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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Sep 30. 2022

영화: 지옥변(地獄変, 지고쿠헨)

권세가인 귀족에게 맞서는 고려인 화가

영화 <지옥변>(地獄変, 지고쿠헨)은 소설가 아카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쓴 같은 이름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1969년에 제작되었다. 지옥변이란 지옥변상(地獄變相), 즉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란 뜻이다. 영화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원작자인 아카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에 대해 알아보자.


아카다가와 류노스케는 19세기 말에 태에나 20세기 초에 활약한 소설가로서, 주로 단편소설을 많이 썼다. 그는 일본 근대문학을 꽃피운 나쯔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제자로서 평생 그를 존경하였다고 한다. 나쯔메 소세키에 대해서는 다음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아카타가와 류노스케는 주로 순수문학 소설을 썼는데, 그의 업적을 기려 <아카타가와상>(芥川賞)이 창설되어 있다. 아카타가와 상은 일본 순수문학의 단편 및 장편(掌篇) 소설 부문에 있어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옥변>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https://blog.naver.com/jhlee541029/222136203790


영화 지옥변은 아카타가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나, 시나리오로 바꾸는 과정에서 내용이 약간 바뀐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말기를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다. 헤이안 시대란 서기 794-1185년 사이의 시대를 일컫는데, 794년 일본이 헤이안쿄(平安京)로 도읍을 옮기면서부터 시작된다. 헤이안쿄란 지금의 교토(京都)를 말하는 것으로 이때부터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19세기 말까지 거의 1,100년 동안 교토는 일본의 수도가 된다. 

고대로부터 일본은 중국과 한반도로부터 문물을 수입하여왔다. 그러나 일본과 가까왔던 백제가 멸망하고, 적대적 관계였던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자 일본의 대륙 루트는 끊어져 버렸다. 그리하여 그 이전의 일본 문화는 한반도와 중국에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헤이안 시대에 들어와서는 대륙과 고립되어 일본 고유의 독특한 문화가 싹트게 된다. 이를 “국풍”(國風)이라 한다. 전두환 정권 시절 허문도가 국민들의 눈을 정치로부터 돌리려고 “국풍”이란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하였는데, 바로 일본의 국풍이라는 용어를 따온 것이다. 


헤이안 시대는 귀족의 시대이자 장원(莊園)의 시대였다. 귀족들은 넓은 장원을 차지하고 백성들을 마치 농노처럼 부리면서 부와 권력을 독차지하였다. 이 시대는 후지와라(藤原) 가문이 권력을 독차지하였다. 그들은 대대로 자신의 집안에서 천황의 비를 배출하였으며, 조정의 고위직을 집안사람으로 메웠다. 이들 귀족들의 호사와 사치는 극에 달하였고, 그로 인해 문화가 찬란하게 꽃 피웠다. 그러나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병들고 굶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으며, 이러한 정사의 난맥상으로 나중에는 수도인 교토에까지 도둑들이 떼를 지어 휩쓸고 다녔다고 한다. 헤이안 시대는 12세기 겜뻬이(源平) 전쟁에서 승리한 미나모토 요리토모(源頼朝)가 카마쿠라 막부(鎌倉幕府)를 설립함으로써 종말을 맞게 된다. 


때는 헤이안 시대 말기인 12세기 권력자 호리카와(堀川)의 권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는 딸을 천황의 비(妃)로 보내어 천황의 장인이면서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다. 그는 천재 화가인 요시히데(良秀)를 매우 아끼고 있다. 요시히데는 고려인(高麗人)으로서 딸과 함께 살면서 제자들도 키우고 있다. 어느 날 호리카와는 부하와 식솔들을 이끌고 꽃놀이를 즐긴다. 이들이 돌아가려 하자 이들에게 식량을 대준 마을의 노인이 곡식 값을 지불하고 가라고 앞을 막는다. 관리들이 무엄하다고 야단을 치지만 식량값을 받지 못하면 가족들이 모두 굶어 죽는다며 노인은 한사코 매달린다. 그러자 호리카와는 수레바퀴로 노인을 깔고 지나가 버리고 노인은 바퀴에 깔려 죽는다. 

호리카와는 요시히데를 불러 자기 가문의 절인 무량수원(無量寿院)의 벽에 극락도를 그리라 한다. 그러나 요시히데는 자신은 진실만을 그리며, 자신의 눈으로 본 것만을 그린다며 이를 거부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극락도 대신에 지옥도를 그리겠다고 하여 호리카와를 격노케 한다. 


요시히데는 유일한 혈육인 딸 요시카(良香)를 지극히 사랑한다. 그에게 있어서 요시카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 그런데 요시카는 요시히데의 제자인 히로미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그러나 요시히데는 히로미가 고려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둘 사이의 관계를 끊도록 하고, 히로미를 쫓아낸다. 쫓겨난 히로미는 도둑의 무리로 들어간다. 히로미를 찾아 나선 요시카는 귀여워하는 원숭이가 호리카와의 저택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잡으러 들어갔다가 호리카와의 눈에 띈다. 호리카와는 아름다운 요시카를 보고 한눈에 마음을 빼앗겨 그녀를 자신의 첩으로 거둔다. 이 사실을 안 요시히데가 호리카와를 찾아가 딸을 돌려달라고 애원하지만 호리카와는 요지부동, 요시카를 돌려주지 않는다. 요시히데가 계속 딸을 돌려달라고 하자, 호리카와는 큰 병풍에 지옥화를 그려오면 딸을 돌려주겠다고 한다. 


헤이안쿄에 떼 도적이 출몰하였다. 이들은 떼를 지어 호리카와의 저택을 습격한다. 그러나 호리카와의 경비병들이 이들을 겨우 격퇴한다. 이때 호리카와에게 활을 쏜 도적이 있었는데, 그 도적은 도리어 경비병들의 화살을 맞는다. 죽어가는 그를 요시히데가 구해서 가면을 벗기자 딸 요시카가 사랑했던 히로미의 얼굴이 나온다. 히로미는 요시히데의 품 속에서 곧 죽는다. 

요시히데는 딸 요시카를 되찾기 위해 지옥도를 그린다. 겨울에 접어들 무렵, 호리카와는 요시히데를 불러 그림이 어느 정도 진척되었느냐고 묻는다. 거의 다 되었는데, 봄이 되면 완성될 것이라 한다. 그러나 봄이 왔건만 그림은 아직이다. 호리카와는 왜 이리 늦느냐고 질책한다. 요시히데는 마지막으로 불타는 수레를 탄 사람이 지옥에 떨어지는 광경을 그려야 하는데, 한 번도 그 광경을 본 적이 없어 그리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호리카와는 그 수레에 타고 있는 것이 호리카와 자신이 아니냐고 묻지만, 요시히데는 대답을 않는다. 무언으로서 그것을 인정한 것이다. 


며칠 뒤 호리카와로부터 불타는 수레가 준비되었다는 연락이 온다. 요시히데가 호리카와의 저택에 가니 마당에는 화려한 수레가 준비되어 있다. 호리카와의 명으로 수레의 문을 여니, 그 속에는 묶여있는 요시카가 있다. 요시히데가 대감님은 아마 불을 붙일 수 없을 것이라고 도발하자, 그 말을 들은 호리카와는 격로하여 불을 붙이도록 명령한다. 요시카는 산채로 불타는 수레 속에서 불타 죽는다. 요시히데는 넋이 나가 “내가 바로 지옥이다.”라고 중얼거리며, 원한에 찬 눈으로 불타 죽는 딸의 모습을 끝까지 본다. 


호리카와는 자신이 비록 불을 지르라고 명령했지만,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는 요시히데를 보고 공포감에 휩싸인다. 며칠 후 요시히데는 완성된 지옥도를 가져온다. 호리카와는 그 지옥도를 바라보며 “과연 요시히데다!”라고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그림 속에 있는 불타는 수레를 쳐다본다. 수레 속에는 바로 자신이 모습이 있다. 불타 죽은 악귀 같은 모습의 자신이 그림 속 지옥에 있었다. 그 그림을 본 호리카와는 다가오는 공포 속에서 몸을 떤다. 초열지옥(焦熱地獄)에서 고통스러운 모습을 한 자신을 보고 경악한다. 그때 촉대가 쓰러지면서 불이 붙기 시작한다. 호리카와는 불속에서 지옥의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때 요시히데도 스스로 자결한다. 

영화는 “세상은 지옥보다 더 지옥적이다.”라는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오랜만에 감상하는 감동적인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호리카와는 나는 새도 떨어트릴 권력자이다. 그의 앞에서는 누구도 그를 거역하는 말을 못 한다. 그의 말은 하늘의 명령과 같다. 그런데 유일하게 요시히데만은 호리카와의 말에 또박또박 반박한다. 그런 요시히데에게 호리카와는 매번 격노하지만, 그의 재주를 생각하여 죽이려다가도 참는다. 나중에 요시히데의 딸 요시카를 불태워 죽이는 것은 자신에게 항상 도전하는 듯한 요시히데에 대한 앙갚음이라고 볼 수도 있다. 


호리카와와 요시히데의 대화가 계속 머리에 남는다. 


호카카와: “극락을 그려라. 무량수원 벽에 기쁘고 환희에 찬 극락정토를 그려라.” 

요시히데: “저는 극락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마음속으로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또 제가 본 것이 아니면 저는 그릴 수 없습니다. 지옥을 그리겠습니다.”  

호리카와: “바로 이 헤이안쿄가 바로 극락정토이다.” “너는 본 것만 그리겠다면서 어찌하여 지옥을 그리겠다는 것이냐?” “네가 지옥을 보았느냐?”

요시히데: “거리를 나가 보십시오. 이곳 헤이안쿄가 바로 지옥입니다. 거리거리가 모두 지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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