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오천 년을 살아온 불사신의 사나이
영화 <지구에서 온 사나이>(Man from Earth)는 2007년 미국에서 제작한 영화이다. 굳이 영화의 장르를 구분하자면 SF 영화라 할 수 있겠는데, 보통 SF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전투 장면이나 웅장한 우주 씬, 그리고 기묘한 모습의 수많은 종류의 외계 생물은 만날 수 없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한 주택 안의 거실에서 이루어지는 노변정담으로 이루어져, 제작비도 거의 들지 않은 영화라 생각된다.
<맨 프롬 어스>는 미국에서는 2007년에 개방되었지만, 우리나라에는 거의 8년이 지난 2015년에 개봉되었다. 2007년쯤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하여 감상한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이다. 두 시간 남짓한 영화 내내 예닐곱 사람이 벽난로 옆에서 노변정담을 하는 상황이 계속된다. 처음에는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점점 영화 속으로 빨려 든다.
앞길이 보장되어 있는 교수 존이 갑자기 대학을 사직하고 떠난다고 한다. 놀란 친구들이 존을 찾아와 사직을 만류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이 영화의 전체 스토리이다. 친구들은 모두 같은 대학의 동료 교수들로서, 의학 및 심리학, 역사학, 자연과학자, 신학자 등등 다양한 전공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친구들은 앞날이 보장된 사람이 왜 떠나는가 묻는다. 존은 처음에는 대답을 망설이다가 사실을 털어놓는다. 존은 어느 순간부터 자기가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걸 알고, 이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면 큰 소동이 일어날까 봐, 사람들이 그 사실을 눈치채기 전에 10년에 한 번씩은 자리를 뜬다고 한다.
그러면서 존은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한다. 그는 크로마뇽인으로서, 태어난 때는 지금으로부터 14,000년 전, 그때부터 세상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여러 신분으로 살아왔다. 태어난 뒤 얼마 뒤에는 그가 살고 있던 지금의 스페인 지역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이것을 20세기에 사람들이 발견하고, 그 그림은 <알타미라 동굴벽화>란 이름으로 알려졌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였다. 이후 그는 다양한 신분으로 여러 해 동안 한번씩 세상에 등장하곤 하였는데, 사람들은 자신을 다양한 인물로서 받아들였다.
함무라비와 만나서 백성들 통치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으며, 또 약 2,500년 전엔 동양에 현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서 부처란 사람을 만났다. 존은 그의 가르침에 크게 감명을 받아, 그 가르침을 자신이 살아온 서양사람들에게도 전파하고자 다시 로마가 지배하는 아랍 땅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을 불러보아 부처의 가르침을 가르쳤지만,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따르지는 않고 자기를 신으로 생각하고 추앙하더라. 그리고 자기의 진정한 가르침은 신앙이라는 맹신으로 덮여 왜곡되었으며, 지금도 세계의 수억의 사람들이 과거의 자신을 <예수>라는 이름으로 맹신하고 있다.
그는 새로 사귄 친구 콜럼버스와는 신대륙 항해를 함께 했던 이야기나, 또 고호 등 여러 유명한 예술가들과 교우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런 터무니없는 존의 이야기에 의사, 심리학자, 역사학자, 신학자, 인류학자, 과학자 등 친구들은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존의 이야기에 반론을 펴고 질문하지만, 존은 막힘없이 술술 대답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각 영역에서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사건에 대해서도 그 전후 상황을 조리 있게 설명을 해준다. 이야기를 나눈 친구들은 존의 이야기가 모두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존은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지금까지 한 자신의 이야기는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 하며 자리를 뜨려고 한다. 그때 그 자리에서 존은 가장 연장자이자 자신의 이야기에 심한 거부감을 보이는 <닥터 윌>에게 자신이 50년 전에 하버드 대학에서 <존 파티>란 이름으로 교수생활을 했다고 이야기해준다. 깜짝 놀란 닥터 윌, "설마 화학교수는 아니었죠?". 존은 자기가 <닥터 윌>이 생각하는 바로 그 화학교수였다고 말하고, 그 당시 아내와 자식 이름, 키우던 개 이름까지 술술 이야기해준다. 그렇다. <닥터 윌>은 바로 존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