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16) 로마의 노예제

by 이재형

로마의 경제는 노예에 의해 지탱되었다. 1세기 초 로마는 인구 100만의 그야말로 메트로폴리스(Metropolis)였다. 이 가운데 노예의 수는 약 40만 명에 이르렀다. 노예와 로마 경제에 대해서는 이전에 소개한 바가 있으니 여기서는 더 이상의 설명을 생략하도록 한다.


로마는 정복지에서 노예를 조달했다. 로마군이 침공하였을 때 저항하지 않고 항복한 경우, 로마군은 통치자를 포함한 그곳 주민들의 생활과 권리를 보장하였다. 그렇지만 저항한 지역에 대해서는 철저히 응징하였다. 농부들이야 어차피 농사를 지어야 하므로 대개 그대로 두었지만, 지배계급, 학자, 전문가를 포함한 건장한 장정과 젊은 여자들은 노예로 삼았다. 노예는 로마군에 있어서 최대의 전리품(마누비아이, Manubiae)이었다.

이탈리아로 끌려온 노예들은 로마 시를 비롯한 이탈리아 각지로 팔려 나갔다. 로마로 팔려 간 도시 노예(Familia urbana)와 지방의 광산이나 농장(Latifundium)으로 팔려 간 노예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졌다.


로마의 노예는 주로 귀족들이나 부호들에게 소유되었다. 이외에도 로마 정부의 행정 업무를 보조하는 공공 노예(Servus publicus)도 있었다. 이들 노예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전혀 없었다. "말하는 도구"로서 주인의 자산에 지나지 않았다. 주인은 노예에 대해 완전히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다.

노예도 사실상의 혼인인 콘투베르니움(Contubernium)을 할 수 있었다. 노예의 자식 역시 노예이므로 주인은 노예 자식의 생산을 자신의 자산 증가로 여겨 노예 사이의 결합을 장려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노예의 혼인은 법적으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다. 주인의 사정에 따라 가족을 찢어 팔아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자유민 남성과 여자 노예 사이에 자식이 생기는 경우, 아이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 원칙에 의해 노예 신분이 되었다. 여자 자유민과 남자 노예 사이에 아이가 생기는 경우는 시대에 따라 달라 노예가 되는 경우와 자유민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노예가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는 해방(Manumissio)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주인의 관용으로 해방시켜 주는 경우이다. 주인은 자신의 노예가 큰 공을 세웠다고 인정하는 경우 그에 대한 포상으로 자유민으로 해방시켜 주었다. 특히 죽음을 앞두고 평생을 자신에게 헌신한 노예를 해방시켜 주라는 유언에 의한 해방이 많았다. 둘째는 노예가 주인에게 자신의 몸값을 내고 자유민이 되는 경우이다. 1세기 무렵 건장한 노예의 값은 로마 병사의 1년 연봉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노예는 시세보다 약간 높은 몸값을 주인에게 지불함으로써 자유민이 될 수 있었다.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아니 월급도 없이 일만 하는 노예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 비싼 몸값을 지불하나?" 노예가 아주 일을 잘하면 주인으로부터 보너스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임무를 다하면 주인의 동의 하에 따로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즉 주인의 동의 하에 알바를 하여 사유 재산인 페쿨리움(Peculium)을 형성할 수가 있었다. 아주 드문 경우였지만 심지어는 노예가 다른 노예를 사서 자신의 일을 시키는 대신, 자신은 더 수익성 높은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노예의 재산은 보호를 받는가? 주인이 노예의 재산을 빼앗으면 어떡하나? 법적으로 노예는 인격이 없는 주인의 자산이므로, 노예의 자산도 주인의 소유다. 주인이 뺏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사회적 견제 장치가 있다.


로마는 평판(Existimatio) 사회였다. 그리고 인간관계의 네트워크가 아주 촘촘한 사회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노예의 재산을 빼앗았다는 소문이 나면 그 사람은 몹쓸 사람으로 평가되어 사회로부터 매장당한다. 귀족이나 대부호에게 있어 이는 사회적 사망선고에 해당한다. 그뿐만 아니다. 노예들은 돈을 모아 자유민이 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온몸을 바쳐 일하고 있다. 만약 주인이 노예의 재산을 뺏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장 다른 노예들이 일할 의욕을 잃어 생산성이 뚝 떨어지게 된다. 즉 주인이 노예의 재산을 빼앗는 일은 자신에게 손해로 돌아오게 된다.


그럼 노예가 자신의 몸값을 지불하려 할 때, 주인이 몸값을 턱없이 올리면 어떻게 하나? 즉 골대를 옮기면 어떡하냐는 것이다. 이 경우도 재산 탈취와 마찬가지였다. 주인에 대한 사회적 평판이라는 견제 장치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좀처럼 없었다고 한다. 나름대로의 조직 원리와 시장 원리가 작용하는 셈이었다.

노예가 자유민(Libertus)이 되더라도 주인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일정 시간 무보수로 주인의 일을 도와주어야 했고, 이름도 주인의 성(Nomen)을 따라야 했다. 그리고 해방 노예는 로마 시민권을 얻었으나 공직 출마 등에는 제한이 있었으며, 자식 대에 가서야 완전히 자유로운 시민(Ingenuus)이 될 수 있었다.


노예가 해방되는 사례는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노예 해방제는 로마가 역동성을 가지고 움직이기 위한 필수적인 사회 시스템이었다. 해방이란 목표는 노예들에게 있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당근이었다. 노예 해방은 주인에게도 이익이 있었다. 우선 몸값으로 받은 돈으로 싼값에 노예를 새로 살 수 있어 차익을 가져다주었다. 더 중요한 것은 해방 노예가 주인의 정치적 지지자인 피보호자(Clientelae)가 된다는 점이었다. 이는 로마에서 주인의 사회적 기반을 든든하게 해주는 힘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방의 혜택은 광산 노예나 농장 노예들에게는 꿈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몸값을 모을 기회가 없었다. 평생을 노예로서 고통 속에서 일하다가 죽어갔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비록 도시 노예일지라도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광산 노예나 농장 노예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왜 탈출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로마를 탈출하여 멀리 떨어진 시골이나 다른 도시에서 살거나 하면 충분히 노예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느냐는 거다.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고, 실물 사진이 어디에나 널려 있는 현대에도 범죄자들은 얼마든지 숨어 살아간다. 정보의 전달도 늦고 본인을 확인할 사진이 있을 리도 없었던 그 시대에 어떻게 도망친 노예를 잡을 수 있느냐는 거다.

그런데 로마 시대 도망 노예를 체포하기 위한 사회적 틀과 네트워크는 의외로 촘촘했다. 도망 노예가 숨어 살기는 쉽지 않았다. 20년쯤 전에 도망친 노비를 쫓는 인간 사냥꾼의 이야기를 그린 <추노>라는 TV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는데, 로마 시대에도 도망 노예를 잡아오는 푸기티바리이(Fugitivarii)라는 추노꾼이 있었다. 이들은 주인의 의뢰를 받아 도망 노예를 잡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로마의 사회 시스템이었다. 로마는 철저히 인간관계로 연결된 사회였다. 개인이 무슨 일을 하려 해도 먼저 후원자가 누구인가, 누구와 친분이 있는가를 먼저 물었다. 여기에는 바로 확인 작업에 들어가기 때문에 도망 노예가 거짓말을 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언어 습관, 생활 태도 등에서도 신분이 금방 탄로나며, 치명적으로 몸에는 노예라는 낙인(Stigma)이 찍혀 있었다. 또 도망 노예를 숨겨준 사람은 몸값의 수 배를 벌금으로 물어야 했다.

이래서는 노예가 도저히 탈출할 구멍이 없다. 그래서 시골보다는 오히려 로마의 빈민가가 노예들에 있어 숨기 더 좋은 곳이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노예생활보다 더 비참한 삶이었다. 시골로 도망친 노예가 갈 곳은 외딴 산골밖에 없었는데, 그곳에서는 혼자서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도적 떼에 잡혀 다시 노예로 팔려 가기 십상이었다.


로마가 주요 산업이 모두 외곽으로 빠지고 생산 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 그나마 어느 정도 활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를 향한 노예들의 몸부림 덕택이었다. 로마의 점령 전쟁 종식과 노예 유입의 급격한 감소로 말미암아, 로마는 급격히 기울어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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