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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ug 30. 2022

임진왜란(9): 조선의 활

조선수군의 전투방식과 활

우리 한 민족이 자랑하는 무기는 누가 뭐라 해도 활이다. 활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가장 대표적인 원거리 무기이다. 전투 병기로서 활에 관한 이야기는 세계 곳곳에서 들을 수 있다. 몇 년 전 BBC에서 방영된 전쟁 다큐멘터리에서 인류역사이래 혁신적인 전쟁무기 4개에 로마 군의 검인 글래디우스와 몽고군의 활을 꼽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스 신화의 태양신 아폴론은 궁술의 신이기도 하며, 활은 그의 분신과도 같았다. 헤라클레스도 활을 주 무기로 하였고, 또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나 파리스도 명궁이었다. 중세 시대 영국의 롱 보우 부대는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로빈 후드 이야기, 빌헬름 텔 등 많은 명궁 이야기가 전해내려 오고 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들 중 조자룡, 태사자, 여포 등도 뛰어난 활 실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당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끌어간 안녹산도 활의 명수였다고 한다. 일본에도 명궁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웅인 미나모토노 요시쯔네(源義經)와 그의 아버지 미나모토노 타메토모(源為朝)가 명궁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명궁 이야기가 전해내려 오고 있다.


활이라면 우리 한민족이 빠질 수 없다. 이미 2000년에 고구려의 시조인 고주몽이 활로써 나라를 일으켰고, 그 이후에도 수많은 명궁 이야기가 전해내려 오고 있다. 남북국 시대 해상왕인 장보고가 활의 명수였다고 하며,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한 일등공신 신숭겸도 명궁이었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 말 삼남 땅을 어지럽히던 왜구 대장 아기발도를 활로써 처치할 만큼 명궁이었고, 그의 자손인 태조 이방원과 세조 이유도 모두 활의 명수였다고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나 탄금대 전투에서 아깝게 전사한 신립 장군 역시 명궁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활에 대한 선조들의 DNA가 지금까지 이어져 양궁에서 우리는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의 주력무기는 육군조차도 활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원거리 전투가 중심이 되는 해전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조선 수군의 무기는 화포가 아니면 활이었다. 그런데 앞에서 활의 최대 사정거리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고 했는데, 일본 활과 비교하면 어떠하였을까? 


조선시대 활 가운데 성능이 좋은 각궁의 경우 화살의 비거리가 250미터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조선 활은 최대 100보(120미터), 일본 활은 최대 120보(140미터) 정도였다고 한다. 또 역시 징비록에 따르면 상주 전투에서는 조선군의 활이 100미터에도 이르지 못하여 일본군의 발 앞에 떨어졌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조선 활의 성능이라고 바로 단정하기도 어렵다. 병사들이 조총에 겁에 질려 활을 대충 쏘아 버릴 수도 있었고, 또 사용한 활이 성능이 좋은 각궁이 아니라 성능이 떨어지는 목궁일 수도 있다.  


이와는 다른 자료도 있다. 경남 도청에서 이순신을 소개하는 자료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활은 조선이 일본에 비해 우수하였다. 성능 면에서도 조선의 활은 일본의 활보다 위력이 컸다. 임진왜란을 경험한 문신인 이근수(尹根壽)는 ‘적병이 처음에는 목궁을 쏘았지만 화살의 힘이 강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한다. 일본궁은 단일궁인 목궁으로서, 조선의 각국에 비하여 성능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 활과 일본 활의 성능을 비교하는 이런 말들은 모두 단편적인 사실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나 신뢰하기가 어렵다. 어떤 활을 어떤 조건에서 쏘았는가, 누가 쏘았는가, 무엇을 기준으로 성능을 평가할 것인가에 따라 판단은 달리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 자기의 활이 좋다고 하면서 스스로 만족해하면서 국뽕에 취하는 것도 좋은 해법일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 군대에서 가장 많은 훈련을 필요로 하는 병과가 궁병이라 한다. 조선에서도 궁병을 확보하지 못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도 궁병을 양성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비해 조총병은 단기간에 쉽게 양성할 수 있다는 점도 조총이 빠른 시간 안에 보급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궁병의 양성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시 조선 수군의 궁병의 실력은 충분하다고는 하기에 부족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종류의 활이 사용되었는데, 가장 많이 사용된 활이 각궁(角弓)과 목궁(木弓)이라 한다. 각궁은 아주 성능이 뛰어난 활로써, 여러 종의 나무와 함께 물소 뿔을 사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목궁은 뽕나무 등으로 제작하였는데, 제조비용이 싼 대신 성능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각궁은 비싸고 성능이 좋은 대신 목궁은 싸고 성능이 낮아 상급 군인들은 각궁, 하급병사들은 주로 목궁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전에 읽은 역사책에서 보면 조선은 국방을 위한 무기를 강화하기 위해 주력 무기인 활의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런데 각궁에 사용되는 물소뿔이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터라 물소뿔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주로 중국을 통하여 수입하였는데, 중국에서도 조선의 무장을 염려하여 물소뿔의 수출을 규제하는 경우가 많아, 조선은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오키나와 등을 통해 물소뿔을 수입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물소뿔은 항상 공급부족 상태로서, 활을 제대로 만들 수 없어 쩔쩔 매었다고 한다. 


그런 글을 읽고 대부분의 다른 나라는 물소뿔 없이도 활을 잘도 만드는데, 조선은 왜 그렇게 유별나게 물소뿔에 집착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아마 일본은 물소뿔 없이도 활의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큰 활을 만들게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선의 활로써 특기할 만한 것이 편전(片箭)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이 편전이 소개되고 있는데, 편전이란 반으로 쪼갠 대나무 통에 넣어서 쏘는 짧은 화살이다. 화살을 쏘기 위하여 활을 당기면 활이 또 활시위가 늘어나기 때문에 화살의 길이가 일정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편전은 마치 총알이 총신을 통해 발사되듯이 대나무로 된 홈을 따라 발사되므로 길이가 짧아도 상관없다. 그래서 보통 화살의 길이가 약 90센티 정도 되는데, 편전의 경우 30센티 내외, 짧은 것은 20센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대신 일반 화살보다 사정거리도 거의 2배에 가까우며, 위력도 훨씬 강하다고 한다. 그 대신 편전을 쏘기 위해서는 일반 활보다도 훨씬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편전은 사거리가 길고 관통력도 강할 뿐만 아니라 화살이 작아 적이 피하기가 어렵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또 화살의 길이가 보통 활보다는 훨씬 짧아 아군이 쏜 화살을 적이 주워서 사용할 수 없다는 장점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활을 쏘면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가 어느 정도일까? 활의 위력, 즉 관통력은 화살의 속도와 무게에 비례한다. 지난 번 이야기에서 <내셔널 지오그라피> 방송에서 일본 활의 속도를 측정한 결과 시속 122킬로미터가 나왔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방송사 다큐 프로그램에서 현대의 개량 각궁을 사용하여 일반 화살과 편전의 비행 속도를 측정하였는데, 각각 시속 220킬로미터 및 260킬로미터가 나왔다고 한다. 현대의 양궁은 시속 약 240킬로미터라 한다. 그러면 우리 활이 일본 활에 비해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른가?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화살의 속도를 측정하는 데에는 어느 지점에서 측정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화살이 활을 떠나는 순간이 가장 빠를 것이며, 그 이후로는 공기의 저항에 따라 차츰 스피드가 떨어질 것이다. 측정 기준에 대한 명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어느 활이 더 빠르다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지난번의 글에서 나는 100미터 이상 되는 거리에서는 활은 그다지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활이 어느 정도 살상력을 갖기 위해서는 상당히 근접해서 발사하여야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내셔널 지오그래피> 사가 측정한 일본 활의 속도 시속 122킬로미터라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중요한 정보를 주고 있다. 


프로야구의 수준급 투수가 던지는 강속구의 속도가 시속 145킬로미터 정도이다. 투수와 포수 사이의 거리는 18미터가 조금 넘으므로 투수와 타자 사이의 거리는 17미터 정도이다. 이 거리에서 투수가 잘못하여 타자 쪽으로 폭투를 할 때, 타자는 어떨 때는 공에 맞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피하기도 한다. 세컨 베이스에서 포수까지의 거리는 36미터 정도가 된다. 그런데 투수가 세컨 베이스에서 홈 베이스 쪽으로 힘껏 공을 던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공만 제대로 보고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공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즉 30-40미터 정도 거리라면 상대방이 활을 쏜다고 하더라도 화살만 보고 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거리란 것이다. 더욱이 해전에서는 병사들 앞에 가림 판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이런 이유로 활은 해전에서 조선 수군의 주력무기였지만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왜군의 주력 무기인 조총에 비해 사정거리와 적중률이 모두 낮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의 자료에서는 “조선의 활은 기본적으로 화전(火箭, 불화살)을 쏘아 적선을 불태우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불화살은 일반 화살에 비해 사정거리가 훨씬 짧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임진왜란 당시 해전은 상당히 근접한 거리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추론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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