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스토리의 한국형 무협영화
영화 <십오야>(十五夜)는 한국형 무협영화의 출발점이라 볼 수 있다. 과거에도 사극 영화가 많이 제작되었고, 이들 영화에도 당연히 칼싸움 장면이 적지 않게 나왔다. 그러나 그때까지 우리나라 사극에서 칼싸움이란 그저 보통 칼을 휘두르는 싸움에 지나지 않았고, 홍콩 무협영화에서 보듯이 하늘을 날고, 수많은 적들에 둘러싸여 적들을 격퇴하는 화려한 싸움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방랑의 결투>로 시작된 홍콩 무협영화가 큰 인기를 얻자, 이러한 홍콩 무협영화식 화려한 결투 장면을 담은 한국형 무협영화가 나오기 시작하였으니, 그 출발점이 바로 1969년에 개봉된 영화 <십오야>라 할 것이다. 사실 홍콩 무협영화는 스토리 자체는 단순하며, 칼싸움이라는 전투 장면을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 구성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십오야>는 스토리도 비교적 탄탄한 편이다. 또 출연진도 가수이자 배우인 남진과 당시의 톱 여배우인 남정임, 그리고 박노식, 이낙훈, 안인숙 등 당시의 톱스타들이 출연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홍콩 무협영화가 큰 인기를 누림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아류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이러한 무협영화는 “한국에서 제작된 중국 무협형화라 하여야 할 것이다. 이들 영화들은 제작자나 출연진이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뿐이지 스토리나 복장 등 모두가 중국 무협이라 해도 좋았다. 그리고 이들 영화는 스토리나 촬영기법, 연기 등에서 치졸하기 짝이 없었다. 나도 1960-70년대의 홍콩 무협 아류의 한국에서 제작된 무협영화를 여러 편 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영화는 없다. 이에 비해 <십오야>는 홍콩 무협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스토리, 복장, 등장인 물 등 대부분의 면에서 홍콩 무협과 차별되는 한국형 무협이라 하여도 좋았다.
조선왕조 건국 직후 박만도는 이성계에 충성하는 척하면서 반정을 꾀한다. 박만도는 동문수학을 한 친구인 김진국에게 자신의 모의에 가담하도록 제의하나, 김진국은 이를 거부한다. 박만도는 김진국을 죽이고 그의 가족도 몰살시키려 한다. 그러나 갓난아기인 김진국의 아들(거목)은 극적으로 구출되고, 박만도의 아들로서 자란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박만도의 딸(매화)은 거목과 바꿔치기기 되어, 박만도를 원수로 알고 자란다.
거목과 매화는 자라서, 거목은 자신이 아버지로 알고 있는 박만도를 지키기 위하여 싸우며, 매화는 자신의 친부인 박만도를 죽이기 위해 싸운다. 그러는 사이에 거목과 매화 사이에는 사랑이 싹트게 된다. 암행어사의 출두로 박만도는 포박되고, 거목과 매화는 출생의 비밀과 둘 간의 관계에 대해 모두 알게 된다. 그리고 거목과 매화는 각자의 길을 떠나게 된다.
나는 이 영화를 고등학교 1학년 무렵에 감상하였다. 그 당시 여러 편의 홍콩 무협영화를 관람하였지만, 대부분의 경우 결투 장면들만이 생각날 뿐 스토리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영화 <십오야>는 스토리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지금 이 영화의 스토리를 보면 좀 억지스럽고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고1이었던 내게는 꽤나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