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殺手) 맹성흔을 주인공으로 한 최고의 무협영화
홍콩 쇼브러더즈에서 제작한 무협영화는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걸쳐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들 영화는 대부분 칼이나 창을 무기로 한 이른바 검술 영화였다. 그런데 이러한 검술 영화가 너무나 쏟아지다 보니 팬들도 조금은 식상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무협영화의 장르도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
초기 무협영화가 한풀 꺾이자, 그 뒤를 이어서 나온 영화가 쿵후영화였다. 1970년대 초부터 강대위(姜大衛)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쿵후 영화가 개봉되어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으며, 이어 이소룡(李小龍)이 주인공이 된 정무문(正武門)을 비롯하여 맹룡과강(猛龍過江), 용쟁호투(龍爭虎鬪)는 동양권을 넘어 영화의 본무대인 미국 할리우드에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덕택에 이소룡은 세계적 스타로 등장하였다.
이소룡이 사망한 이후에도 성룡, 이연걸 등의 스타들이 차례로 등장하여 쿵푸영화의 대를 이어갔다. 이렇게 쿵푸영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과거의 전통적인 무협영화는 퇴조하는 듯하였다. 무협영화의 본무대인 홍콩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중반 무렵이 되면 전통적인 검객 영화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그 빈자리를 쿵푸 영화, 강시(僵尸) 영화 등이 차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검객 영화로서 등장한 것이 바로 <유성호접검>(流星胡蝶劍)이었다. 유성호접검은 1979년 홍콩에서 제작되었다. 원래 유성호접검은 TV 드라마였으나, 드라마의 후반부 일부에 초점을 맞추어 영화로 제작한 것이 바로 영화 <유성호접검>이었다.
천하의 자객 맹성흔은 천하의 맹주이자 협객으로 존경받는 손옥백을 암살하라는 청부를 받는다. 맹성흔이 손옥백의 문파에 잠입해 들어가 손옥백의 목숨을 노리는 중에 손옥백의 딸인 소접(小蝶)과 사랑에 빠지며, 손옥백의 인품에 감동하여 암살을 포기한다. 손옥백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율향천은 손옥백의 자리를 노려 손옥백을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마침내 율향천은 거사를 일으켜 손옥백을 제거하고, 손옥백의 문파를 차지한다. 그렇지만 손옥백은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손옥백은 수십 년 전부터 혹시 있을지 모르는 반란에 대비하기 위하여 여러 준비를 해두었다. 이를 이용하여 손옥백은 탈출에 성공함은 물론, 율향천에 반격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맹성흔은 이 과정에서 손옥백을 적극 도운다. 마침내 손옥백은 율향천에 대한 대대적 반격을 시작하며, 율향천은 손옥백이 마련한 치밀한 준비로 인해 차례차례 허물어져 간다.
율향천과 그 일파를 처단한 후 무림에는 다시 평화가 오고, 맹성흔과 소접은 강호를 떠나 평화로운 생활로 돌아간다.
홍콩 무협영화란 것이 대부분 스토리는 별 것 없다. 그저 간단한 스토리이지만 팬들은 화려한 전투 장면에 재미를 느껴 무협영화를 감상한다. 그런데 <유성호접검>은 완전 다르다. <유성호접검>은 스토리가 매우 탄탄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함으로써, 스토리 자체로서 높이 평가받아야 할 영화이다. 그리고 전투 장면들도 다른 무협영화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스토리가 좀 복잡한 무협영화의 경우, 그 스토리의 내용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즉 무슨 복잡한 스토리가 있는 듯한데, 무슨 이야기인지 관객들이 이해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성호접검>은 스토리가 상당히 복잡한데 비해 그 내용을 관객들에게 아주 쉽게 전달한다. 영화를 한번 모면 관객들은 그 영화의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나는 <유성호접검>이 지금까지 내가 본 무협영화로서는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 정도의 무협영화가 나오기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1970년대 말 <유성호접검>을 처음 감상한 이래, 최근 들어 두세 번에 걸쳐 이 영화를 다시 감상하였다. 몇 번을 다시 감상하여도 여전히 재미있는 것이 바로 영화 <유성호접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