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올드타운 명소 도보 탐방

​(2026-02-05) 동남아 횡단여행 (34)

by 이재형

치앙마이에 온 이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진다. 오전 9시가 넘어 일어나 어제 저녁 야시장에서 사 온 수박으로 아침을 때웠다. 수영장으로 내려가 선베드에 반쯤 누워 유튜브도 보고 바둑도 두면서 시간을 보냈다. 내일이면 귀국이다. 치앙마이에 온 이래 매일 빈둥거리며 지내왔는데, 오늘은 가까운 명소 몇 군데를 둘러보아야겠다.


점심을 먹고 나니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중계방송을 한다. 오늘은 한국의 신진서 9단과 중국팀 주장 왕싱하오(王星昊) 9단의 대결이다. 왕싱하오는 진작부터 중국 바둑을 이끌 차세대 천재로 평가받아 왔으며, 이제는 명실상부한 중국의 최정상급 기사로 자리 잡았다. 얼마 전 그는 제10회 응씨배 대회 16강전에서 신진서를 이기기도 했다. 명소 순방을 위해 나가려 하다가 조금만 더 보자는 마음에 결국 끝까지 대국을 지켜보았다. 중반까지 팽팽하게 진행되던 바둑은 후반에 접어들 무렵 왕싱하오는 한 수 실수로 급격히 무너졌고, 신진서가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다.

숙소를 나서니 오후 3시가 좀 지나 햇빛이 한풀 꺾였다. 제미나이가 추천해 주는 대로 명소를 탐방하기로 했다. 보통 인공지능은 가장 효율적인 동선의 선택 등과 같은 최적화 문제 해결에 취약점을 보이지만, 제미나이는 구글 지도와 연동되기 때문에 명소 탐방 같은 최적화 문제 해결에서 높은 성능을 보여준다.


처음 찾은 곳은 타패 게이트(Tha Phae Gate)이다. 타패 게이트는 란나 왕국(Lanna Kingdom)의 수도였던 치앙마이를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성곽의 동문이다. 그저께와 어제 이틀 연속으로 저녁을 먹으러 이곳 야시장에 와서 익숙한 곳이지만, 낮에 보니 새로운 느낌을 준다. 기왕 온 김에 망고 스무디 한 잔과 볶음밥을 먹었다. 성벽 옆을 흐르는 해자는 생각보다 넓었으며, 폭이 20m 정도는 되어 보였다.

거대한 고무나무

다음 목적지는 ‘왓 체디 루앙(Wat Chedi Luang)’으로, 타패 게이트에서 1km 남짓 떨어져 있다. 가는 길목마다 크고 작은 사원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오후 4시가 가까워지며 열기가 조금은 누그러졌으나 여전히 덥다. 왓 체디 루앙에 도착하여 입장료 50바트를 내고 들어가니 가장 먼저 부처를 모신 작은 불당이 나타난다.


이곳은 인타킨 기둥(Inthakin City Pillar)을 모신 사당으로서, 치앙마이의 번영과 안녕을 상징하는 시 기둥(City Pillar)이 안치되어 있다. 사당 옆에는 수백 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거대한 고무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다. 나무 둥치에는 흰 칠이 되어 있는데, 이는 나무의 신령함을 기리고 해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라 한다. 높이만큼이나 둥치의 굵기도 몇 아름은 될 것 같다. 나는 고무나무가 이렇게 크게 자라는지 처음 알았다. 사당 입구에는 여성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성별에 따라 출입을 제한하는 오래된 관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경내의 넓은 마당으로 나가니 이 사원의 본전인 대법당(Vihara)이 나온다. 흰색 벽면과 화려한 황금색 장식이 조화로운 건물이다. 이 법당의 전체적인 구조는 일반적인 불교 사원이라기보다 서양의 성당과 같은 느낌을 준다. 대개 불교 법당은 폭이 넓고 깊이가 짧은 편인데, 이곳은 성당처럼 폭이 좁고 길이가 매우 길다. 또한 천장이 아주 높고 거대한 기둥들이 늘어서 있어 웅장함을 더한다. 제일 안쪽에는 황금 불상이 안치되어 있으며, 불상 근처에서는 선 자세로 서 있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핑계 삼아 기둥에 기대어 앉아 한참을 쉬어 갔다.


법당을 나와 뒤편으로 가니 거대한 탑 모양의 건축물이 나타난다. 14세기에 축조된 ‘대제디(Grand Chedi)’이다. 사각뿔 형태의 거대 구조물인데, 1545년 대지진으로 인해 윗부분이 무너져 내린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사방에는 탑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계단 난간은 용의 형상을 한 상상의 동물 ‘나카(Naga)’가 장식하고 있다. 세월의 흔적과 압도적인 규모가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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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을 나오니 바로 옆에 ‘왓 판 타오(Wat Phan Tao)’라는 사원이 있다. 전면이 티크 나무로 만들어진 작고 고즈넉한 사원이다. 규모가 작아 금방 돌아볼 수 있었으나, 목조 건축 특유의 단아함이 돋보였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왓 체디 루앙 근처의 ‘삼왕상(Three Kings Monument)’이다. 지도가 안내하는 곳에 도착했으나 넓은 광장에서 행사가 열리고 있어 동상을 가까이서 보기 어려웠다. 현재 태국은 선거철인 듯하며, 광장에는 선거 관련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같은 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연단을 마주하고 앉아 있고 TV 중계차도 와 있다. 연단 뒤로 세 명의 왕이 나란히 서 있는 동상이 보이는데, 이것이 치앙마이를 건설한 멩라이 왕(King Mengrai), 수코타이의 람캄행 왕(King Ramkhamhaeng), 파야오의 응암무앙 왕(King Ngam Muang)을 기리는 삼왕상이다. 행사로 인해 접근이 통제되어 멀리서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오랜만에 꽤 많이 걸었다.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지만, 숙소로 돌아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