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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Oct 11. 2022

드라마: 잘 먹었습니다(고치소우 상)

요리에서 인생의 보람을 찾는 여성의 이야기

우리나라에서는 차려준 음식을 잘 먹고 나서는 “잘 먹었습니다.” 혹은 “아주 맛있었습니다.” 등의 말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일본어가 “고치소우 사마 데시다.”(ごちそうさまでした.)이다. 한자로는 “ご馳走様でした.”이다. 이 말을 글자 그대로 곧이곧대로 번역하자면 “치소우(馳走) 님이었습니다.”가 되는데, 그러면 여기서 “치소우(馳走, 치주)”가 무슨 뜻일까?


치소우(馳走, 치주)는 원래 중국에서 나온 말로, 말을 타고 달린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말을 타고 분주하게 이곳저곳 달리는 것을 치주(馳走, 일본 발음으로는 치소우)라고 하는데, 이 말이 일본에 들어가면서 다른 사람을 보살펴준다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즉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으로 되었다. 그러니까 식사를 하고 난 뒤 “고치소우 사마 데시다.”라는 것은 “음식을 차리느라고 바쁘셨겠습니다.”라는 뜻으로 감사의 인사를 표시하는 것이다. 


일본어에서 우리나라의 “님”에 해당하는 말이 “사마”(樣)이다. 겨울연가로 유명한 배용준이 일본 아줌마들에게 “욘 사마”라 불리는 것은 “욘 님”이라는 뜻이다. 이 “사마”와 같은 뜻이지만, 좀 가볍게 쓰는 경칭이 “상”이다. 일본인들이 “다나까 상”, “하시모토 상”이라고 이름을 부르는데 붙이는 바로 그 경칭인 “상”이다. “잘 먹었습니다.”라는 뜻의 “고치소우 사마 데시다.”는 아주 정중한 말이며, 이 보다는 좀 더 가볍게 감사의 뜻을 표현할 때는 가볍게 “고치소우 상”이라고 한다. 

드라마 <잘 먹었습니다>(고치소우 상)은 2013년 NHK에서 방영한 TV소설로서, 150회로 이루어진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의 제목인 “고치소우 상”은 “잘 먹었습니다”라는 뜻과 함께 주인공의 별명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20세기 초반을 무대로, 삶의 가장 큰 행복이 음식을 먹는 일이고, 삶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이 요리라고 생각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렸다. 


우노 메이꼬(卯野め以子)는 1910년 무렵 동경에서 서양 음식점 카이메이겐(開明軒)을 경영하는 요리사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먹는 것이며, 그녀의 모든 관심은 음식을 먹는 일뿐이다. 여학교에 다니던 메이꼬는 자신의 집에서 하숙을 하던 동경제대 학생인 니시카도 유타로(西門 悠太郎)와 사귀게 되고, 학교를 졸업하자 바로 유타로와 결혼을 한다. 결혼 후 그녀는 유타로를 따라 유타로의 고향인 오사카로 간다. 


유타로의 집안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유타로의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집을 나가 소식을 모르는 상태이며, 어머니는 게이샤 출신의 계모이다. 그리고 큰 누나는 이혼을 한 후 집으로 들어왔는데 심술궂기가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동경제대 건축과를 졸업한 유타로는 오사카 시청의 건축과에서 일하게 되고, 메이꼬는 집에서 유타로의 계모와 큰누나와 함께 산다. 계모와 큰누나는 그야말로 개와 고양이 사이로 항상 서로를 못 잡아먹어 으르렁 거린다. 그런 속에서 메이꼬는 혹독한 시집생활을 한다. 그렇지만 천성이 느긋한 메이꼬는 혹독한 시집생활 속에서도 마음은 항상 태평이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로부터 항상 구박을 받지만 메이꼬도 할 말은 다한다. 

메이꼬의 집안과 주위에는 끊임없이 사소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메이꼬는 요리를 통해 이런 문제들을 잘 해결해나간다. 그녀는 남편의 박봉에도 불구하고 손이 크다.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베푼다. 그런 메이꼬는 동네에서나 시장에서 인기 만점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메이꼬를 “고치소우 상”이란 별명으로 부른다. 


메이꼬는 딸 하나와 두 아들 3남매를 낳는다. 장녀인 물리학에 온 정신이 팔려있다. 그러면서도 야구 선수인 동생의 선배에게 육탄공격으로 결혼을 하는 과감성을 보이기도 한다. 첫째 아들은 야구 선수이면서도 공부를 잘하여 동경제대와 쌍벽을 이루는 명문 교토 제대(京都帝大)에 진학한다. 둘째 아들은 요리를 좋아하여 요리사의 길을 걸으려 한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둘째 아들은 요리사 수업을 위해 해군에 자원입대하며, 사위와 첫째 아들도 징집영장을 받고 군대에 끌려간다. 그리고 남편 유타로는 군에서 실시하는 방공훈련의 방식에 반발했다는 이유로 만주로 쫓겨간다. 홀로 남은 메이꼬는 음식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거나, 이웃과 함께 요리를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던 메이꼬에게 둘째 아들이 전사하였다는 통지서가 날아온다. 미군의 폭격이 심해지자 메이꼬는 시골로 몸을 피하기도 한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전쟁이 끝났다. 폐허가 된 도시에는 쉴 곳도 먹을 것도 없다. 메이꼬의 집도 불타 없어졌다. 전쟁이 끝난 뒤 얼마 후 군대에 갔던 장남과 사위는 돌아왔다. 그러나 남편 유타로는 소식이 없다. 메이꼬는 먹고살기 위해 암시장에서 음식을 만들어 판다. 시내 곳곳에는 전쟁고아들이다.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는 아이들에게 메이꼬는 먹을 것을 나누어 준다. 


그러던 중 메이꼬는 우연한 기회에 미군 점령군 사령부(GHQ)에 도시락을 납품하게 된다. 메이꼬의 음식 맛에 반한 점령군 사령부의 고위관리는 메이꼬에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달라고 조른다. 둘째 아들의 죽음으로 미군을 미워하던 메이꼬는 음식을 통해 차츰 미군들과도 교감을 하게 된다. 메이꼬의 생활도 안정되어 간다. 그러던 중 만주에 갔던 남편 유타로가 돌아오고, 메이꼬는 새로운 희망으로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각오를 새로이 한다. 


이 드라마의 후반부는 전쟁에 돌입한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이 그 배경이다. 국민들에게 철저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정부에서 조작한 가짜 뉴스가 판을 친다. 정부는 국민들의 생활을 하나하나 감시하고 정부의 방침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체포해간다. 그러면서 전쟁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선동을 계속하며, 전쟁에 계속 패전하고 있으면서도 뉴스에서는 계속 전쟁을 이기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런 정부의 거짓에 속아 국민들도 전쟁에 열렬한 성원을 보낸다. 전쟁터에 끌려가는 젊은이들에게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열고 무운(武運)을 기원한다. 메이꼬 휘장을 걸치고 그런 국민들 틈에 끼여 “조국을 위한 전쟁”에 환호한다. 


이런 장면에서 우리나라 박정희 정권의 유신시대 기억이 겹쳐진다. 그렇게 전쟁을 지지하던 메이꼬도 장남과 사위가 군에 끌려가고, 둘째 아들의 전사 소식이 전해지고, 온 시내가 불타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는 현실에 대해 자각을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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