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베로나를 배경으로 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1954년, 1966년에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나는 중학교 때 레너드 파이팅과 올리비아 핫세가 주인공을 맡은 1966년 <로미오와 줄리엣>을 감상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10대 중반의 나이로 줄리엣 역을 맡는 올리비아 핫세의 모습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전의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는 모두 르네상스 시기의 이태리 베로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1996년에 제작된 <로미오와 줄리엣>은 현대의 베로나 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인 로미오 역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리고 줄리엣 역은 클레어 데인즈가 맡았다. 1966년의 영화와 비교한다면 로미오 역의 레너드 파이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어느 쪽이 낫다고는 할 수 없으나, 줄리엣 역을 비교한다면 클레어 데인즈보다는 올리비아 핫세가 확실히 더 나은 것 같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야 이미 모두들 알고 있는 이야기이므로 여기서 더 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기에 등장하는 로미오와 그 친구들, 그리고 줄리엣의 친척 티볼트 등은 모두 현재의 젊은이들이다. 노란 물들인 머리에 문신과 피어싱을 한 이들은 영락없는 현대 도시의 양아치이다. 이런 양아치들이 서로 가문을 위해 싸우고, 가문의 체면을 위해 서로 죽이고 하는 장면은 좀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뒷골목의 이권을 위해, 혹은 돈을 위해 서로 지지고 볶으며 싸운다면 좀 이해가 가지만.
베로나의 경찰 국장은 캐플릿 가와 몬테규 가의 반목으로 골치가 아프다. 두 가문에 싸우지 말 것을 경고하지만, 그의 경고는 번번이 무시된다. 현대 사회는 범죄는 사법부에 의해 그 죄가 응징된다. 그렇지만 셰익스피어가 희곡을 쓰던 시기에는 삼권분립이란 것이 없었다. 도시를 다스리는 영주가 입법은 물론 행정, 치안까지를 담당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의 작품이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도 경찰국장이 재판관의 역할까지 한다. 아무래도 어색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은 전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의 부족에서 일어난 문제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사이에 연락이 빈번히 이루어졌다면 둘 모두가 죽은 그런 불행은 잃어 나지 않았다. 이 영화가 시대 배경으로 하는 현대의 베로나는 편지로만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 전화와 전보도 있고, 인터넷도 있는 시대이다.
이 영화에 대해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겠으나, 나로서는 그다지 점수를 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그나마의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