘 버핏(Wihan Phra Mongkhon Bophit)이었다. 그렇다면 들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입구로 들어가려는데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고 음악 소리가 요란하다. 사람들은 태국 전통 복장을 하고 있으며, 한쪽에서는 음식 준비가 한창이다. 아마 결혼식을 하려는 것 같다. 그다지 넓지 않은 유적지이지만, 평범한 듯하면서도 조용한 기품이 엿보이는 곳이다.
이곳은 사찰이라기보다 거대한 불상을 모신 '위한(불전)'이다. 내부에는 태국에서 가장 큰 청동 불상 중 하나인 '프라 몽콘 버핏'이 안치되어 있다. 폐허가 된 주변 유적들과 달리 현대에 복원되어 실제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로써 역사공원을 대표하는 4대 유적지를 모두 들렀다. 그 뜨거웠던 햇빛도 조금 부드워지기 시작한다. 공원을 나와 호텔 쪽으로 걸었다. 다른 동남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여러 방해물로 인해 인도로 걷기 힘들다. 호텔 근처 식당에서 새우 요리와 밥을 먹었다. 오늘 처음 먹는 제대로 된 식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