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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r 13. 2021

드라마:벳삔상

어린 엄마들의 사업 성공기

몇년전 일본 NHK에서 방영된 TV소설 <벳삔상>을 지난 주말부터 보기 시작하여 좀 전에 끝을 보았다. 151회짜리 연속 드라마를 6일 만에 다 보았으니, 하루 2, 30회씩을 본 것 같다. TV소설의 드라마들이 대부분 잔잔한 이야기들인데 의외로 흡인력이 있어 한번 보기 시작하면 다음회를 안 보고는 못 배긴다.


벳삔이란 한자로 표기하면 <別品> 혹은 <別嬪>으로 쓰는데, 보통의 물건과는 다른 “특별히 좋은 물건”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원래 벳삔(別品)은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차차 물건뿐만 아니라 뛰어난 인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에 대해서도 사용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일본 칸사이(關西) 지방에서 벳삔이라 하면 보통 “미인”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벳삔상은 일본의 종합 아동용품업체인 파밀리아를 설립한 4명의 여성을 모델로 한 실화에 바탕을 둔 드라마이다.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 코베(神戸) 시의 의 어느 여학교 자수반에서 만난 친구들이 10대 후반에 각각 결혼한다. 남편들은 모두 징병되어 전장에 나간 후 이들은 갓 스무 살의 나이에 홀로 아기를 낳아 키운다. 물자가 부족하여 아기들에게 먹일 것도 입힐 것도 변변히 구하지 못한 현실에서 가난과 싸우며 아기들을 키운다.

전쟁 말기 극도로 혼란한 사회상과 패전의 폐허 위에서 이들 네 명의 어린 엄마들은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바느질로 유아용품을 만들어 파는 가게를 연다. 가게는 여러 번 좌절을 겪지만 조금씩 성장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는 종합 아동용품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역경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우정과 화합, 그리고 성실함을 통해 사업은 성공한다.


인간 드라마인 동시에 기업 드라마이기도 하다. 창업자 가족과 종업원의 관계, 그리고 경영권을 둘러싼 이야기 등은 우리나라 기업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창업자가 절대적 권력을 갖는 우리 기업과는 대조적으로 회사의 성공을 최우선으로 목표로 두고, 그 역할을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업을 맡기고, 학벌이나 출신에 관계없이 적재적소에 인재를 활용하는 기업 운영 방식이 인상 깊다. 물론 이 것은 드라마이니까 어느 정도 현실과 부합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네 명의 친구와 그 남편들, 그리고 자식들이 회사를 운영하면서 그들 간의 약간의 다툼은 벌어지지만 모두 사소한 것으로 모두 회사를 위한 마음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쉽게 해소된다. 그리고 이 회사와 거래하는 대기업이나 대형 유통업체도 이들 중소기업을 등치려 하지 않는다. 회사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거래 기업들도 성심껏 도와준다.


개인적이나 사업상으로도 주인공들이 하는 사업에 대해 일부러 해코지를 하려는 사람이나 기업은 거의 없다. 모두 서로 도우며 격려하면서 함께 커간다. 스토리가 이렇다 보니까 첨예한 갈등구조는 없는 대신, 감상할수록 훈훈한 느낌이 든다.  

몇 년 전 집사람과 TV 아침 드라마 때문에 여러 번 다투었다. 나는 왜 보기 싫은 아침 드라마를 자꾸 켜느냐는 것이고 집사람은 좋아하는 드라마도 마음대로 못 보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아침드라마를 싫어하는 것은, 그 내용들이 한결 같이 악을 쓰고, 싸우고, 서로 미워하고, 속이고, 사기 치고, 심지어는 사람까지 죽이기도 하는 그런  막장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이런 드라마를 아침부터 보고 나면 그날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런 다툼이 몇 번 있어서인지 요즘은 집사람도 아침 드라마를 켜지 않는다.


이에 비해 NHK의 TV소설에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도우며 역경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이며, 또 주위 사람들도 한결 같이 착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빠짐없이 등장하는 소재가 훈훈한 가족애이다. 어떨 때는 너무 과장되게 아이들을 위한다던가 너무 착한 척하는 행동이 거슬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악쓰고 미워하는 것보단 낫다.


극단적인 갈등 상황을 설정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흡인력 있는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우리나라 드라마들은 왜 그리 막장으로 치닫는지 모르겠다. 작가들 수준 탓일까, 시청자 수준 탓일까?


(2018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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