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형 Nov 10. 2022

영화: 무사의 체통(武士の一分)

아내를 속여 욕보인 자를 응징하는 맹인 사무라이

영화 <무사의 체통>(武士の一分)은 <맹목검 메아리 반격>(盲目剣谺返し)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였다. 이 영화는 2006년에 제작되었는데, 제작사인 송죽영화사는 이 영화로 창사이래 최대의 흥행수입을 기록할 만큼 대히트를 쳤다. 


막부가 끝나갈 무렵 우나사카 번(海坂藩)의 사무라이 미무라 신노죠(三村新之丞)는 아름다운 아내 카요(加世)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우나사카 번은 실재하지 않는 가공의 번이다. 미무라 신노죠는 하급 사무라이이지만 뛰어난 검술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가 맡은 일은 영주가 먹는 음식에 독이 들어있는지 테스트하기 위해 시식하는 것으로서, 아침 일찍 성으로 출근하여 매끼마다 영주가 먹을 음식을 먼저 먹어본다. 신노죠는 출세에는 별 관심이 없고, 빨리 은퇴하여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검술 도장을 여는 것이 꿈이다. 


어느 날 평상시처럼 영주에게 가던 음식을 먹은 신노죠는 몸에 이상을 느끼고 쓰러진다. 돌발적인 사건에 성 안에서는 영주의 암살 미수 사건이라 시끄러워지지만, 조사 결과 조개의 독으로 인한 것으로 판명된다. 성 안은 소동이 가라앉아 다시 평온을 되찾았지만 신노죠는 시력을 잃고 만다. 아내 카요가 의사를 데려왔지만, 의사는 신노죠의 눈을 고칠 수 없다고 한다. 신노죠는 이제 평생 장님으로 살아야 한다. 

신노죠는 이제 시력을 잃었으므로 더 이상 성에 출근을 할 수 없다. 알기 쉽게 말하면 실업자가 된 것이다. 이 시대에 사무라이가 실업자가 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당장 생계를 이어 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무라이는 영주로부터 받는 봉록으로 생활을 한다. 그런데 출근을 하지 않으면 봉록을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살고 있는 집도 사택이므로 내놓아야 한다. 


생활을 위해서는 다른 직업을 구해야 하는데, 사무라이가 할 수 있는 직업이란 것이 아무것도 없다. 농사일이고, 장사일이고 해 보지도 않았을뿐더러 하고 싶어도 시켜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사무라이가 직업을 잃으면 낭인이 될 수밖에 없으며, 먹고살기 위해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신노죠의 친척들이 신노죠의 집에 모여 대책을 논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뾰족한 답이 나올 리가 없다. 다들 스스로 먹고 살기도 빠듯한 형편이라 도와줄 사정은 안된다. 그래서 겨우 나온 결론이 성에 높은 사람을 찾아가 사정을 호소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정도이다. 신노죠의 아내 카요도 그러기로 마음을 먹는다. 


신노죠는 하급 사무라이이다. 이 시대 일본은 엄격한 신분사회여서 상급 사무라이와 하급 사무라이 사이에는 현격한 지위의 격차가 있었다. 하급 사무라이인 신노죠의 아내가 상급 사무라이를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요가 성의 높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우연히 이전부터 알고 있던 시마다 후지야(島田藤弥)라는 상급 사무라이를 만난다. 그는 결혼 전부터 카요에게 관심을 보였던 자였다. 카요는 그에게 사정을 말하고 도와달라고 부탁을 한다. 시마다는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한다. 며칠 뒤 카요에게 시마다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시마다는 카요를 만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카요의 몸을 요구한다. 카요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눈물을 흘리며 시마다의 말에 따른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은 둘째치고 남편이 집에서 쫓겨나고 당장 먹고 살아갈 수가 없다. 이 덕택에 신노죠는 이전에 받던 봉록 30석을 변함없이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또 집도 그대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카요는 신노죠에게 영주의 특별한 배려로 이렇게 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카요는 수시로 시마다에게 불려 나가 욕을 당하고 있었다. 이 일을 신노죠가 눈치채게 된다. 신노죠는 분노에 차 집에서 카요를 쫓아낸다. 카요가 집을 떠난 후 오래전부터 신노죠의 가사를 도와주던 도쿠헤이(德平)가 신노죠의 신변을 보살펴준다. 이 시대에는 사무라이 집안에는 출퇴근을 하면서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딸려 있었다. 출퇴근제 하인인 셈이다. 


도쿠헤이는 신노죠의 식사와 집안 잔일을 도와줄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그 일을 자신에게 맡기라 한다. 그리고는 카요에게 가서 집으로 들어와 신노죠 몰래 식사를 준비하고 살림을 하라고 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카요는 고용된 가정부 행세를 하면서 신노죠를 보살핀다. 그러나 신노죠는 음식 맛을 보고는 담박 그것이 카요가 만든 음식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내색은 하지 않는다. 

신노죠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이전에 받던 봉록을 계속 받고 집을 비우지 않아도 되었던 것은 시마다의 덕택이 아니라 영주의 배려 때문이었다는 것이었다. 가신들은 영주에게 신노죠의 봉록을 중단하고, 집도 회수하여야 한다고 보고했지만, 영주가 자신 때문에 신노죠가 눈이 멀게 되었으므로 그 충성심을 어여삐 여겨 비록 눈이 멀었더라도 이전과 똑같은 대우를 해주도록 명령하였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시마즈는 영주에게 오히려 신노죠의 봉록을 깎아야 한다고 건의를 드렸다는 사실까지도 알게 되었다. 시마즈는 영주의 명령을 자신의 공인 것처럼 카요를 속이고는 그녀를 희롱해왔던 것이었다.   


분노에 찬 신노죠는 시마다에게 결투장을 보낸다. 시마다도 검술의 명수이다. 눈이 먼 신노죠가 결투장을 보낸데 대해 코웃음을 치면서 결투를 받아들인다. 다음날 강변에 있는 오두막 옆에서 신노죠와 시마다는 결투를 벌인다. 그러나 눈이 보이지 않는 신노죠는 고전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신노죠는 시마다의 소리를 통해 그의 위치를 파악하고, 공격을 가하여 그의 왼쪽 팔을 베어 버린다. 왼팔이 잘려 나간채 쓰러져 고통의 소리를 내고 있는 시마다를 뒤로하고 신노죠는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온 신노죠는 이제 영주로부터의 처분을 기다린다. 이 시대에는 사적인 결투는 엄격히 금지되어 사적인 결투가 발각될 경우 대부분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루어야 하였다. 신노죠도 이제 복수를 다하였으므로 담담히 자신에게 내려질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시마다가 자결하였다는 것이다. 시마다는 왼쪽 팔을 잃고 집으로 돌아간 후 맹인과의 결투에서 졌다는 치욕감과 이 소식이 알려질 경우 세상으로부터 받게 될 조소를 참을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신노죠와 결투에서 팔을 잃었다는 것을 스스로의 명예를 위해 일체 비밀에 부쳤다.


이로서 신노죠와 시마다의 결투는 없었던 일이 되었다. 신노죠는 카요를 불러 앞으로 함께 행복하게 살자고 다짐을 한다.  


여태까지 감상한 사무라이 영화 가운데서도 상당히 재미있는 축에 속하는 영화였다. 특히 남편에게 헌신하는 신노죠의 아내 카요의 일편단심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고베 국제 갱(神戸国際ギャン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