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3) 닌자(忍者)의 고향 토카구시산(戸隠山)
넷째 날,
내일 오전 항공편으로 귀국하니까 사실상 오늘이 시나노(信濃) 여행 마지막 날이다. 나고야 공항까지 약 280킬로, 4시간 거리이다. 아침 일찍 호텔을 출발하여 하루 종일에 걸쳐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나고야로 가기로 했다.
이곳 나가노는 어딜 가도 산이다. 가는 곳마다 태산준령이 사방으로 뻗어있다. 이곳에는 높이가 2,000미터가 안 되는 산은 산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 같다. 호텔을 출발해 먼저 나가노시 북쪽에 있는 토가쿠시산(戸隠山)으로 갔다. 높이 1.900미터가 조금 넘는 산인데, 가도 가도 끝도 없이 올라간다. 지름이 1미터 이상 되는 삼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다. 일본에 가면 제일 부러운 것이 숲이다. 우리도 한 50년쯤 지나면 이렇게 되려나. 깊은 산, 울창한 숲, 무엇인가 신비한 무리들이 살고 있음 직한 곳이다.
이곳 토가쿠시산은 닌자(忍者)의 고향이다. 닌자는 첩보, 잠입, 암살 등 싸움에 있어서 비정규 부분을 담당하는 집단으로서, 전국시대 이후 영주들에게 고용되어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일종의 용병이었다. 닌자는 대체로 한 마을을 이루고 살았는데, 이들은 특정 세력에 고용되어 자신들의 재주를 팔았다. 일본 닌자 집단으로는 4대 유파(流派)가 있었는데, 토가쿠시 산에 근거를 둔 토가쿠시류 인술(戸隠流 忍術)도 그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나머지 닌자 유파로는 이가류(伊賀流), 카가류(甲賀流), 카자마류(風魔流)가 있는데, 닌자 4대 유파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이가류이다. 이가류의 시조는 핫토리 한조(服部半蔵)로, 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보좌하였다.
토가쿠시(戸隠)는 말 그대로 “집에 숨어 들어간다”라는 뜻, 어쩐지 그 이름부터가 닌자와 어울린다. 닌자의 주요 문파는 지금까지도 계승되어 오고 있는데, 도카쿠시류 닌자도 그 계승자가 생존해있다고 한다. 토가쿠시산 깊은 곳에 닌자 박물관이 있다. 닌자 체험관, 닌자 자료관, 닌자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닌자 전시관에는 닌자들이 사용하는 무기, 다양한 닌자 무술, 그리고 인법(忍法) 즉 닌자 기술들이 전시되어 있다. 여러 형태의 기괴한 모양의 칼과 창, 불화살, 입으로 부는 화살, 독을 쏘는 대통. 여러 형태의 수리검과 표창, 길에 뿌리는 쇠못, 주먹에 끼는 쇠못 장갑 별별 무기가 다 있다. 그뿐만 아니다. 성벽이나 나무를 오를 때 손발에 끼는 도구, 물속에서 숨을 쉬는 대통, 연막탄, 그물, 발자국 소리를 줄이는 도구 등의 보조기 구들. 그리고 은신술, 둔갑술, 암살 법 등등... 어릴 때 만화에서 보던 닌자의 모든 것이 거기에 전시되어 있었다.
닌자는 남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자 닌자도 있다. 여자 닌자를 "쿠노이치"(くノ一)라 한다. 계집 “여(女)” 글자를 파자(破字)하면 쿠(く), 노(ノ), 이치(一)가 되기 때문이다.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여자 단체 싱크로나이즈 경기에서 일본팀이 금메달을 땄다. 그때의 일본팀이 펼친 연기가 바로 쿠노이치를 모티브로 한 것이었다. 닌자가 실지로는 어느 정도 역할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현대에 와서는 사극에 좋은 양념이 되는 것 같다.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해외에서도 닌자에 대한 팬이 많다. 닌자에 대해서는 현대에 와서 여러 문학이나 연극, 영화 등에서 그 역할이 과장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닌자를 소재로 한 소설도 작으나마 한 장르를 이루고 있다.
토가쿠시 산을 뒤로하고, 나가노시의 남쪽에 있는 마쓰모토시(松本市)의 마쓰모토성(松本城)으로 갔다. 아담하지만 아주 독특하고 아름다운 성으로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일본의 전국시대에는 이곳 마쓰모토성이 시나노 지방을 다스렸다고 한다. 외성벽은 없어진 것 같은데, 천수각(天守閣) 바로 아래에 해자가 파여 있다. 이런 형태의 성은 처음 보는데, 마치 천수각이 물 위에 떠있는 섬처럼 보인다.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다. 마쓰모토 성을 뒤로하고 다시 남쪽으로 달린다. 가도 가도 산이다. 고속도로 양쪽 저 멀리 북알프스의 이름도 알 수 없는 거봉들이 머리를 흰 눈으로 장식한 채로 끝도 없이 도열해있다.
어둡기 전에 나고야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다음 목적지는 마쓰모토성에서 남쪽으로 100킬로정도 떨어진 키소(木曽), 바로 키소지(木曽路)가 지나가는 곳이다. 키소지란 나카센도(中山道)의 시나노 구간을 말한다. 에도시대에는 에도(동경)와 지방을 연결하는 5개의 주요 가도(街道, 카이도)가 있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고속도로나 국도라 할까. 5대 가도 가운데 수도인 쿄(京, 교토)와 정치의 중심지인 에도(江戸, 동경)를 연결하는 길은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도카이도(東海道)로 교토에서 남쪽 태평양 연안을 따라 동경으로 가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방금 말한 나카센도(中山道)인데, 교토에서 북알프스 산악지대인 시나노를 거쳐 동경으로 가는 길이다.
나카센도는 산악지대를 통과하기 때문에 험하기가 그지없다. 도카이도란 편한 길을 두고, 나카센도라는 험한 길을 택하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사연이 많은 사람들이었으리라. 특히 키소지(木曽路)를 지나는 사람들은 더욱 그러했으리라. 키소지는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에게는 키소야라는 일본라면(라멘) 체인점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옛날에 중요한 길에는 나그네를 위한 주막이나 역참이 있듯이, 일본의 가도에도 그러한 시설이 있었다. 키소지에는 쓰마고노 야도(妻籠の宿), 마고메노 야도(馬籠の宿) 등의 숙박지가 있었는데, 지금 나의 목적지는 쓰마고노 야도이다. 그렇지만 어둡기 전에 나고야로 가려고 서 루르다 보니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쓰마고노 야도를 지나쳤다. 아직도 여전히 고색창연한 옛 숙박지가 곳곳에 남아 옛 정취를 더해준다. 아쉽지만, 길을 서두르느라 쓰마고노 야도(妻籠の宿)를 뒤로 하였다. 근처에 얼마 전 분화를 시작한 화산인 온다케 산(御嶽山)이 있지만, 이 역시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키소지에 어울리는 노래 하나, “키소지의 여인”(木曾路の女)이다.
木曾路の女 키소지의 여인
1.
雨にかすんだ御岳さんを 비속에 흐릿한 온타케산을
じっと見上げる女がひとり 지긋이 쳐다보는 여인이 한사람
誰を呼ぶのかせせらぎよ 누구를 부르는가 개울 물소리여
せめて噂をつれて来て 소문이라도 좋으니 가져와주렴
ああ恋は終わっても好きですあなた 아아! 사랑은 끝났어도 사랑해요 당신을
湯けむりに揺れている木曾路の女 온천 물안개에 흔들리는 키소지의 여인
2.
杉の木立の中山道は 삼나무 도열한 나카센도는
消すに消せない面影ばかり 지우려해도 지울 수 없는 옛모습 뿐이야
泣いちゃいないわこの胸が 울고 있는 것 아니에요 이 가슴이
川のしぶきに濡れただけ 강물의 물보라에 젖었을 뿐
ああ恋は終わっても逢いたいあなた 아아 사랑은 끝났어도 보고 싶어요 당신을
思い出のつげの櫛木曾路の女 옛 추억의 참빗 간직한 키소지의 여인
3.
明日は馬籠か妻籠の宿か 내일은 마고메인가 쯔마고 숙소인가
行方あてない女がひとり 갈 곳을 몰라하는 여인이 한 사람
やっと覚えたお酒でも 지금 겨우 배운 술이라도
酔えば淋しさまたつのる 취하면 외로움이 더욱 깊어져
ああ恋は終わっても待ちますあなた 아아 사랑은 끝났어도 기다려요 당신을
どこへ行く流れ雲 木曾路の女 어디로 가느냐 흐르는 구름 키소지의 여인
어둡기 전에 무사히 나고야(名古屋)에 도착했다. 나고야 시는 인구 약 230만 명의 대도시이다. 아이치현(愛知県)에서 가장 큰 도시로, 근처에 도요타 자동차 공장이 있는 도요타시(豊田市)가 있다.
내일 아침 공항으로 가야 하니, 시나노 여행기는 여기서 마쳐야겠다.
大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