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경이 건드린 무의식

시시콜콜한 나의 이사 이야기 - 12 D - 100

by 정희

D - 100




한창 시간에 쫓기며 살 땐 마음도 일상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정희는 분 단위로 사는구나.”

30년 절친의 한마디가 나를 향한 응원과 격려인 줄만 알았다. 그 말속에 담긴 걱정과 염려까지 들여다볼 새도 없었다. 고요한 시간 속에 나를 내버려 두지 못했고 삶을 어지럽히는 요소를 구별하거나 조절하는 노력도 먼 일이었다. 내 일상은 언뜻 깨끗한 물처럼 보였지만 작은 흔들림에도 금세 먼지가 퍼지는 뿌연 흙탕물 같았다. 그렇게 시간에 쫓기며 사는 순간에도 무의식은 이따금 모습을 드러냈다. 고요함 속에 나를 던져놓자 잊었던 그 시간이 비로소 떠올랐다. 의식 아래 가라앉아 좀처럼 떠오르지 않던 나의 무의식은 수면마취 중에 민낯을 드러냈다.

사건(?)은 작년 겨울, 한 병원에서 일어났다. 위내시경 검사를 위해 병원에 방문한 날이었다. 간호사는 검사 방법을 설명하면서 수면검사로 진행하면 추가 비용이 생긴다고 했다. 나는 얼마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면내시경으로 정했다. 3년 전, 일반 내시경 검사를 받았던 기억 때문이었다. 그땐 5분만 참으면 된다는 경험자들의 후기와 수면 상태에서 어떤 헛소리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에 마취 없이 하는 일반검사로 선택했다.


마취 없이 하겠다며 호기롭게 정해놓고도 베드에 눕자마자 얼마나 후회를 했던지. 긴장상태에서 본 내시경 검사 호스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두께였다. 아찔함도 잠시, 강력한 순서가 줄줄이 남아 있었다. 내시경 호스가 쉽게 삼켜지지 않아서 눈을 질끈 감고 ‘꿀떡꿀떡’을 반복해야 했고 간신히 호스가 목구멍을 넘어가자 구역질과의 사투가 시작됐다. 의사 선생님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다음번엔 수면내시경으로 하자며 위로의 말씀을 건넸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목젖과 식도를 지나 위와 십이지장까지 굵은 내시경 줄 하나로 연결되는 ‘위아일체’의 감각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을 정도니 이번에 수면내시경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지만 수면상태에서 욕을 하거나 의료진을 때리는 환자가 있다는 말에 나의 반응이 걱정되기도 했다. (아무튼 걱정도 팔자) 개인적으로 아는 의사 선생님이라 혹시라도 생길지 모를 흑역사는 원천 봉쇄해야 했다. 검사대 위에 누워 내시경 검사를 위한 자세를 잡을 때였다. 헛소리의 징조가 보이면 뺨을 때려서라도 깨워달라며 간호사에게 신신당부를 하던 중에 갑자기 아득해졌다. 그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나는 깊은 잠 속으로 푹 고꾸라졌다.


그 이후의 첫 번째 기억은 푸른색 담요였다. 회복실 침대 위였던 것 같다. 링거를 꽂은 왼팔이 눌려있었던가? 아파서 잠깐 깬 것 같았다. 그러다 기억이 또 끊겼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으려나. 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기분이었는데도 나는 누군가에게 계속 묻고 있었다.

“지금 몇 시예요?”

분명 그 말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귀에 들리는 건 소주 2병쯤 마신 뒤 나올법한 “지이이이금 며어어엇 시이이에어어어여?”였다. 회복실 저 너머의 누군가가 대답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몽롱한 상태에서 벽에 걸린 시계를 뚫어지게 봤지만 아직도 숙취에 잠긴 것처럼 시계를 통 읽을 수 없었다. 잠깐 정신을 차린 내가 또 물었다.

“지금 몇 시예요?”(이번에도 분명 “지이이이금 며어어엇 시이이에어어어여?”였겠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만 남고 모두 돌아갔나? 빨리 정신 차려야 하는데, 왜 이렇게 잠이 안 깨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몇 번 더 물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다시 물어볼까 싶어서 입술을 달싹거리는데 잔뜩 화난 목소리 하나가 저 너머에서 툭 튀어나왔다.

“아유, 얼마 안 지났어요. 그만 좀 물어봐요!”

소주 2병의 숙취가 훅 달아날 만큼 앙칼진 말투였다. 내가 어지간히도 물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간호사가 중간중간 나타날 때도 몇 시인지 그렇게나 많이 물어봤단다.


그땐 해프닝으로 여기며 웃고 지나갔지만 지금 와서 떠올려보면 어쩐지 짠하다. 평소 시간 쪼개 쓰는 걸 좋아하고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하고 나면 뿌듯했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시간에 대한 강박이 그렇게나 높은 줄 그때는 몰랐다. 내 무의식 속 작은 아이가 시간을 체크하고 헛된 시간을 없애려고 애써왔던 걸까? 마취에 취한 나를 깨우려고 발을 동동 굴렀을 그 아이를 생각하면 안쓰럽고 고단하다.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은 시간의 효율을 따지게 만들었고 쉬고 있어도 쉬는 게 아닌 상태, 완전한 쉼을 누릴 수 없는 상태로 너무 오래 살게 했다. 시간이라는 쳇바퀴에 익숙해져서 거기서 내려오는 방법도 잊어버린 채 말이다.


수면마취도 뚫고 나올 만큼 내 안에 깊고 넓게 도사리고 있던 강박과 이제는 이별하고 싶었다. 분주히 사느라 지친 무의식 속 작은 아이에게 좀 쉬어도 된다고 말해야 했다.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왔고 그래야만 하는 변화의 타이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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