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큰 아이 픽업을 마치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닫힘 버튼을 누르려는데 헬멧을 쓴 할아버지 한 분이 허겁지겁 들어오셨다. 할아버지는 어딘가로 전화하셨는데 헬멧을 벗지 못해서 그랬는지 스피커폰으로 통화가 연결되었다.
“00이 어디 있어?”
할아버지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기 너머의 분께 물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딸 같기도 하고 아내 같기도 한 전화기 건너편의 여자 분은 무척이나 화난 목소리로 앙칼지게 말했다.
“00 탄 줄 알고 열심히 밟아서 갔더니만 00가 안 탔더라고”
할아버지는 민망한 목소리로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아유, 그렇게 둔해서 어쩔 거야? 애가 안 탔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냥 가버려? 도대체가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할아버지는 그런 대접, 아니 이것은 대접이랄 수 없다. 반응, 대화, 취급, 아마도 취급이란 단어가 가장 어울릴 만한 그런 상황에 익숙하다는 듯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00 이는 어디 있어? 내가 빨리 데려다줄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에 여자 분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다시 데려다주긴! 어딜 데려다 줘!? 택시 타고 지금 내가 데려다주잖아! 내가 못 살아!”
느낌표를 남발했음에도 그 목소리에 담긴 힐난의 분위기는 다 전하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로 여자 분은 격앙되어 있었고 할아버지는 그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새어나가면 안 된다는 듯 핸드폰을 가슴에 바짝 대고 문에 붙어 있었다.
나는 왜 하필 그곳에 있었을까. 힐끔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는 할아버지를 보는 것도 괴로웠고 앙칼지게 할퀴어대는 여자 분의 목소리도 무척이나 거북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나는 아무 것도 본 것이 없어요. 들은 것도 없어요.’라는 표정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와 내가 간절히 기다리던 12층에 도착한 순간, 할아버지는 잽싸게 밖으로 나가셨고 엘리베이터 안은 빠르게 고요를 찾았지만 심란하게 두근대는 내 가슴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그 가정에는 어떤 사연이 얼마나 켜켜이 쌓였던 것일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할아버지의 선의와 호의가 저렇게 무참히 짓밟히는 것일까? 전화를 받은 그 여자 분은 어떤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저렇게 취급하는 걸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너무 딱해서 뻐근해진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슨 날을 잡기라도 한 듯 그날 점심, 엘리베이터에서 또 하나의 사건(?)을 마주하게 됐다. 우리 집인 26층에서 내려가던 엘리베이터는 11층에서 섰고 문 앞에 바짝 서있던 문제의 그 남자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점잖게 타던 젊은 남자는 뒤를 힐끔 돌아보더니 한마디를 던졌다.
“타지 마, 거기 있어!”
그렇다. 느낌표였다. 곱지 않은 말투였다. 누구한테 저렇게 말하나 싶어서 몸을 틀어 살펴보니 키는 150센티미터가 채 안 될 정도로 작고, 마른 대추처럼 깡마른 몸집에 곱게 쪽진 머리가 눈에 띄는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이 남자의 어머니였을까, 할머니였을까? 어느 쪽이어도 용납될 수 없는 명령이었다.
할머니는 어물어물 대꾸하시며 따라 타시려는 듯 보였고 그 모습에 앞서 탄 남자가 또 말했다.
“타지 말라고! 거기 있으라고! 어허, 타지 마!”
그럼 어쩌라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채, 할머니는 엘리베이터 앞에 멈추었고 문은 서서히 닫혔다. 누가 데리러 오겠다는 건지, 다른 식구가 나오면 같이 타라는 건지, 집으로 다시 들어가라는 건지, 어떤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눈앞에서 닫히는 문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무안하고 겸연쩍었을 마음을 짐작만 해도 속이 상해서 그 남자의 옆모습만 소심하게 째려봤다.
연거푸 보게 된 어른에 대한 소홀함과 무례함이 불쾌함을 넘어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나이를 먹어가며 느끼는 위기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무슨 마음이면 저렇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걸까? 공경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쓸모없음으로 가치가 매겨진 그분들이 느끼는 모멸감이 쓸쓸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렇게 마음 놓고 흉보고 있는데 문득 ‘너는?’ 하며 화살표의 방향이 나를 향했다. 지난 목요일, 시어머니가 병원에 다녀가시느라 인천으로 올라오셨다. 항상 아버님과 함께 자가용을 타고 오셨는데 그날은 어머니 혼자 기차 타고 올라오시게 되었다. 기차는 몇 번 타신 적이 있지만 역에서 병원까지 가는 길이 초행길이라 헤매실까 봐 걱정되었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역으로 모시러 가겠다고 전화 드렸다. 어머니는 신경 쓰지 말라고, 역에서 택시 타면 금방이니 일부러 나올 필요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확답은 안 드리고 병원 오시는 날 다시 통화하기로 했다. 며칠 뒤 있을 자격시험 대비로 분주했던 터라 그 날 상황을 나도 확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화 통화한 후부터 괜히 전화 드렸다는 후회가 슬그머니 올라왔다. 전화도 드렸으니 이젠 꼭 가야 할 상황이 된 것 같았다. 안 와도 된다고 말씀했지만 내심 기다리지 않으실까 싶어서 부담스러워졌다. 그런데다 밀려 있던 시험 준비와 주말까지 보내야 하는 수업계획서는 그제야 급한 불이 되어 눈앞에서 활활 타올랐다. 내 앞에 놓인 일은 점점 부풀어갔고 어머니의 병원행은 그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결국 나는 전화를 드리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안 했다. 그 날 저녁에라도 잘 다녀오셨는지 안부 차 연락드려야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세뇌시키며 짐짓 모른 척 넘어갔다. 나중에 여쭈어봤더니 어머니는 택시에서 내린 후 방향 감각을 잃어 한참이나 길을 헤매셨단다. 어린아이처럼 이 길 저 길을 뱅글뱅글 돌던 어머니는 지나가는 분께 길을 물었고 고맙게도 그 분이 어머니 손을 붙잡고 병원 앞까지 모셔다 드렸다고 한다. 어머니가 헤매고 계시던 그 시간, 나는 도서관에서 공부 중이었다.
할 일도 없으면서 안 간 게 아니니까, 그래도 가려는 마음은 먹었으니까, 어머니께 전화는 드렸으니까, 나는 어머니께 곱게 말하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괜찮은 걸까? 어머니께 어려운 부탁을 드리지도 않으니까, 그 사람들처럼 심하게 말 안 하니까. 나는 괜찮은 사람인 걸까?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고 티 내지 않았을 뿐이다. 11층 할머니와 12층 할아버지처럼 적당히 모른 척해주시는 부모님 덕분이었을 뿐, 나도 막말하는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마음 놓고 비난할 처지도 아니면서 우월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나보다 겨우 두어 걸음 앞서 갔을 뿐인 것을 모르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