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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an 25. 2021

일본 여행: 시나노(信濃) 여정(3)

(2018.05.22) 청정(淸淨)의 땅 시나노(信濃)

셋째 날 

나가노(長野)의  아침. 맑고 깨끗한 공기가 무척 상쾌하다. 북알프스의 큰 산들에 둘러싸인 분지 도시, 나가노이다. 해발 400미터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북알프스의 한가운데 위치한 나가노현, 그리고 현청 소재지 나가노시. 청정지역이지만 혹독한 지연 조건으로 인해 예부터 사람 살기는 힘들었던 지역이다.


나가노 지역을 옛날부터 시나노(信濃)라 하였다. 또 시나노의 "신"(信) 자를 따서  신슈(信州)라  하기도  하였다. 시나노 지역은 온통 높은 산이고, 평지는 찾기 어렵다. 그러니 날씨는 무척 춥다. 이러한 시나노의 혹독한 자연조건 때문에, 옛날부터 사람 살기가 어려웠고, 산물도 보잘것없었다. 따라서 전국(戰國) 시대인 16세기까지는 이 지역은 독립된 수많은 군소 무사들이  다스렸다. 이들을 지사무라이(地さまらい、地侍)라 하였다. 이들은 적게는 몇십 명, 많아야 수 백 명 정도의 병력을 거느리고 자기 땅을 다스리며, 전국시대라는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강자들 사이에서 곡예를 하며, 센 세력에 붙어서 일신과 가문을 보전하고자 하였다. 


시나노는 약한 세력의 군소 사무라이들이 난립하여 다스리던 땅이었지만,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력은 일본 전국의 패권을 다투는 강자들이었다. 북쪽에는 에치고(越後)의 우에스기 신켄(上杉謙信) 남쪽으로는 카이(甲斐)의 타케다 신겐(武田信玄), 관동의 호죠 우지마사(北条氏政)는 바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고, 그 외에도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등도 수시로 이 땅을 침범하였다. 그래서 시나노  땅은 전략의 요충지로서 강자들이 다투어 이 땅을 노렸고, 그 때문에 스스로의 의지와 관계없이 전쟁에 휘말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가노 시내에 있는 젠코지(善光寺)라는 절에 갔다. 나가노시를 대표하는 명소이다. 여자들의 참배를 허용하는 등 예로부터 개방적으로 운영되어 일본에서 독특한 불교 유파를 이루었고, 이로 인해 전국에 많은 지사를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비에 젠코지를 찍었더니 같은 이름의 절이 전국에 수 백 개 산재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늘은  4월 초파일이다. 절에서 행사가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일본은 양력 4월 초파일을 부처님 탄생일로  한단다. 그래서 별다른 행사는 없다. 젠코지는 매우 넓은 절로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서양인 관광객들이 많은 것이 이채롭다. 일본 대도시 어디서나 부딪히는 중국 관광객이나  한국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젠코지

마쓰시로(松代) 성터로 갔다. 이 성은 에도시대 시나노에 거점을 두고 있던 사나다(真田) 가문의 본성이다. 지금은 건물은 모두 소실되고 성벽 일부만 남아있다. 전국시대  사나다가는 매우 독특한 가문이었다. 시나노 땅의 한구석을  차지했던 작은 영주였던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는 뛰어난 무장이기는 하였지만, 그야말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전형적인 박쥐 같은 인간이었다. 갖은 재주를 부리며 줄타기를 하듯이 시류에 따라 강자들에게 붙었다 배반하곤 하였다. 오다 노부나가, 타케다 신겐, 우에스기 켄신,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등의 대다이묘(大大名)들을 섬기고 또 등을 돌렸다. 그런데 그의 둘째 아들 사나다 유키무라(真田幸村)는 도요토미 가문에 충성을 바친다.

마쓰시로 성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가를 멸망시키기 위해 도요토미 가의 본거지인 오사카 성을 2차에 걸쳐 공격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귀양살이를 하던 사나다 유키무라는 귀양지를 탈출하여 오사카 성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낭인들로 구성된 10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20만 대군과 결전을 벌인다.


도요토미 가가  멸망하게 되는 오사카성 여름 전투(夏の陣), 전투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승패의 결말이 확연이 보여 대부분의 다이묘(大名)가 도쿠가와 측에 붙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들처럼 아꼈던 카토 키요마사(加藤清正), 쿠로다 나가마사(黒田長政) 등은 물론, 히데요시의 정실부인인 네네(寧々)까지도 도쿠가와 가에 동조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사나다 유키무라는 최후까지 항전하다 전사한다. 이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나다 유키무라에게 죽을 뻔했다.


이후 유키무라는 일본 최고의 전사(戰士)로서 찬양받으며, 지금까지 그의 이야기가 신화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사나다 유키무라를 주인공으로 한 NHK의 대하드라마 "사나다마루"(真田丸)가 방영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옆길로 빠져 오사카 여름 전투를 한번 뒤돌아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가를 멸망시키게 위해 온갖 트집을 잡아 1614년 겨울 오사카 성을 공격한다. 그러나 도요토미 측의 필사적인 저항에 막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공격에 실패한다. 도쿠가와는 군사를 회군하는 대신 강화조건으로 오사카성의 해자를 메우게 하는 등 사실상 오사카성의 방위 벽을 거의 제거해 버린다. 오사카성의 성주, 즉 다이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頼)는 겨우 약관을 지난 나이로, 생모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側室)인 오챠챠(お茶々)의 치마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챠챠는 오사카성의 방위 벽을 무력화시키는 강화조건을 받아들인다. 오챠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살아있을 때 히데요시로부터 요도성(淀城)을 거처로 선물 받아 거기서 살았기 때문에 요도도노(淀殿, 요도님), 요도기미(淀君, 요도님)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몇 개월 후 1615년 여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다시 오사카성을 침공한다. 오사카성은 병력은 부실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쌓아놓은 막대한 재물이 있다. 이것을 이용하여 전국의 낭인들을 불러 모은다. 비록 병력은 적지만 성을 끼고 싸우는 전투이므로, 도요토미 가도 싸워볼 만한 전투였다. 그러나 낭인들을 끌어 모은 군대라 지휘체계가 엉망이었고, 또 설상가상으로 오챠챠가 아들인 히데요리를 과보호하고 감싸 돌며, 군대 작전에도 과도하게 개입한다. 이로 인해 도요토미 측 군대의 작전 및 지휘체계는 중구난방으로 엉망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사나다 유키무라는 군대를 이끌고 용감히 싸웠으나, 결국 패배하고 전사한다. 


드라마 "사나다마루"(真田丸)를 보면 사나다 유키무라는 정말 멍청한 바보다. 마지막 회를 보면 유키무라는 단기필마로 적장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앞까지 쳐들어간다. 호위병을 모두 물리친 후 겁에 질려 떨고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바로 앞에서 총을 겨누고, “네가 내 손에 죽어야 할 이유”를 주저리주저리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 그 사이에 달려온 이에야스의 부하들이 유키무라를 덮쳐 사나다 유키무라는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죽이는데 실패하고, 자신이 죽게 된다. 비록 드라마여서 꾸며낸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런 천하의 바보가 없다. 그냥 두말할 필요 없이 바로 쏘아 죽였으면 자기네 군대들이 대승을 했을 건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결국 전쟁에서 패하고 마는지... ㅉㅉㅉ       


그런데, 사나다 유키무라가 도요토미 측에 붙어 끝까지 항전했으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나다 가를 그냥 뒀을까? 약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보험을 든다. 유키무라는 도요토미가에 붙었지만, 그의 형 사나다 노부유키(真田信之)는 도쿠가와 측에 붙어 가문을 보전할 수 있었다. 도쿠가와 가문이 통치한  에도 시대에도 사나다 가는 시나노 10만 석의  영주로서 잘 먹고 잘 살았다. 마쓰시로 성터, 사나다 가 저택을 둘러보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본다.


카와나카시마(川中島) 전쟁유적지 공원으로 갔다. 카와나카시마의 전투(川中島の戦い)는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 최고의 명장면 가운데 하나다. 16세기  중후반  카이(甲斐)의 타케다 신겐(武田信玄)과 에치고(越後)의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 두 강자가 시나노 북부의 패권을 둘러싸고 건곤일척의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은 11년에 걸쳐 다섯 차례 이루어졌다. 이후 이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점점 살이 붙어 전설이 되어갔다. 

카와나카시마 전쟁공원


그렇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전투는 4차 전쟁뿐이었다. 나머지는 군사를 동원한 채 서로가 노려보기만 하고, 소규모의 전투만 약간 있었던 정도였다. 양 세력의 군대가 거의 다 동원되었는데 왜 전면적인 큰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을까? 전면전을 벌여 패배하게 되면 그 길로 자국과 자신의 가문은 패망하고 만다. 그만큼 전면전은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전면전이 벌어진 제4차 전투의 클라이맥스는 켄신과 신겐의 일대일 싸움(一騎討ち,  잇키우치)이다. 실제로 신겐과 켄신 간의 일대일 싸움이 있었는지 사실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 내려 오면서 이 싸움은 전설이 되었다. 켄신과 신겐의 잇카우치 장면을 묘사한 동상이 공원의 최고 명물이 되고 있다. 켄신이 내려치는 창을 신겐이 지휘용 부채(군배, 軍配, 군바이)로 막고 있는 모습이다. 동상 주위에는 타케다 신겐 군을 상징하는 풍림화산(風林火山) 깃발과 우에스기 켄신 군의 상징인 비샤몬텐(毘沙門天)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전쟁 공원 안에 있는 나가노 박물관을 관람했다. 지방도시인데도 전시물이 상당히 알차고, 콘텐츠도 상당했다. 니가노의 지리, 역사, 문화, 사람들의 생활과 관련된 많은 유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지방도시의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가보면 건물은 그럴듯한데, 콘텐츠가 너무 빈약하고, 또 제대로 관리되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박물관을 나와 마쓰시로 계곡 온천으로 갔다. 승용차로 산 위로 30분 이상을 구비구비 올라가니 깊은 계곡이 있고 계곡 옆으로 온천이 만들어져 있다. 내려가 보니 완전 대박!, 진짜 천연의 온천이다. 많은 온천을 기 봤지만 이렇게 가꾸지 않고 자연스러운 온천은 드물게 본다. 몇 년 전 규슈 키리시마(霧島) 산맥에 있는 카라구니다케(韓国岳) 산정 근처에 있는 계곡 온천에 간 적이 있는데, 정말 원시림 속에 천연 그대로의 온천이었다. 여기도 그에 못지않다. 약 50평 정도의 노천탕인데, 탕 넓이만 30평 정도는 될 것 같다. 주위는 온통 우거진 숲이며 발아래로는 세찬 계곡물이 흐른다. 나뭇잎 사이로 따가운 햇빛이 비추고, 계곡 바람은 시원하다. 노천탕 담장은 대나무 작대기를 몇 개 듬성듬성 꽂아둔 것이 전부다. 손님은 나 혼자뿐.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요금은 단지 500엔.

계곡 온천 <다키노 유>

돌아오는 길. 치쿠마 강(千曲川) 강변공원이 보여 들렀다. 치쿠마 강(千曲川)은 북알프스에서 니이가타로 흐르는 시나노 강(信濃川)을 말한다. 깊은 산악지대를 따라 흐르는 강, 그러다 보니 시연도 많은 강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 치쿠마강(千曲川). 들을 때마다 노래 가사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가슴이 시려온다.


https://youtu.be/G5hO2Xntqws


千曲川                                                    치쿠마강


1.

水の流れに 花びらを                          흐르는 강물에 꽃잎 하나를

そっと浮かべて 泣いたひと                  가만히 띄우면서 눈물짓던 그 사람

忘れな草に 帰らぬ初恋を                      물망초 꽃잎에 돌아오지 않는 첫사랑이

思い出させる 信濃の 旅路よ                  다시금 떠오르게 하는 시나노의 여정이여

 

2.

明日はいずこか 浮き雲に                  내일은 어디일까 떠있는 구름에

煙りたなびく 浅間山                         화산 연기 길게 퍼진 아사마 산

呼べどはるかに 都は遠く                 불러도 아득히 서울은 멀리 있고

秋の風立つ すすきの径よ                 가을바람 불어오는 갈대숲 길이여 


3.

一人たどれば 草笛の                         혼자서 걷다 보면 풀피리의

音いろ哀しき 千曲川                         노래 색 슬퍼오는 치쿠마 강

よせるさざ波 くれゆく岸に              밀려오는 잔물결 굽어가는 강벽에 

里の灯ともる 信濃の旅路よ               마을 불빛 켜져 오는 시나노의 여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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