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의 꽃 미망인을 사모하며 평생을 보낸 인력거꾼의 순애보(純愛譜)
필자는 2002년 4월에서 7월까지 4개월간 규슈의 기타큐슈(北九州) 시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이곳에 국제동아시아연구센터란 연구소가 있는데, 그곳에서 4개월간 객원연구원으로서 연구활동을 하였다. 일본에는 각 지역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문학작품이나 노래 등이 있다. 그러면 기타큐슈 시를 대표하는 문학작품이나 노래로 어떤 것이 있을까? 그곳 주민이라면 누구라도 <무호마츠의 일생>(無法松の一生)이라 대답할 것이다.
<무호마츠(무법송)의 일생>(無法松の一生)은 이와시타 슌사쿠(岩下俊作)가 쓴 소설로서 후쿠오카 현의 고쿠라(小倉, 현재의 기타큐슈 시)를 무대로 하고 있다. 잠깐 기타큐슈 시를 소개하자면 이 시는 규슈에서 후쿠오카(福岡) 시 다음으로 큰 시로서, 인구는 100만 명이 조금 넘는 도시이다. 이 도시는 모지 시(門司市), 고쿠라시(小倉市), 와카마츠 시(若松市), 야하타 시(八幡市), 도바다시(戸畑市)의 5개 시를 통합하여 만든 시로서, 이 가운데 고쿠라가 가장 크다. 필자도 고쿠라시에게 살았다. 고쿠라에는 <무호마츠의 비>(無法松の碑)가 건립되어 있는데, 필자도 이를 한번 찾은 적이 있었다.
<무호마츠의 일생>(無法松の一生)은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그동안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는 1959년에 제작된 것이다.
때는 1897년 고쿠라에 무호마츠(無法松, 무법송)란 별명으로 불리는 인력거꾼이 있었다. 그의 본명은 마츠고로(松五郎)인데, 도박 때문에 고향에서 쫓겨났다가 돌아왔다. 그는 경찰의 검도 사범과 싸움을 벌여 목검으로 머리를 맞고 머리가 깨져 싸구려 숙박업소인 우와시마야(宇和島屋)에 드러누워 있다. 마츠고로는 비록 못 배우고 그의 삶은 거칠기 짝이 없지만 의기와 협기가 있는 사나이였다.
마츠고로는 도랑에 떨어져 상처를 입은 소년 토시오(敏雄)를 구해준다. 토시오의 아버지는 육군 대위인 요시오카 고타로로서, 이것이 인연이 되어 마츠고로는 요시오카 가에 드나들게 된다. 그런데 요시오카 대위는 비를 맞으며 훈련을 하다가 감기에 들어 죽고 만다. 요시오카 대위의 아내인 요시코는 아들 토시오가 마음이 약한 것을 염려하여 마츠고로에 의지하며 홀로 토시오를 키우며 살아간다. 마츠고로는 부인과 토시오를 헌신적으로 도와준다.
토시오는 고쿠라 중학 4학년(지금의 고1)이 되었는데, 어느 축제날 다른 학교 학생들과 패싸움을 벌여 어머니를 걱정시키지만, 마츠고로는 거꾸로 그것을 기뻐하며 싸움에 가세한다. 그 후 토시오는 명문 관리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마츠고로와는 소원해진다. 여름이 되면 고쿠라에 기온 마츠리(祇園 마츠리)가 벌어진다. 필자도 기온 마츠리를 참관한 바 있다. 기온 마츠리의 하이라이트인 큰 북 치는 날 토시오가 자신의 학교 선생과 함께 고쿠라에 돌아왔다.
토시오의 선생은 본바닥의 “기온 큰 북”(祇園太鼓) 소리를 듣고 싶었다. 마츠고로는 토시오와 그의 선생을 큰 북 쪽으로 안내하였지만, 북을 제대로 칠 줄 아는 사람은 없다. 마츠고로는 다른 사람을 제치고 스스로 큰 북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 거칠고 화려한 북 솜씨를 보인다. 마을 구석구석으로 마츠고로의 북소리가 퍼져나간다.
마츠고로는 남몰래 요시코 부인을 사모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과는 신분이 하늘과 땅 차이, 도저히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형편이 안된다. 옛날 일본은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신분의 차이가 엄격한 사회였다. 이 당시는 개화되어 이미 제도적으로는 신분의 차이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뿌리 깊은 신분 사회의 유습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자신과 같은 평민이 무사라 할 수 있는 군인의 미망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자신의 속마음을 더 이상 누를 수 없는 마츠고로는 부인을 찾아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려 한다. 방에서 부인을 마주해 앉은 마츠고로는 자신의 사랑을 털어놓으려 하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결국은 “나의 마음은 더럽습니다”라고 한마디 내뱉고는 그녀 곁을 떠난다. 그 후 마츠고로는 술에 빠져 건강을 해친다.
그해 겨울 폭설이 쏱아지는 날 밤, 마츠고로는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다가 쓰러진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 속에 얼어붙은 그의 시체가 발견된다. 사람들이 그의 유품을 정리하자, 그 속에서 부인과 토시오 명의의 예금통장과 함께 그동안 요시오카 가로부터 받았던 사례비가 봉투도 뜯지 않은 채 남아있다.
영화 외에도 무호마츠를 소재로 한 노래도 있다. 이 노래 역시 대히트를 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즐겨 부르고 있다. 필자도 이 노래를 아주 좋아한다.
小倉生まれで 玄海育ち
口も荒いが 気も荒い
無法一代 涙を捨てて
度胸千両で 生きる身の
男一代 無法松
空にひびいた あの音は
たたく太鼓の 勇駒
山車の竹笹 堤灯は
赤い灯に ゆれて行く
今日は祇園の 夏祭り
揃いの浴衣の 若い衆は
綱を引出し 音頭とる
玄海灘の 風うけて
ばちがはげしく 右左
小倉名代は 無法松
度胸千両の あばれうち
泣くな嘆くな 男じゃないか
どうせ実らぬ 恋じゃもの
愚痴や未練は 玄海灘に
捨てて太鼓の 乱れ打ち
夢も通えよ 女男波
1.
고쿠라에서 태어나 현해탄에서 자랐어
입도 거칠지만 기도 거칠어
무호마츠 일대 눈물을 버리고
배짱 천양으로 살아가는 이 몸
사나이의 일대 무호마츠
하늘에 울려 퍼지는 저 소리는
두드리는 북소리의 이사미고마
마츠리 수레 위 걸린 제등은
붉은 불빛에 흔들려 가네
오늘은 기온의 여름 마츠리
나란히 유가타 차림의 젊은이들은
밧줄을 당기면서 소리를 지르네
현해탄의 바람을 받아서
북채가 격렬하게 좌우로 흔들리네
고쿠라 명물은 무호마츠
배짱 천량의 거친 북 치기
2.
울지 마 한탄 마 사나이잖어
어차피 맺지 못할 사랑인 거야
불평이나 미련은 현해탄으로
버리고 큰북을 미친 듯 치면
꿈도 이룰 거야 남녀의 파도
또 위의 노래 <무호마츠의 일생>(無法松の一生〜度胸千両入り〜)을 편곡하여 만든 노래 <큰 북 난타>(あばれ太鼓)라는 노래 역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
どうせ死ぬときゃ 裸じゃないか
あれも夢なら これも夢
愚痴はいうまい 玄界そだち
男命を 情にかけて
たたく太鼓の 暴れ打ち
2.
酒と喧嘩は あとへはひかぬ
意地と度胸の 勇み駒
惚れちゃならない 義理あるひとに
知って照らすか 片割れ月に
男泣きする 松五郎
3.
櫓太鼓の 灯がゆれて
揃い浴衣の 夏がゆく
ばちのさばきは 人には負けぬ
なんでさばけぬ 男のこゝろ
小倉名代は 無法松
1.
어차피 죽을 땐 알몸인 것을
그것도 꿈이라면 이것도 꿈
불평은 않으리 현해탄에서 자란 몸
사나이 목숨을 정에 걸어서
때리는 큰 북의 난폭한 북 치기
2.
술과 싸움은 피하지 않아
고집과 배짱의 거친 이 인생
반해서는 안돼 의를 지킬 사람에게
알아서 비칠까 반쪽의 달에
사나이 눈물짓는 마츠고로
3.
높이 걸린 큰북의 불빛이 흔들려
나란히 유가타를 입은 여름이 간다
북치는 솜씨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지만
어째서 망설이나 사나이의 마음
고쿠라 별명은 무호마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